경제

의도와 정반대 결과… ‘단통법 10년’의 아이러니

  • 좋은 의도의 정책이 어떻게 예상과 반대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 나비효과보다 더 기묘한 정책의 역설

2025년 7월 22일, 한국에서 가장 기묘한 정책 실험 하나가 조용히 막을 내렸다. 바로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다.

우리가 흔히 듣는 ‘나비효과’를 떠올려보자.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텍사스에 토네이도가 일어날 수 있다는 그 현상 말이다. 그런데 단통법은 이보다 더 기묘했다. 선한 의도로 시작된 정책이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 것이다.

마치 북쪽으로 가려고 나침반을 보고 걸었는데, 나침반이 거꾸로 되어 있어서 남쪽으로 가버린 격이었다.

2014년, 정책 입안자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휴대폰 시장이 불공평하네. 어떤 사람은 같은 폰을 100만 원에 사고, 어떤 사람은 50만 원에 산다. 이런 가격 불평등을 없애야겠어. 보조금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상한선을 정하면 모든 사람이 공정한 가격에 살 수 있을 거야!”

이는 전형적인 ‘선형적 사고’였다. A라는 문제가 있으니 B라는 해결책을 적용하면 C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단순한 인과관계를 가정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하나의 변수를 조작하면 수많은 다른 변수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복잡계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시스템을 이해하려면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 단통법 입안자들은 ‘가격 불평등’이라는 나무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그 나무가 ‘시장 경쟁’, ‘소비자 선택권’, ‘유통업체 생존’ 등의 다른 나무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간과했다.

경제학에는 ‘게임 이론’이라는 흥미로운 분야가 있다. 단통법을 이 관점에서 보면 그 오류가 명확해진다.

단통법 이전의 시장은 ‘경쟁 게임’이었다. 통신사들과 유통업체들이 서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려고 경쟁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보 비대칭’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어떤 소비자는 좋은 조건을 알아내고, 어떤 소비자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단통법은 이 경쟁 게임의 룰을 바꿔버렸다. 보조금 상한선을 정하고 공개를 의무화하니, 이제 누구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없게 되었다. 경쟁이 사라지자 혁신도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모든 소비자가 ‘평등하게’ 나쁜 조건을 받게 되었다. 이는 마치 모든 학생이 똑같은 점수를 받도록 시험 만점을 60점으로 제한하는 것과 같았다. “누구는 90점, 누구는 30점 받는 건 불공평해!”라는 명분으로 모든 학생을 60점으로 맞춰버린 격이었다. 평등은 달성했지만, 전체적인 수준은 떨어뜨린 셈이다.

시스템 사고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피드백 루프’다. 건전한 피드백은 시스템을 개선시키지만, 잘못된 피드백은 문제를 악화시킨다.

단통법은 부정적 피드백 루프를 만들었다. 보조금 제한 → 경쟁 감소 → 소비자 불만 증가 → 음성적 거래 증가 → 더 강한 규제 요구 → 시장 더욱 경직화… 이런 악순환이 10년간 반복되었다.

이는 마치 체온이 높다고 해서 체온계를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과 같았다. 체온계는 낮은 수치를 보여주지만, 실제 몸의 열은 그대로 있는 것처럼, 단통법도 표면적으로는 ‘투명성’을 달성했지만 실제 시장의 문제는 지하로 숨어버렸다.

업계에서는 단통법을 ‘호갱 양산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던 취지와 달리, 오히려 소비자들이 더 불리한 조건에서 휴대폰을 구매하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중저가폰 사용자들이 역차별을 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성지나 테크노마트 등에서는 여전히 특가 판매가 이뤄졌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이런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결국 정보에 밝은 일부만 혜택을 보는 구조는 그대로 남아있으면서, 전반적인 지원금 총량만 줄어들었다.

2020년대 들어 ‘전 국민 단통법 피해자’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됐다. 시장 자율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2023년부터 본격적인 폐지 논의가 이뤄졌다. 2024년 국회를 통과해 2025년 7월 22일 공식 폐지에 이르렀다.

이제 한국의 휴대폰 시장은 11년 만에 자유경쟁 체제로 돌아왔다. 물론 새로운 문제들이 생길 수도 있다. 고가 요금제나 장기 약정을 통한 부담 전가, 과다 보조금에 따른 위약금 등의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의 교훈을 바탕으로 더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시장 모니터링과 사후 관리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시장의 자율성은 존중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단통법 10년의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복잡한 시스템에 개입할 때는 전체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고, 의도치 않은 결과에 대해서도 항상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에서 실패한 실험도 소중한 데이터다. 단통법은 실패했지만, 그 실패에서 우리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복잡한 세상에서는 때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개입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마치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듯이, 우리도 이제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시장은 돈다”고.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현장 중심으로 취재하며, 최신 창업 트렌드와 기술 혁신의 흐름을 분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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