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화면으로 번진 불

물이 강으로 흘러가듯, 사람들의 눈이 화면으로 쏠렸다. 수십 년 전, 거실 한구석에 놓인 텔레비전은 가족의 눈길을 모으는 구심점이었다. 화면은 작았고, 번호는 몇 개 되지 않았다. 시간표가 정해져 있었다. 기다림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유튜브라는 화면은 누구의 손바닥 위에나 있다. 기다림이 사라졌다.

강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사람들의 눈길도 저항이 적은 쪽으로 흘러간다. 텔레비전이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이제는 유튜브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손가락 하나면 불러낼 수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원하는 순간에 볼 수 있다. 텔레비전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채널에서 정해진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유튜브는 시간도, 장소도, 내용도 정해진 것이 없다. 마치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처럼 거침이 없다.

1970년대, 1980년대, 우리 가정에서 텔레비전은 신성한 존재였다. 가족은 그 앞에 모여 앉았다. 방송 시간을 맞추기 위해 귀가 시간을 조절했다. 식사 시간도 프로그램에 맞추었다. 9시 뉴스는 모든 가정의 의무적인 의식이었다. 온 가족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텔레비전 앞에 모였다. 드라마 방영 시간이면 거리는 한산해졌다. 주인공의 슬픔에 함께 울고, 코미디에 함께 웃었다.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면 온 국민이 같은 화면을 보았다. 올림픽 중계, 월드컵 경기,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을 볼 때면 텔레비전은 국민을 하나로 묶는 끈이었다.

미국에서는 2022년, 스트리밍 시청 시간이 처음으로 케이블TV를 넘어섰다. 스트리밍 점유율 34.8%, 케이블TV 34.4%. 숫자는 작지만 그 의미는 크다. 물줄기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디지털 비디오 시청 시간은 2022년부터 전통적인 TV 시청 시간을 넘어섰다. 예전에는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았다. 지금은 각자의 화면을 들여다본다. 가족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다른 세계를 보고 있다. 아버지는 낚시 채널을, 어머니는 요리 방송을, 아들은 게임 스트리밍을, 딸은 뷰티 콘텐츠를 본다. 한 지붕 아래 네 개의 서로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흐르는 물은 멈추지 않는다. 시대의 변화 역시 그렇다. 과거 텔레비전이 라디오를 대체했듯이, 지금은 유튜브가 텔레비전을 대체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유튜브는 2023년 1월부터 스트리밍 시청 시간 1위를 매달 기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매일 TV를 통해 약 10억 시간의 유튜브 콘텐츠가 소비된다. 이 숫자는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의 눈이 머무는 시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눈이 머무는 곳에 마음도 머문다. 유튜브는 단순한 동영상 창고가 아니다. 삶을 보는 창이 되었다.

유튜브는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와 같은 유료 OTT 서비스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유료 OTT는 오리지널 콘텐츠로 승부한다. 넷플릭스는 ‘오직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에 매년 수십조 원을 투자한다. 티빙은 CJ ENM과 JTBC의 드라마와 예능에 강점이 있고, 웨이브는 지상파 3사의 콘텐츠를 독점한다. 그들은 한정된 콘텐츠로 정해진 구독료를 받는다. 반면 유튜브는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대부분의 콘텐츠는 무료로 볼 수 있다. 유튜브의 접근성은 유료 OTT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이다.

이런 변화는 인기 예능이었던 ‘최강야구’에서도 볼 수 있다. 제작사 C1스튜디오는 JTBC와 갈등을 겪으며 독자적으로 ‘불꽃야구’라는 이름으로 콘텐츠를 제작했고, 5일 첫 방송된 ‘불꽃야구’는 동시 접속자 13만 명을 넘기며 뜨거운 인기를 실감케 했다. 2시간에 달하는 콘텐츠임에도 불과 이틀 만에 유튜브 조회수 200만 회에 근접하고 있다. 이는 유튜브가 얼마나 강력한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유튜브의 영향력은 다른 OTT와 비교할 수 없다. 연령대와 상관없이 유튜브 이용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10대부터 70세 이상 노년층까지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90% 이상의 이용률을 보인다. 넷플릭스와 같은 유료 OTT는 주로 20~40대 젊은층에 인기가 있지만, 60대 이상 고령층에서는 이용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반면 유튜브는 70세 이상 노년층에서도 이용률이 100%에 가까울 정도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방송국은 권력이었다. 몇 개 되지 않는 방송국이 무엇을 보여줄지 결정했다. 시청자는 그저 주어진 것을 보는 수동적인 존재였다. 채널을 돌리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누구나 방송국이 될 수 있다.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 전문 장비도, 거대한 자본도 필요 없다. 방 한 칸에서 세계적인 스타가 탄생한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유튜브 CEO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TV 시청은 유튜브를 의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자랑이 아니라 현실이다. 유튜브는 TV 앱을 개선하며, 미국에서는 TV가 유튜브 시청의 주요 기기로 자리 잡았다. 과거의 텔레비전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듯이, 이제는 유튜브가 텔레비전으로 들어갔다. 물이 그릇의 모양을 따르듯, 유튜브는 텔레비전의 형태를 빌렸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달라졌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결정적 차이는 비용이다. 넷플릭스는 매달 구독료를 내야 한다. 그 비용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다. 특히 60대 이상 고령층은 유료 콘텐츠에 지갑을 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 유튜브는 기본적으로 무료다. 광고만 감수하면 된다. 돈을 내지 않아도 무한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이러한 경제적 접근성이 유튜브가 전 세대에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유튜브는 검색, 동영상, 콘텐츠 소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모바일에서는 국민 앱인 카카오톡과 비슷한 월간활성이용자를 기록할 정도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메신저로 대화하는 시간만큼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다. 말하는 시간과 보는 시간이 비슷해졌다.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과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균형을 이루었다. 아니, 어쩌면 화면을 보는 시간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미국 Pew Research Center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83%가 유튜브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로 꼽았다. 페이스북(68%), 인스타그램(47%)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소셜미디어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그런데 유튜브는 영상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말이 아니라 영상으로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문자보다 영상이, 정지된 이미지보다 움직이는 이미지가 더 강력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글을 읽는 시대에서 영상을 보는 시대로 바뀌었다. 활자 문화에서 영상 문화로 전환된 것이다.

유튜브는 쇼츠, 라이브, 팟캐스트, 스포츠, 시트콤, 토크쇼 등 TV의 다양한 포맷까지 흡수하며 미디어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바다로 흘러들어간 강물은 다시 증발하여 비가 되어 산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유튜브라는 바다는 이전의 모든 물을 빨아들이기만 할 뿐, 돌려보내지 않는다. 텔레비전의 모든 형식을 흡수하고, 새로운 형식까지 만들어낸다. 기존의 방송사들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일부를 유튜브에 올리고, 유튜브 전용 콘텐츠도 만든다. 적응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텔레비전을 넘어섰다는 것은 단순히 시청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이 가족을 한자리에 모았다면, 유튜브는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흩어지게 했다. 텔레비전이 국가와 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었다면, 유튜브는 취향과 관심사에 따른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었다. 텔레비전은 모두가 같은 것을 보게 했다. 유튜브는 모두가 다른 것을 보게 했다. 그러면서도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전 세계적으로 연결했다.

불이 번져나가듯 유튜브는 확산되었다. 그 불길은 멈출 줄 모르고 번져나간다. 사람들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유튜브는 이미 텔레비전을 넘어 새로운 바다가 되었다. 그 바다에 모든 강물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과거의 텔레비전이 그랬듯이, 유튜브도 언젠가는 새로운 기술에 자리를 내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유튜브는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미디어이다. 손바닥 위의 작은 화면이 거실의 큰 화면을 이겼다. 개인의 취향이 가족의 타협을 이겼다. 언제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는 편의성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를 이겼다. 유튜브는 텔레비전을 넘어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댓글 (2)

  1. 이현영 아바타
    이현영

    이런 기사가 네이버 메인으로 가야 하는데 말이죠.

  2. 김명화 아바타
    김명화

    손요한 기자님
    정확한 기사 감사합니다
    축복받으세요

Leave a Comment


관련 기사

스타트업

유튜브 콘텐츠를 ‘손끝으로’… 닷, 日에서 시각장애인 촉각 체험 시연

트렌드

동영상 앱, 한국인 94% 사용…유튜브 사용시간 점유율 67%

트렌드

[주말판] “월급보다 조회수?” 유튜브에 올인하는 부업 사회의 아이러니

트렌드

유튜브, 글로벌 기업들과 함께 ‘청소년 디지털 웰빙 이니셔티브’ 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