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록밴드 드러머에서 AI 유니콘 창업자로…”달의 어두운 면을 탐험하다”

양즈린 문샷AI 창업자 (c)플래텀

양즈린, 칭화대 수석 졸업 후 카네기멜론 박사…구글·메타 거쳐 귀국

“기타 메고 방랑 시인 꿈꿨던” 낭만파, 7개월 만에 20만자 처리 AI 선보여

창업 과정 법적 논란에도 2년 새 4조원대 유니콘…장문처리 특화로 딥시크와 차별화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 스타트업의 회의실 벽면에는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이 걸려 있다. 회사 이름을 지을 때 이 앨범의 50주년을 기념해 ‘문샷AI(月之暗面, Moonshot AI)’로 정했다는 창업자 양즈린의 설명이 그대로 묻어난다. 달의 어두운 면을 탐험하듯 인공지능의 미지 영역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다.

2023년 4월 문을 연 지 불과 2년, 이 회사는 중국 AI 산업의 ‘호랑이’로 불리며 33억달러(약 4조8천억원) 가치를 인정받는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라는 중국 빅테크 양대 산맥이 동시에 돈을 댄 곳이기도 하다. 다만 창업 과정의 적법성을 둘러싼 투자사들과의 법적 분쟁, 개인정보 수집 적발 같은 논란도 동시에 안고 있다.

광둥성이 주목한 신동, 록밴드에서 AI까지

양즈린 CEO는 광둥성 산터우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뛰어난 학업 성적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진산중학 고교 시절 컴퓨터에 입문하면서는 전설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처음엔 프로그래밍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발전 속도가 빨라 곧 정보 올림피아드 양성반에 선발됐고, 광둥 지역 1등을 차지하며 칭화대 무시험 입학 자격까지 얻었다.

하지만 그는 실력으로 당당하게 입학하고 싶었다. 2011년 고교 3학년 때 치른 가오카오에서 667점을 획득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칭화대에 입학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형적인 모범생 이미지지만, 양즈린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중음악을 좋아해 학교 록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고, 습작 수준을 넘어서는 작곡 작업도 병행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문학 소년이기도 했던 그는 기타 하나를 짊어지고 전국을 떠도는 방랑 시인을 꿈꾸기도 했다.

이런 낭만적 기질은 대학 입학 후에도 이어졌다. 친한 친구들과 록밴드 ‘스플레이(Splay)’를 결성해 캠퍼스 록페스티벌 결선에까지 진출했다. 주변에서 칭화대 출신 유명 가수나 작가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낼 정도였다.

그러나 컴퓨터공학과 은사 탕제 교수의 권유를 받아들여 오로지 학업에 매진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거의 대부분 과목에서 A학점을 받으며 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카네기멜론에서 구글·메타까지

2015년 졸업과 동시에 탕 교수의 강력한 권고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석사와 박사 학위는 모두 카네기멜론대에서 받았다. 그가 사사한 은사들은 나중 애플 AI 책임자가 된 루슬란 살라쿠트디노프와 구글 AI 수석 과학자 윌리엄 W. 코헨 교수였다. 당대 최고 전문가들에게 배운 거의 유일한 중국인 학생이었다.

4년 만인 2019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연구기관인 페이스북(현 메타) AI 연구센터에 입사했다. 이어 구글 브레인으로 이직해 상당수 AI 모델 개발에 참여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Transformer-XL’과 ‘XLNet’ 같은 중요한 연구 성과가 이 시기에 나왔다.

채 1년도 안 되는 기간 상당한 성과를 올린 그는 미국 굴지 기업들의 제안을 뿌리치고 2019년 말 중국으로 돌아왔다. 은사 탕제 교수의 배려로 칭화대에서 강의하며 창업의 꿈을 키웠다. 투자자들이 경쟁적으로 줄을 섰다.

7개월 만에 첫 제품, 장문 처리로 틈새 공략

문샷AI의 고고(鼓鼓)의 성은 2023년 4월 17일 베이징에서 울려 퍼졌다. 함께 회사를 세운 저우신위, 우위신 역시 글로벌 테크 기업 출신 엘리트 연구자들이다.

이들은 창업 당시부터 명확한 전략을 세웠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 하지 않고, AI의 치명적 약점 하나를 집중 공략했다. 바로 ‘장문 처리’ 능력이었다. 대부분의 AI가 짧은 대화에 최적화돼 있을 때, 문샷AI는 긴 법률 문서나 방대한 코드베이스를 한 번에 이해하는 AI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올해 초 ‘가성비 AI’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딥시크와는 다른 접근이다. 딥시크가 560만달러라는 낮은 비용으로 범용 AI를 만들며 코딩 능력을 강점으로 내세웠다면, 문샷AI는 장문 처리와 추론 능력에 특화된 모델로 차별화를 꾀했다. 중국 AI 시장에서 ‘4마리 호랑이’로 불리는 지푸AI, 미니맥스, 바이촨 인텔리전스 역시 각자 다른 강점으로 경쟁하고 있지만, 장문 처리만큼은 문샷AI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평가다.

창업 7개월 만인 2023년 10월, 그들은 약속을 지켰다. 첫 제품 ‘키미 챗봇’은 한 번에 20만자의 중국어를 처리할 수 있었다. 당시 GPT-4나 클로드 2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2024년 3월에는 이를 200만자까지 끌어올렸다.

알리바바 8억달러 베팅…”클라우드 연동 포석”

문샷AI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초기 직원 40명으로 시작해 3억달러 가치를 인정받았고, 2024년 2월 알리바바 주도로 10억달러 이상을 투자받으며 25억달러 기업이 됐다. 같은 해 8월 텐센트가 참여한 3억달러 규모 투자로 현재 밸류에이션에 도달했다. 알리바바는 총 8억달러를 투자해 지분 36%를 확보했다.

알리바바의 대규모 투자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를 넘어선다. 알리바바는 자체 클라우드 서비스인 알리클라우드에 문샷AI의 기술을 통합해 기업 고객들에게 장문 처리 솔루션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커머스, 물류, 금융 등 방대한 문서를 다루는 분야에서 문샷AI의 기술은 실용적 가치가 높다.

중국 정부가 AI를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엔비디아 칩 수출 제한에도 불구하고 자체 생태계 구축에 주력하는 환경이 문샷AI 같은 스타트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33억달러라는 밸류에이션은 기술력뿐 아니라 중국 내수 시장의 잠재력, 그리고 빅테크와의 협업 가능성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베이징 본사를 중심으로 200여명 규모로 불어난 조직은 칭화대 등 중국 최고 인재 풀에서 연구진을 영입하며 AGI(범용인공지능)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올해 7월에는 1조 파라미터 규모의 ‘키미 K2’ 가중치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이는 딥시크와 마찬가지로 중국 AI 기업들이 오픈소스 전략을 통해 글로벌 개발자 커뮤니티와의 접점을 넓히려는 시도로 읽힌다.

넉 달 만에 업그레이드…”추론·검색 최적화”

문샷AI가 지난 6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키미 K2 씽킹’은 여러 벤치마크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7월 ‘키미 K2’ 발표 후 넉 달 만에 내놓은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국내 이용자도 키미 사이트에 접속하면 곧바로 사용할 수 있으며, 한국어 처리에도 큰 불편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 시장 진출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챗GPT와 클로드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지만, 장문 처리가 필요한 법률·금융·연구 분야에서는 문샷AI가 틈새 수요를 공략할 여지가 있다.

문샷AI가 공개한 성능 지표에 따르면, 추론 능력을 평가하는 HLE 테스트에서 ‘도구 사용 모드’ 기준 44.9점을 기록했다. 같은 조건에서 챗GPT 5.0은 41.7점, 클로드 소네트 4.5는 32.0점, 딥시크 V3.2는 20.3점이었다.

웹 검색 능력을 평가하는 브라우즈콤프에서도 키미 K2 씽킹은 60.2점으로 챗GPT 5.0(54.9점)과 클로드 소네트 4.5(24.1점)를 앞섰다. 최신 정보 수집 능력을 평가하는 Seal-0 테스트에서도 두 모델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고 문샷AI는 밝혔다.

다만 코딩 능력을 평가하는 SWE 벤치마크에서는 여전히 챗GPT 5.0과 클로드 소네트 4.5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 업계에서는 “추론과 검색에 최적화된 모델”이라는 평가와 함께 “범용성 면에서는 아직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훈련 비용과 관련해서는 논란이 있다. CNBC는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문샷AI의 모델 훈련 비용이 460만달러(약 67억원) 수준이라고 보도했으나, 문샷 측은 “공식 수치가 아니다”라며 부인했다. 만약 이 수치가 사실이라면 딥시크의 560만달러보다도 낮은 것이다.

창업 과정 적법성 논란…중재 절차 진행 중

하지만 화려한 성장세 이면에는 창업 초기부터 불거진 법적 이슈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전 GSR 벤처스 매니징 파트너 주샤오후는 “문샷AI는 모태사 리커런트 인텔리전스로부터 정식 분사 승인 없이 독립했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결의가 6개월 뒤 보완됐다는 것이다.

장위퉁 전 GSR 파트너의 지분 확보 과정을 두고도 투자자 의무 위반 논란이 제기됐다. 그가 리커런트 지분 9.5%에 비해 문샷 지분 14%를 확보한 것을 두고, 주샤오후는 LP와 주주에 대한 수탁자 의무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GSR, 경야, 보수, 화산, 만우 등 5개 투자사는 지난해 중재 절차를 개시했다. 창업자 양즈린과 장위타오가 경쟁업소 설립 금지 약정을 위반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법조계에서는 “중재 결과가 부정적일 경우 알리바바가 확보한 지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중국 국가사이버안전센터가 키미 챗봇의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 혐의를 적발하고 시정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AI 4마리 호랑이’ 중 지푸AI와 문샷이 동시에 적발됐다.

“10억 토큰 처리하면 AI 문제 대부분 해결”

양즈린은 “AI 발전은 ‘스케일링 법칙’을 따른다”며 “모델이 10억 토큰 길이의 맥락을 처리할 수 있다면 오늘날 AI가 직면한 대부분의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장문 처리 기술을 단순한 기능이 아닌 AGI로 가는 핵심 경로로 보는 시각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중국이 AI 레이스에서 승리할 것”이라며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은 기술 발전에 대해 냉소주의에 빠져 있다”고 평가했다.

문샷AI는 현재 중국 내수 시장에 집중하고 있지만, 모델 가중치 공개와 글로벌 벤치마크 도전, 그리고 한국어를 포함한 다국어 지원은 장기적인 세계 시장 진출 의지를 보여준다.

기타를 메고 방랑 시인을 꿈꾸던 청년은 이제 달의 어두운 면을 탐험하듯 AI의 미지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법적 분쟁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그리고 ‘장문 처리’라는 한 가지 길에 집중한 전략이 AGI라는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 수 있을지. 록페스티벌 무대에서 드럼을 두드리던 그 청년의 다음 연주가 궁금해진다.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현장 중심으로 취재하며, 최신 창업 트렌드와 기술 혁신의 흐름을 분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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