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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버스터미널이 텅 빈 이유, 그리고 AI 시대의 과제

11일 열린 컴업 2025 퓨처토크 현장. (왼쪽부터) 최지영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상임이사(모더레이터), 한상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

성남 종합버스터미널은 분당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1990년대 신도시 시대, 시외버스 터미널과 CGV, 홈플러스가 입점한 이 건물은 상당한 인구 유입이 있었고 커머스가 잘 돌아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이 되었다.

12월 11일 컴업 2025 퓨처토크에서 한상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이 꺼낸 이야기다. “버스 터미널이 왜 그렇게 됐느냐. SRT, KTX, LCC 등 수많은 모빌리티들이 생기면서 DX(디지털전환)가 엄청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에요. 또한 멀티플랙스는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티빙 같은 OTT한테 넘어갔고, 옷가게들은 무신사로, 홈플러스는 쿠팡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는 이 풍경을 “한국 DX 성공의 증거”라고 불렀다. 하지만 동시에 “아쉬운 성공”이라고도 했다.

한반도 남쪽에 갇힌 디지털 전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회원사는 약 2,500개다. 그중 절반이 기관 투자를 받았고, 16개가 유니콘이 됐다.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 앱 대부분이 이들이 만든 것이다. 2010년 이후 모바일 혁명 속에서 한국은 의미있는 디지털 전환을 이뤘다.

문제는 그 성공이 한반도 남쪽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로 진출해 성공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우리의 시간은 이미 디지털로 전환됐고, 일상도 여행도 쇼핑도 손바닥 안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그 혁신은 국경을 넘지 못했다.

왜 글로벌로 가지 못했을까. DX 과정에서 도태된 기업들은 왜 생겼을까. 갈등을 조정하고 공존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상우 의장은 이를 “아쉬운 성공”이라 불렀다. AI 시대에는 이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한다

글로벌 진출 보고서가 보통 시장 규모와 점령 가능성을 분석하는 것과 달리,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가 제시한 글로벌 전략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진 기술이 그 나라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최우선 과제는 국토 개발이다. 네이버는 디지털 트윈과 AI 기술로 미래형 도시 건설을 돕는다. 김 대표가 직접 운전해 본 사우디의 내비게이션은 품질이 낮았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그 시장에 얼마나 차별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네이버는 새 디지털 지도를 만들고 있다.

태국은 다르다. 관광이 국가 산업의 핵심인데, 코로나19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는 현지 소버린 AI 기업과 관광 AI 에이전트를 개발 중이다. 일본의 문제는 초고령화다. AI가 안부 전화를 하고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서비스를 지방자치단체와 만든다.

김 대표의 논리는 명확하다. 그 나라에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한국 기업이 가서 또 경쟁하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그 나라가 어려워하는 문제,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찾아 함께 풀어야 한다.

한국은 너무 좁다

한상우 의장이 제시한 로컬과 글로벌의 연결고리는 흥미롭다. 코스포가 1년간 제주, 부산, 전북, 충북, 세종에서 ‘컴업 로컬’을 열며 마주한 문제들이 있다. 제주는 다낭과 푸껫에 밀려 관광객이 급감했다. 전북 도심은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로 비어가고 있다. 이 문제들은 태국의 관광 위기, 일본의 고령화, 사우디의 국토 개발과 본질이 같다. 제주에서 관광을 살리려 고민한 경험이 태국에 적용 가능하고, 전북에서 마주한 지역 소멸 문제가 일본 지방도시의 과제와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김유원 대표가 지적한 시장 규모의 한계다. 미국 스타트업은 의료 종사자를 위한 소셜 네트워크 같은 버티컬 서비스를 만든다. 뾰족한 문제에 집중하고, 그 서비스로 숫자를 만들고, 투자를 받고, 스케일업하고, 글로벌로 나간다. 이것이 실리콘밸리 방식이다.

한국은 다르다. 의료 종사자나 소방서를 위한 SaaS를 만들어도 고객이 몇 개 안 된다. 숫자가 나오지 않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혁신 기술이 있어도 초기 검증을 할 마켓 사이즈 자체가 부족하다.

식당 하나 잘되면 옆에 똑같은 집을 차리는 현상이 반복된다. 김 대표는 “먹고살기 힘들고 좁아서 그런 겁니다. 형제들이 같은 방 쓰면 사이가 좋을 수 없어요.” 고밀도 사회에서 생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플랫폼이 문을 열어주는 이유

한상우 의장은 과거를 돌아봤다. 플랫폼은 본질적으로 독점을 지향한다. 문제는 자제하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생태계를 황폐화시킨 경우들이었다. “내일은 없다, 오늘 배 터질 때까지 먹겠다는 식”이었다. AI 시대에는 달라야 한다. 소버린 AI부터 영세 자영업자까지 AI 전환의 혜택이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유원 대표가 제시한 해법은 명확하다. 네이버가 일본, 동남아, 중동 시장을 여는 건 자사 확장만을 위한 게 아니다. 한국 스타트업이 그 시장에서 검증받고 숫자를 만들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한상우 의장이 그린 그림도 같다. 네이버의 파운데이션 AI가 기반이 되고, 그 위에 산업별 AX가 만들어진다. 스타트업들은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구체적 상품을 만든다. 이날 네이버클라우드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이를 구체화했다. 네이버가 AI 인프라를 제공하고, 스타트업들이 버티컬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함께 글로벌로 나간다. 한상우 의장의 말처럼 “한국의 작은 스타트업들이 10억 명이 쓰는 앱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버스, 극장, 대형마트가 사라진 자리를 SRT, 넷플릭스, 쿠팡이 채웠다. 누군가는 비워지고 누군가는 채워진다. 이게 DX였다. AI도 같을 것이다. 차이는 하나.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같은 방 쓰던 형제들이 각자 방을 찾아 함께 나간다.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현장 중심으로 취재하며, 최신 창업 트렌드와 기술 혁신의 흐름을 분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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