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의 최종 보스 같은 느낌입니다. 커 보이고 질 것 같고 어려워 보이지만, 보스는 깨라고 있는 거잖아요.”
12월 11일 컴업 2025 패널 세션에서 공정현 스밈 대표가 꺼낸 비유다. 스밈은 K-팝 팬들이 생일 광고, 커피차 같은 응원 상품을 구매하는 플랫폼 ‘데일리덕’을 운영한다. 고객의 95%가 중국인이다. 중국에 별도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유입됐다.
이너부스는 한국 캐릭터 IP를 글로벌 브랜드와 연결하는 B2B 플랫폼이다. 작년부터 중국 콘텐츠 기업들이 먼저 찾아왔다. “한국 캐릭터로 사업하고 싶다”는 제안이 적지 않게 들어왔다. 하지만 오은진 대표는 난감했다. 이 기업이 믿을 만한지, 지식재산권은 어떻게 보호하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현지에서 직접 시장을 마주하다
두 대표는 올해 4월 현지 시장을 파악하기 위해 비즈니스 트립으로 상하이를 방문했다. 그때 이랜드 차이나 EIV와 인연을 맺었다. EIV는 상하이에 11만 평 규모 산업단지를 운영하며 한국 기업 진출을 돕는다.
김남국 EIV 실장이 두 대표를 데려간 곳은 조이시티. 10만 제곱미터 규모로 스타필드만 한 리테일 공간이었다. 전체가 IP 상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일본 콘텐츠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한국 캐릭터는 간간히 보였다.
오 대표가 놀란 건 규모였다. “국내 백화점에서 IP 팝업 할 때와 비교가 안 되는 매출이 나왔어요. 소비 시장 규모가 다릅니다.” 공 대표도 비슷했다. “홍대 전체를 백화점에 넣은 것 같았어요. 중국이 폐쇄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IP에 대한 니즈가 엄청 높더라고요.”
5개월 뒤인 9월, 스밈은 상하이 팍슨-뉴코아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1층에서 SM엔터테인먼트 팝업이 진행되는 동안, 생일 카페를 운영했다. 한국에서 팬들은 하루 왔다 가는데, 중국 팬들은 매일 왔다. 두세 시간 거리를 가족과 함께 오는 팬도 많았다. “열정이 한국보다 더 높았어요.”
일본 계약의 10배, 하지만 정보 비대칭
이너부스가 체결하는 중국 라이선스 계약은 일본의 5~10배 규모다. 중국 소비 시장이 뒷받침하고, IP 상품 리테일 구조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정보가 적다보니 결정이 어려웠다.
“아직 중국에서 직접 사업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현지 파트너 의견이 모든 답인 것처럼 흘러갈 때가 있어요. 이게 정말 사실일까, 이게 다일까, 여기까지만 할 수 있는 걸까. 답답했습니다.”
오 대표가 겪는 문제는 정보 비대칭이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과 단절되며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다. 파트너는 찾았지만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전부인지, 더 나은 기회가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두 가지 시장이 있다
김남국 EIV 실장은 올해 수십 개 한국 스타트업을 만나며 강조한 말이 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시장이 존재합니다. 중국 시장과 비중국 시장입니다.”
중국 GDP는 한국의 10배다. 중국은 제조·SCM·소비·커머스·핀테크까지 글로벌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글로벌 이커머스 표준을 주도하고, 미국도 SCM에서 중국과 협상하며 난관을 겪는다.
중국 체제 이해도 필요하다. 관료들의 가장 중요한 KPI는 세수다. 외국 기업이 와서 매출을 올리면 그 지역 세수가 늘고, 담당 간부가 승진한다. 한국 스타트업이 지역에 오면, 그 간부는 자기가 관리하는 LED 광고판을 제공한다. 스밈 팝업에서 매출이 나면 세수로 연결되고, 자신의 지위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김 실장은 이를 활용하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이 생각 외로 많습니다. 전체 경제의 50%를 국영기업이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파트너들을 잘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한한령을 걱정하지만 SM, YG, 하이브 등은 중국 현지 법인에서 2천 명 이하 규모로 사인회를 하고 앨범을 판매한다. K-팝 문화는 한국만 가진 것이기 때문에 오리지널리티 니즈가 높다.
김 실장은 “중국은 ‘한한령’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쓰지 않습니다. 산업을 만들어 정부에 기여할 수 있으면 적극적입니다.”
관객들에게 질문이 나갔다. 관객은 중국을 기회이자 필연적 시장이라고 답했다.
보스는 깨라고 있다
오은진 대표는 중국을 “큰 위협이자 큰 기회”라고 정의했다. 미니소, 팝마트 같은 중국 리테일이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 IP들은 그 리테일 위에서 성장한다. 라부부 같은 중국 오리지널 IP가 대표적이다. 한국이 갖지 못한 구조다.
“하지만 1위 미니소 외에도 3위, 4위, 5위 리테일 브랜드가 몇천 개 있습니다. 한국 IP가 그 리테일망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면, 거기에 기여할 수 있다면 좋은 시장입니다.”
공정현 대표는 게임으로 비유했다. “보스는 깨라고 있는 겁니다. 무조건 깨야 하는 단계입니다.”
중국 고객이 95%인 회사는 4월에 상하이를 갔다. 9월에 팝업을 열었다. 팬들이 매일 왔다. 일본 계약의 10배를 받는 회사는 현지 파트너를 검증하는 중이다. 정보 비대칭을 어떻게 깰 것인가가 과제다. 게임의 최종 보스. 커 보이고 어려워 보이지만, 공정현의 말처럼 깨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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