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서점을 문화공간으로 만든 기업가 영면하다.
국내를 비롯해 전세계가 서점문화의 부재를 걱정하고 있는 것에 비해 대만에서 서점은 국민들에게 매우 친숙한 공간이다. 대만인들에게 있어 서점은 책을 읽고, 구매하는 공간이자 문화를 소비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해외에서 보기에 대만에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남부럽지 않은 서점이 전국에 다수 포진되어 있다. 특히 대만 수도 타이페이의 둔화난루(敦化南路)에 있는 청핀서점(청핀슈띠엔, 誠品書店)은 대표적이다.
청핀서점은 마치 잘 지어진 도서관과 같은 외양을 보여준다. 더불어 서점 내부는 남녀노소 할 것없이 열심히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청핀서점은 책을 구매하는 공간이지만, 문화를 소비하는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을 받는 곳이다. 연인을 기다리면서 책을 보고, 서점이 위치한 건물에서 쇼핑과 식사를 하는 것이 데이트의 공식처럼 되어있다. 본점의 경우 24시간 열려있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종일 보고 싶은 책들 읽을 수 있으며, 심야시간에 마땅히 거할 장소가 아쉬운 이들에게는 편안한 안식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주말의 경우 낮시간대 손님보다 밤시간대 손님이 더 많은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청핀서점은 대만 서점의 랜드마크로 인식되어 있다. 이는 브랜드가 되어 청핀서점을 세계에 알리는 단초가 되었다. 어찌보면 가장 똑똑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청핀서점은 지난 1989년에 문을 연 뒤 25년간 42개의 체인점을 보유한 서점재벌로 성장했다. 아울러 대만 인구수보다 많은 사람이 방문한 장소가 되었다.
‘좋은 책은 외롭지 않다(好書不寂寞)’ 는 모토와 함께 오늘날 청핀서점을 이룩한 창업가 우칭요우(吳淸友) 회장이 지난 7월 18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7세. 대만을 비롯해 중국 본토에서도 한 달 가까이 그에 대한 추모 열기가 지속되었다.
황혼기 오프라인 서점의 롤모델
우회장은 서점을 인문학 공간이자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낸 인물로 평가받고 있지만 시작부터 그것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1989년에 지하 1개 층에서 시작된 청핀서점은 처음에 미술, 건축 도서를 주로 판매하는 곳이었다. 이후 공간을 확장하며 다양한 종류의 도서, 특히 인문학 도서에 집중한다. 청핀서점은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노출을 하는 여느 서점과는 달리 여러 분야 도서를 확보하고, 소개함으로써 다양한 성향의 고객을 서점에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 이는 향후 청핀서점이 브랜드가 되는 근간이 된다.
청핀서점은 일찌감치 서점에 문화를 입히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독서를 하기에 편안한 공간, 시각적으로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중요시했다. 새로 개점하는 체인은 이전과는 다른 디자인 스타일, 편안한 독서 환경을 중점으로 만들어졌다.
아울러 현재의 청핀서점은 단지 책만 있는 공간이 아니다. 영화관, 전시관, 음반판매점, 식당, 심지어 호텔까지 포함한 다양한 시설을 부가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발전했다. 이를통해 2013년 매출은 4억2500만 달러(약 4715억원)에 이른다.
1999년 세기의 전환기 당시 중국은 경제 발전과 더불어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 등지에서 우후죽순식으로 대형 서점이 등장했다. 한동안 성업을 이루던 오프라인 서점은 아마존닷컴과 같은 온라인 서점이 등장하며 급속한 하락세를 겪으며 폐점하는 곳이 속출했지만 살아남은 다수의 오프라인 서점은 청핀서점과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과 영업방식을 취하며 생존한다. 아울러 경기 호조와 함께 근래 오픈한 오프라인 서점의 롤모델도 청핀서점이다.
눈앞에 수익이 아닌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가치에 집중
청핀서점이 손익분기점을 넘켜 흑자를 기록한 것은 2004년이었다. 개점 15년 만의 일이었다. 28년 동안 전자 상거래 플랫폼을 통한 서적 판매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직접 방문하는 형태의 공간을 지향하는 우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정책 때문이었다.
우칭요우 회장은 눈앞의 이익이나 성공보다 기업이 사회와 대중에게 제공해야하는 가치에 집중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우회장의 방향성은 대만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청핀서점의 브랜드 가치가 되었다.
중화권에 우회장의 추모열기가 뜨거웠던 이유는 조급한 성공을 추구하는 시대에 대중과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던 존경받는 기업가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