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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T칼럼] NeurIPS 논문보다 AI 특허 먼저, 생존의 법칙이 바뀌었다

인공지능(AI) 분야는 오랫동안 ‘개방과 공유’라는 고유의 문화를 바탕으로 경이로운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구글, 메타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혁신적인 논문을 공개하고, 전 세계 연구자들은 깃허브(GitHub)를 통해 소스 코드를 공유하며 생태계를 함께 키워나갔습니다. ICLR, ICML, NeurIPS 같은 최고 권위의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 연구자의 가장 큰 명예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시기, 기술의 독점을 상징하는 ‘특허’는 AI의 발전 철학과 다소 거리가 있는 개념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하지만 AI 기술이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핵심 동력으로 부상하고,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되면서 패러다임은 180도 전환되었습니다. ‘오픈(Open) AI’라는 이름의 기업마저 핵심 기술을 공개하지 않고 특허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이제 AI 분야에서 특허는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략 자산이 되었습니다. 논문 게재의 영예를 잠시 뒤로하고, 냉철하게 나의 권리를 먼저 확보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가장 먼저 넘어야 할 허들: ‘공개’라는 함정

AI 연구자들에게 아카이브(arXiv)는 연구 성과를 신속하게 공개하고 동료들과 교류하는 필수적인 플랫폼입니다. 하지만 특허의 관점에서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기술이 외부에 공개되는 순간, 특허의 가장 중요한 요건인 ‘신규성’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을 포함한 몇몇 국가에서는 기술 공개 후 1년 이내에 특허를 출원하며 ‘공지예외주장’을 통해 구제받을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완벽한 안전장치가 아닙니다.

공지예외주장 제도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 요건이 매우 까다로운 국가(예: 유럽)에서는 단 한 번의 공개만으로도 특허 등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다면 이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내가 기술을 공개하고 특허 출원을 준비하는 사이, 제3자가 유사한 아이디어를 먼저 특허로 출원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내가 원조 개발자임을 입증해야 하는 복잡하고 소모적인 분쟁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전략은 명확합니다. 어떠한 형태의 공개(논문, 학회 발표, 보도자료, SNS 게시물 등) 이전에 반드시 특허 출원을 먼저 완료하는 것입니다.

오픈소스는 끝이 아닌 시작: ‘개량 발명’과 ‘도메인 특화’라는 기회

“이미 공개된 오픈소스 모델을 활용했는데, 특허가 가능한가요?” 현장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얼마든지 가능하다”입니다. 오픈소스는 기술의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훌륭한 ‘기반’입니다.

1. 개량 발명 (Improvement Invention):

공개된 기술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특허가 될 수 없지만, 여기에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더해 성능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용도를 찾아낸 ‘개량 발명’은 특허의 핵심 대상입니다. 예를 들어, 기존 모델의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새로운 아키텍처, 데이터 학습 효율을 높이는 전처리(Pre-processing) 기술, 특정 하드웨어에 최적화하는 방법 등은 모두 강력한 특허가 될 수 있습니다.

2. 도메인 지식 (Domain Knowledge)과의 결합:

AI 특허의 진정한 가치는 특정 산업 분야의 깊이 있는 지식, 즉 ‘도메인 지식’과 결합될 때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예를 들어, 범용 이미지 인식 모델에 양질의 의료 영상 데이터와 전문 의료진의 진단 노하우를 더해 특정 질병의 조기 진단 정확도를 99%까지 끌어올린 의료 AI 기술, 수십 년간 축적된 현장 기술 장인들의 노하우를 공장 설비 데이터 학습에 적용하여 미세한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고장을 예측하는 제조 AI 시스템, 그리고 공개된 언어 모델에 독자적인 데이터셋과 사기 패턴 분석 로직을 추가해 금융 사기 탐지에 특화시킨 금융 AI 기술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다른 이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특정 분야의 고유한 전문성이야말로 AI 기술을 강력한 특허 자산으로 만드는 핵심 열쇠입니다.

‘블랙박스’라는 착각: AI 특허 침해, 더 이상 불가능의 영역이 아니다

AI의 복잡한 내부 구조 때문에 ‘블랙박스’처럼 작동하여 특허 침해를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역설적으로, AI 생태계가 오픈소스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침해 입증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경쟁사의 AI 제품이 내가 특허를 낸 기술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오픈소스 모델을 기반으로 개발되었다면, ‘사용한 기술의 출발점이 같다’는 강력한 정황 증거가 됩니다. 소송 단계에서는 법원을 통해 상대방의 소스 코드, 학습 데이터, 모델 파라미터 등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때 오픈소스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면 침해 여부를 분석하는 것이 훨씬 용이해집니다. 즉, 침해 입증의 부담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입니다. 향후 관련 판례가 축적된다면, AI 특허는 상상 이상의 강력한 권리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특허, 방어막을 넘어 공격 무기로: 내가 출원하지 않으면 벌어지는 일들

특허 출원을 망설이는 사이, 우리는 상상 이상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우선, 권리가 상실될 수 있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위험입니다. 내가 밤새워 개발한 기술을 다른 누군가가 먼저 특허로 등록해 버리는 순간, 나는 졸지에 특허 침해자가 되어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기술 공개는 내가 했지만, 권리는 남이 가져가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기업 가치 평가 절하될 수 있습니다. 특허는 기술력의 객관적인 증표이자 핵심적인 무형자산입니다. 투자 유치, M&A, 기술특례상장 등 기업의 가치를 평가받는 모든 중요한 순간에 특허 포트폴리오의 유무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미래 사업 기회 박탈될 수 있습니다. 확보된 특허는 그 자체로 라이선스 수익을 창출하는 수익원이 될 수 있으며, 경쟁사와의 기술 제휴나 크로스 라이선스 협상에서 강력한 협상 카드로 활용됩니다. 특허가 없다면 이러한 사업 기회는 원천적으로 차단됩니다.

결론: AI 시대의 생존 법칙, ‘선 출원, 후 공개’

AI 기술의 패권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AI 기술 특허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필수’ 생존 전략입니다.

경영자에게 특허는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비즈니스를 지키는 핵심 자산이고, 연구자에게 특허는 피와 땀으로 이룬 연구 성과에 대한 정당한 권리이자 보호막입니다.

당신의 위대한 기술이 한낱 논문으로만 남지 않도록, 세상에 알리기 전에 가장 먼저 특허로 권리를 확보하십시오. ‘선 출원, 후 공개’ 원칙을 가슴에 새기는 것이 글로벌 AI 전쟁에서 승리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원문 : NeurIPS 논문보다 AI 특허 먼저, 생존의 법칙이 바뀌었다

글 : 특허법인 BLT 박기현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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