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화어 이야기] ‘따름벗’과 ‘딸림벗’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나요?
우리말, 한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의 폭과 넓이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나를 어떻게 표현할지, 또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고요.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오해의 폭도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모순된 표현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익명과 실명이 혼재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는 ‘인터넷 세상’일 테고요.
우리나라는 고유한 ‘우리 말’을 가진 지구상에 몇 안 되는 국가입니다. 게다가 한 국가의 지도자가 최고의 브레인을 집합(?)시켜 과학적인 창제원리를 근거로 문자를 만든 사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지요. 얼마 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표현된 세종대왕의 고뇌를 보고 가슴 두근대던 ‘한글인’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네네. 우리는 그런 자랑스런 문자와 말을 가진 국민이랍니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나라 글이 더 널리 잘 알려지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 한글은 디지털 입출력에 상당히 적합한 문자라고들 하더군요. 입력 타수가 가장 빠른 문자란 이야기는 흔히 들어보셨을 겁니다. 모바일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보면 세계에서 가장 진화된 문자랄 수도 있겠네요. 예를 들어 트위터만 해도 그렇죠. 영어의 140자와 한글의 140자는 담을 수 있는 의미 범위에 엄청난 차이가 있잖아요.
누리꾼은 어떻게 나온 말일까?
그러나 이런 한글 사랑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 역시 인터넷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에서 언급한 외래어, 즉 트위터, 인터넷 등은 모두 영어에서 파생된 단어니까요. 인터넷의 언어가 영어를 중심으로 통용되는 한, 점점 더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는 한글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어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고민하고 있을까요?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 당신은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혹시 고민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뭐, 그걸 굳이 고민해. 그냥 영어로 쓰면 되지.’라고 생각하기엔 뭔가 찜찜하지 않으신가요? 이 글은 그런 고민에서 시작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뾰족한 방법은 없더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민이 모이고 또 쌓이다 보면 묘안이 나올 수도 있는 법이니까요.
쉽게 시작해보겠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누리꾼’이란 단어가 매우 흔히 쓰이고 있습니다. 예, 바로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netizen’의 한글 순화어입니다. ‘누리’는 ‘세상, 세계’라는 의미의 순 우리말이고요. ‘꾼’은 사람이나 무리를 뜻하는 말이죠. 이를 합성하여 만들어낸 신조어입니다. 인터넷을 새로운 ‘세계’란 의미의 ‘누리’로 지칭하면서 관련한 다양한 파생어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교과서 등에 기재되는 ‘누리집’은 홈페이지를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성인 화자들에게는 좀 낯설 수도 있는데, 학교 현장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지금의 학습자들이 사회에 나올 즈음에는 더 보편적으로 쓰이겠죠. 교육의 힘이란 게 그런 것이니까요.
국립국어원에서 이런 일을 합니다.
이런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 기관은 바로 국립국어원입니다. 이 사이트로 가보시면, 순화어를 검색해서 확인해 볼 수 있게 되어있죠. 아, 잠시 용어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homepage’를 ‘홈페이지’로 표기하는 건, ‘외래어 표기법’에 준하여 적용한 것이고요. ‘홈페이지’라는 외래어를 ‘누리집’이라고 바꿔 쓰는 건 ‘순화어’라고 이야기합니다. 홈페이지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가급적 우리말인 ‘누리집’으로 쓰자는 것이지요. 대개 외국어 신조어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언제나 긍정적으로만 이뤄지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바꾸기엔 사실 너무나 많은 말이 쏟아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이래저래 왈가왈부 말이 많은 용어들도 있고, 누리꾼들의 비판만 산더미 같이 받고 유명무실해지는 말들도 많답니다.
‘댓글나눔터’가 뭡니까?
순화어 공지는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거의 매달 이뤄집니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등재되는데요. 한참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던 단어는 바로 ‘트위터’였죠. 트위터의 순화어는 바로 ‘댓글나눔터’였습니다. 댓글은 이제 일상에서 쉬이 쓰이는 순화어인데요. 사실 트위터 유저라면 이 말이 트위터의 본래 의미를 담지 못한다는 생각을 응당 하셨을 겁니다. 사실, ‘트위터(twitter)’가 댓글나눔터가 된다면, ‘tweet’이 댓글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는 말인데, 사실 댓글과 트윗은 엄연히 다른 패러다임을 갖고 있잖아요. 덕분에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고 사실상 사어(死語)가 되었죠. 이와 같이 ‘따름벗(팔로잉)’, ‘딸림벗(팔로워)’이란 말도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트위터 순화어에는 반기를 들지만, 이 말들은 꽤 예쁘게 잘 순화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아마도 글을 읽으시는 분들 가운데 블로거도 많을 듯 하니, 블로그에 대한 말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릴까요? 자, 일단 블로그의 순화어는 ‘누리사랑방’입니다. 그럼, 블로거는요? 예, ‘누리(사랑)방지기’라고 하지요. 파워블로거는 좀 길어집니다. 바로 ‘인기누리(방)지기’라고 합니다. 점점 진행될수록 어딘가 안드로메다로 가는 느낌이 되는 것 같지요? 새로운 말이 낯설기 때문일 수도 있고, 뭔가 본 단어의 의미를 온전히 담고 있지 못해서일 수도 있을 겁니다. ‘파워블로거’는 단순히 ‘인기’만으로 선정되는 건 아니니까요. ‘파워블로거’는 미국 등지에서 ‘프로블로거’, ‘알파블로거’라고도 쓰입니다. 만일 ‘인기누리지기’라고 해버린다면, 그런 ‘전문적인 블로그 운영자 또는 필자’의 의미는 담지 못하게 되지요. 사실 ‘파워블로거’가 이슈가 되는 건, 그들이 단순히 인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고요. 그밖에도 퍼스나콘은 ‘개성표현꼴’로, UCC(유시시)는 ‘손수제작물’로 번역합니다. 이 말들이 현재 국어교과서에는 종종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순화어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순화어는 ‘우리말 다듬기’ 라는 사이트에서 조정을 거쳐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의 순화어 사전에 등재됩니다. 실제 사람들이 이 사이트에 자유롭게 순화할 단어들을 제청하면,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게 되지요. 2011년까지는 사람들에게 투표를 해서 가장 적절한 말을 뽑았는데요. 이러다 보니 말의 정련도가 떨어지게 되어, 2011년 12월부터는 ‘말다듬기 위원회’의 전문가 위원들이 다양한 제언 가운데 적절한 말을 선발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좀더 엄선된 말이 나오게 되었지요. 하지만 근래 나오는 순화어들을 보면 꽤 괜찮은 말도 있지만, 뭔가 괴리된 느낌의 말도 적지 않은 느낌입니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요즘 생성되는, 특히 IT업계에서 쏟아지는 말들이 대체로 그 분야의 섬세한 기능과 의미를 내포한 단어가 많아서가 아닐까 싶어요. 앞서 언급한 ‘댓글’과 ‘트위터’의 차이가 바로 대표적인 예겠지요.
나가며
점차 세계가 좁아진다고들 하는데, 고유명사에 가까운 용어를 굳이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이 하릴없이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흔히들 한 나라의 말은 그 나라 사람들의 얼이라고 하잖아요. 한글을 좀더 바르게 많이 쓰고, 어휘를 늘리는 것 역시 우리말을 사랑하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토박이말을 좀더 발굴하고, 신조어를 용기 있게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실 트위터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를 가지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원어는 이미지를, 순화어는 기능을 표현했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뭔가 미묘하게 안 맞는 말이 된 게 아닐까요. 또 말을 만들 때, 지칭하는 대상이 가진 기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의 자문이나 조언을 반드시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말은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말이 신비로운 건,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다시 정신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겠죠. 아마도 순화어는 그런 정신을 믿는 이들의 움직임일 겁니다.
앞으로 IT용어의 순화어 정책이 어떤 방향을 향해 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치 앞도 파악할 수 없는 인터넷 세상이 바로 지금이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는 정확하게 갖고 가는 게 필요하겠죠. 우리는 한글을 꾸준히 사용할 것이고, 그 말은 무척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언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걸 지켜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화어도, 순화어 정책도 좀더 세련되어졌음 하는 바람이 좀 있네요.
꼬리말:
근데, ‘스타트업(start up)’은 어떻게 순화하는 게 좋을까요? (하하하!) 과연 어디까지가 ‘스타트업’인가요? 그럼, 스타트업 이후의 존재들은 뭐라 해야 할까요? 만일 스타트업이 망하면 ‘엔드 다운(end down)’인가요? 아마도 이런 말장난 같은 생각부터가 순화어에 대한 고민의 시작일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