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를 바꾸면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VC가 한다면?
사회적 기업도 대규모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위기 상황일 때 미션과 영리 중에 어떤 가치를 선택해야 할까?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려는 사람부터 투자자, 혹은 예비창업자라면 쉽게 해볼 만한 고민을 하고 해결점을 공유하는 자리가 열렸다.
8일 SK행복나눔재단 주최로 열린 ‘소셜 이노베이터 테이블’에서 학습 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토도수학, 킷킷스쿨 등 교육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 에누마의 이수인 대표와 이성수 前 신나는조합 상임이사가 소셜 벤처와 지원기관의 협력 사례를 이야기했다.
이수인 에누마 대표
‘에누마’, 이름이 특이하다.
에누마는 ‘이뉴머레이션(enumeration)’의 의미 그대로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이 학습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기회를 제공하자는 뜻을 품은 단어다. 실제로 팀 안에 다양한 국적의 팀원들이 있는데 최대한 다양성을 담고 싶었다.
그간의 성과를 이야기해 준다면?
20개국에서 교육앱 기준 다운로드 1위다. 또한 2014년 6월까지 애플 매장 전시 기기에 설치되어 있었다. 애플에서 좋게 평가해 줬다.
지금까지 500만 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를 했다. 이 돈, 충분한가.
일반 스타트업에게 500만 달러는 큰 돈이다. 하지만 우린 사회적 기업, 스타트업 이전에 게임개발사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기 위해 일반 게임사들은 700억 원을 투입했다. 에누마의 도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금도 자금이지만,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우리의 꿈을 현실로 만들려 한다.
에누마의 투자자들은 어떤 특징이 있나.
기업을 강하게 단련시킨다. 스타트업 경연대회가 생기면 무조건 참석하라고 한다. 그것이 정말 나에게 좋은 경험이었다. 피치를 위해 연습을 해야 했고, 영어 공부도 했다. 그러면서 대표의 자질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담대해진 것이다. 한 아이의 엄마와 아시아인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투자자들 중엔 소프트뱅크벤처스, 중국의 탈(TAL) 에듀케이션 그룹 등이 있다. 이들은 대표적인 영리 추구 기업이다.
영리를 추구하지만 마음이 따듯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만날 때 우리의 스토리와 비전을 피칭했다. 7년 전 태어난 첫 아이가 장애아였던 것을 계기로 전세계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내용이었다. 에누마의 비전을 듣고 공감해준 사람들이 우리에게 투자했다.
물론 대부분의 투자사는 가혹했다. 서비스를 듣고 표정이 어두워지거나, 대표를 바꾸면 투자하겠다는 업체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두 투자사는 나를 믿고 투자해준 곳이어서 감사하다.
투자를 유치할 때 미션과 상관 없이 100% 영리 목적으로 제안한 투자자가 있었을 것 같은데.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었을 때 그런 제안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여자, 아시안, 영어를 못하는 점을 꼽으며 회사가 성장한 뒤 이사회에서 그만두라고 할 때 그만 둘 수 있겠냐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무례한 제안이었는데, 그땐 여유가 없을 때라 일단 수긍하고 투자금은 받았다. 이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투자자 앞에서 우리 미션을 숨겨본 적이 없다.
투자자가 듣고 싶은 대답을 한다해도 결국 인연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실리콘밸리에선 투자를 결혼에 비유한다. 처음 들었을 땐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100건 정도의 피칭을 하고 몇 건의 유치를 해본 지금은 이해가 간다.
사업 운영을 하면서 투자가 연속적으로 진행됐는데 문제는 없었나.
우리는 사회적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회사 구조가 꽤나 잘 짜여져 있다고 자부한다. 이유는 우리 사업에 첫 번째 투자를 한 사람이 여전히 이사회에서 큰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모든 게 잘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거기엔 실리콘밸리 내 우리의 회사 가치 평가가 포함돼 있다. 그는 기업 가치에 맞지 않는 투자를 받게 되면, 금액이 터무니 없이 적든 많든 다음 투자 라운드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걸 지켜오니 무리 없이 여기까지 왔다.
미국서 시리즈A 투자 이후 업체 55%의 대표가 바뀐다는 통계가 있다. 에누마 또한 시리즈 A라운드가 끝난 기업인데.
우리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았다. 특히 실리콘밸리에 있을 땐 대표직에서 물러날 준비가 돼 있냐는 소리도 종종 들었다. 미국 스타트업은 반절 넘는 기업의 대표가 바뀌지만 그만큼 바뀌지 않는 대표도 많다.
그에 비해 한국(투자사)은 다르더라. 창업자가 회사를 떠나지 않겠냐는 각서를 쓰라고 했다. 미국에선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 회사는 이사회의 것이고, 잘 운영되지 못하면 대표를 바꿔서라도 타개 방안을 찾는다.
국내와 미국 간 지원 기관의 차이가 있을 텐데.
먼저 국내 지원 기관은 대부분 친절하고 새롭게 꾸려진 프로그램들이 많다. 그에 비해 미국 지원 프로그램은 오래된 것들이 대부분이고, 40년 경력의 베테랑도 흔히 볼 수 있다.
대표로서 역량을 키우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보육 프로그램은 무엇이었나?
기본적인 피치 경쟁은 다 도움됐다. 특히 발표를 덜 망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망쳐도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라는 걸 배웠다.
창업인들끼리 모이는 프로그램도 도움이 크게 됐다. 창업의 어려움, 솔직함을 공유하다 보면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리곤 했다. 멘토, VC 레퍼런스 체크부터 가정사와 개인적인 소회 등 다양한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런 공유도 도움이 되었다.
킷킷스쿨이 전세계로 확산 중이다. 다른 지원 통로를 고민해 본적 있나.
플랫폼으로 공유하는 프로그램이어서 규모가 매우 중요하다. 이에 공감하는 러시아, 중국, 인도 등지의 투자자를 만나고 있다.
현재 추진중인 프로젝트나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현재는 2억 5천만, 장래엔 전세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로 성장하고 싶고 열심히 도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