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디지털과 친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아날로그를 찾는 이유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로 소비자를 설득하라] “디지털과 가장 친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아날로그를 찾는 이유”
#프롤로그 : 디지털 시대가 주는 공허함
과거에는 편지를 쓰고 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우편함에 가져가는데 몇 날 며칠이 걸렸다. 답장을 받는 데는 시간이 더 소요됐다. 그러나 지금은 이메일을 통해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지구 반대편으로 몇 초 안에 전송할 수 있다. 물론 답장도 몇 분 안에 받을 수 있다. 이메일이 우리의 시간을 절약시켜 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편리해진 만큼, 따뜻한 인간적 감성은 빼앗긴 것 같다.
종이 편지를 쓰면서 한 두줄 썼다가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썼다가 결국에는 종이를 찢고 다시 쓰기 시작했던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성일 것이다. 내 생각을 한 통의 편지 속에 다 담아내기 위해 우리는 몇 번의 심사숙고를 거쳤다. 그리고 답장 역시 심사숙고를 거친 편지이기를 기대했다. 편지를 쓰고 받는 행위 속에서 우리는 기다림, 설레임 등의 따뜻한 감정을 느꼈고 인간적인 소통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메일은 간편하게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소통하는 비즈니스적 관계로 느껴진다. 필자도 하루 동안 수십 통의 이메일을 받고 보내면서, 문득 영혼이 없는 인간적이지 못한 소통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이메일보다는 그 사람의 목소리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전화가 더 편하다.
편지를 더는 안 쓰게 되면서 우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고 그것은 우리의 삶을 개선해 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은 피로해졌고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이 좀 더 편한 생활을 추구한 결과,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항상 부작용이 생기곤 했다.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이 대표적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은 고대 수렵채집인들에게 풍요와 안전을 제공하며 진화적 성공을 가져왔지만, 개인의 행복의 관점에서는 타는 듯한 태양 아래 물이 든 양동이를 운반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아날로그를 넘어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을 통해 모든 것이 빠르고 편리해졌고, 디지털혁명의 물결은 일상생활을 포함하여 우리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일상의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사람들은 피로해 하며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고 편리해졌음에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허함을 느끼며 과거의 아날로그 감성을 찾고 있다. 최근 들어 ‘디지로그’나 ‘아날로그의 반격’과 같은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으며, 아날로그 감성이 담긴 제품이나 서비스를 찾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10통의 이메일보다 1통의 손편지가 훨씬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디지털 시대인 요즘 더욱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이러한 아날로그를 찾는 현상을 과도기(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에 발견되는 흔한 현상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사회문화적으로 상당히 큰 흐름(메가트렌드)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찾는다는 역설은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다. 특히 가장 디지털과 친숙하다고 여겨지는 ‘밀레니얼 세대’(80년대 초반부터 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가 더 아날로그를 찾고 있다는 점은 그 행간의 맥락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찾는 현상을 분석하여 브랜드가 어떻게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에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차가운 디지털 세상에서 따뜻한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현상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A) 음악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다 : LP(엘피)
작년 영국에서는 LP레코드앨범 판매액이 디지털 다운로드를 넘어섰다고 한다. 영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LP는 그야말로 붐을 일으키고 있는데,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에 따르면 2015년 전 세계 LP 음반 판매량은 3200만 장으로 199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2008년(500만 장)에 비해 6배 이상 뛴 수치다. 미국에서는 LP 판매수익이 4억1600만 달러(약 4700억 원) 규모로 광고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 수익을 추월했을 정도다.
국내도 LP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국내에서 종적을 감췄던 LP 제작 공장이 13년 만에 부활했으며,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등에서는 LP와 턴테이블 상품이 당당히 매대에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작년 1~9월 교보문고 LP 판매량은 전년 대비 166% 증가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향수에 잠긴 중장년층 남성이 주요 소비층이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LP를 구매하는 연령층에서 10~30대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LP를 경험한 세대도 아닌 이들이 LP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인간적 감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코드판이 꽂힌 서가에서 앨범을 골라 디자인을 꼼꼼히 들여다보다가 턴테이블의 바늘을 정성스레 내려놓는 행위, 그리고 레코드판의 표면을 긁는 듯한 음악 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오기 직전 1초 동안의 침묵.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손과 발과 눈과 귀, 심지어 (레코드 표면에 쌓인 먼지를 불어내기 위해) 가끔은 입도 사용해야 한다.” (데이비드 색스가 쓴 『아날로그의 반격』 中)
위의 묘사처럼 LP는 내 몸을 움직여야 하고 잡음도 들어야 하지만, 디지털 음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인간적 감성을 오감으로 느끼게 해준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이 발매한 LP를 뜯지 않고 소장용으로 간직하겠다는 팬심이 작용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눈에 보이는 실체를 가지고 싶어하는 인간의 소유욕, 즉 인간적 감성이 발현된 것이다.
B) 사진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다 : 구닥
사진앱 ‘구닥’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다. 이 앱은 천원을 지불해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24장의 사진만 찍을 수 있고, 사진을 보기 위해서는 3일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 필름카메라의 포맷을 디지털로 옮겨온 ‘구닥’은 얼핏 보아서는 디지털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앱처럼 보인다. 찍은 즉시 확인할 수 있고 다양한 스마트기기에 저장하고 SNS에 바로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서 이러한 사진앱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싶겠지만, 이 앱은 현재 세계 9개국 앱스토어 전체 1위를 기록 중이다. 콘텐트 결제에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까지도 왜 천원을 지불해서 다운받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옛날 필름카메라의 향수를 자극한 것이 ‘구닥’의 성공요인이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 사실 ‘구닥’의 주 사용층인 10~20대는 필름카메라를 경험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구닥’의 성공요인은 디지털카메라로는 느끼지 못하는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우선 24장 안에 잘 찍어야 하기 때문에 긴장감과 설레임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디지털카메라처럼 한 포즈에 여러 장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구닥에서는 한 장 한 장을 집중해서 찍게 된다. 사진을 다 찍고 인화를 위해 3일을 기다리면서 조바심과 설레임도 느낄 수 있다. 또한, 누군가에게는 24장을 채우기 위해 사진을 찍어야 할 새로운 동기를 주기도 한다.
디지털보다 불편해지면서 얻게 되는 인간적인 감정들, 그리고 제한적으로 잘 찍어야 하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구닥’에는 있다.
C) 라디오로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다 : 팟캐스트
팟캐스트를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용어부터 살펴보면, 팟캐스트는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이 결합해 만들어진 용어다. 방송진행자는 라디오 방송을 MP3 파일로 녹음해 올리고, 시청자는 인터넷에서 개인 오디오 플레이어로 내려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팟캐스트의 이름은 아이팟에서 왔지만, 현재는 오디오 파일 또는 비디오 파일 형태로 뉴스나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트를 인터넷망을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2011년 ‘나는꼼수다’ 열풍으로 국내 대중에게 처음 알려진 팟캐스트는 어느덧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팟캐스트 방송을 모아 보여주는 앱인 ‘팟빵’은 하루 이용자 수가 27만명, 하루 청취시간만 34만 시간에 달한다고 한다. ‘스푼 라디오’는 매일 3,000개의 오디오 콘텐트가 업로드되고 있고 앱 누적 다운로드는 60만을 돌파했다. 국내 여러 브랜드는 앞다투어 팟캐스트 채널을 열고 소비자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팟캐스트 붐으로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들이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 ‘NPR(National Public Radio)’은 가장 인기 있는 팟캐스트 중 하나로, 매달 2,5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공영 라디오 방송의 프로듀서를 영입하면서 지난 2월에 새롭게 시작한 팟캐스트 ‘더데일리’는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2,000만 회의 스트리밍을 기록했다. 팟캐스트 관련 미국 스타트업들도 호황이다. ‘기믈릿(Gimlet)’은 2,700만 달러의 투자유치에 성공하며 본격적으로 팟캐스트의 대중화를 이끌 심산이다.
주목할 점은 팟캐스트 역시 밀레니얼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라디오를 거의 듣지 않았던 세대지만, 중장년층보다 팟캐스트를 더 즐기고 있다. 실제로 ‘스푼라디오’나 ‘팟빵’의 주 이용층은 1020세대다. 그들이 팟캐스트를 즐기는 이유는 앞서 ‘LP’나 ‘구닥’처럼 팟캐스트로 느낄 수 있는 인간적 감성에 끌리기 때문이다. 팟캐스트에서는 아날로그의 유산인 라디오에서 소통, 공감, 사연, 음악 등이 만들어냈던 인간적 감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고, 실시간 소통과 보이는 라디오 등의 디지털 특징도 잘 살렸다. 또한, 팟캐스트는 청각으로만 전달되기 때문에 청각 외에 다른 감각들로 새로운 상상을 펼칠 수 있다. 귀로 들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는 이용자도 많은데, 일종의 심리치료 효과를 얻고 있다는 이용자까지 있을 정도다.
D) 스킨십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다 : 방문판매
미국 최대 전자제품 소매 판매업체인 ‘베스트바이’는 최근 판매인력 수백 명을 추가 채용했다. 이들은 고객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전자제품 구매를 권유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아마존’도 판매원이 고객의 집을 방문하는 일명 ‘스마트홈 컨설턴트’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고객들에게 ‘아마존’의 인공지능(AI) 스피커인 ‘에코’와 음성인식 장비들의 시범 테스트 기회를 제공하고 요금이 붙는 각종 프로그램의 설치를 돕는다. 미국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았던 전자제품 방문판매원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방문판매는 여전히 매력적인 판매 채널로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 방문판매시장 매출액은 전년동기대비 16% 증가했다고 한다. 3조3417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방문판매원 수는 전년보다 34% 증가하면서 고용창출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대표적인 방문판매원인 ‘야쿠르트 아줌마’는 현재 1만3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고, 이들이 하루에 만나는
고정 소비자만 1인당 평균 170~180명이라고 한다.
사실 방문판매원을 떠올리면, 직접 우리 집을 방문해서 물건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80~90년대의 ‘쥬단학 아줌마’, ‘아모레 언니’ 등을 떠올리기 쉽다. 온라인은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기에 더 중요했던 판매방식이었다. 그런데 디지털과는 멀어 보이는 방문판매원이 디지털 시대에 더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각광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방문판매는 디지털이 줄 수 없는 ‘스킨십’이 있기 때문이다. 직접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나를 위한 제품을 추천해주는 방문판매원에게 소비자는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집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그들의 집에 직접 찾아가 스킨십을 만드는 판매방식은 오히려 디지털 시대를 잘 이해한 방식처럼 보인다.
이외에도 편리한 디지털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잔잔한 감동이 있는 아날로그를 찾는 현상은 전방위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가장 종이에 가까운 전자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큰 무게와 부피를 감수하면서 종이책 구매를 멈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자책의 판매는 감소하고 종이책의 판매는 증가하고 있는데, 실제로 미국의 작년 1~9월 도서 판매에서 전자책 매출은 18.7% 감소하고 종이책은 7.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가 성공한 원인으로 내 손으로 직접 쓸 수 있는 노트펜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다는데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단순히 빠른 배송만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손편지를 남기고 문자로 안부 인사를 하는 등 배송에서도 인간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지속해서 로켓배송을 찾는 것이다. 요즘 길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인생네컷’이라는 즉석사진기는 커플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과거 스티커 사진 기계처럼 사람이 안에 들어가서 4컷 사진을 자동으로 찍을 수 있는데 컬러와 흑백을 선택하면 자동으로 인화되는 시스템이다. 4컷 안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으며 흑백 사진이 주는 잔잔한 분위기에 밀레니얼 세대가 흠뻑 빠진 것처럼 보인다.
#아날로그를 찾는 현상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시사점은 세 가지다
- 1. 디지털 시대, 인간적 감성의 부재
사람들이 이렇게 아날로그 감성을 선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의 삶에서 감정, 소통, 관계 등이 만들어내는 인간적인 가치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날로그의 불편함이 만드는 인간적인 감성들,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는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에게 너무나 매력적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결코 제공할 수 없는 가치를 아날로그는 제공해줄 수 있다. - 2. 아날로그란 과거의 부활이 아닌 인간적인 감성의 부활
아날로그란 과거의 부활(복고)이 아니라 인간적인 감성, 가치의 부활로 해석해야 한다. 디지털에서 재현되는 아날로그 콘텐트로부터 신선함을 느낀다는 것을 넘어, 디지털의 편리함과 효율성이 소비자의 아날로그 감각을 부활시켰다는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가장 디지털과 가깝다고 여겨지는 10~20대가 아날로그 감성에 설득되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회상이 아닌, 인간적인 감성과 인간미에 설득되기 때문이다. - 3. 감각(오감)을 자극하는 것의 중요성
아날로그는 인간의 감각을 자극함으로써 인간적 감성을 느끼게 해준다. 팟캐스트나 엘피는 인간의 청각을 자극하여 인간적 감성을 선물했다. 완성차 브랜드가 자동차의 엔진음을 일부러 재현하여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감각으로 자극받아야 다양한 감정들을 쉽게 느낄 수 있고 감성에 설득당할 수 있다.
#사람은 아날로그적 동물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기원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현상을 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사람은 아날로그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에 관해 재미있고 쉽게 설명해준 글이 있어 소개한다. “요정의 도움으로 궁중의 파티장에 가게 된 신데렐라는 자정이 되자 한쪽 유리구두만 남겨두고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왕자님은 신데렐라를 못 잊어 유리구두를 가지고 그 발에 맞는 임자를 한 명씩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노력 끝에 마침내 신데렐라를 찾게 된다. 그런데 과연 현실이라면 그런 방법으로 신데렐라를 찾을 수 있을까?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가령 왕자님은 수많은 관리를 풀어 전국의 소녀들에게 구두를 신겨봐야 할 것인데, 이런 경우 엄청난 시간이 소비된다. 또 구두에 맞는 발을 가진 소녀가 아마 수만 명은 될 것이다. 이들을 확인하는데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만일 신체상의 특징을 기호화하여 분류해 두었다면 신데렐라를 찾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눈동자 색깔, 머리 색깔, 키, 목소리, 발 사이즈, 피부색, 얼굴형, 체형 등이 코드화되어 있다면 신데렐라를 찾는 것은 엄청나게 쉬워진다. 뿐만 아니라 신데렐라를 찾는 데 들어가는 경비와 노력도 엄청나게 절약할 수가 있다. 이처럼 디지털이란 여러 정보들을 수량화, 기호화하는 것으로 시간과 경비를 절약한다는 의미에서 경제학적 효율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희모, 이재성 저자의『글쓰기의 전략』 中)
‘디지털(digital)’은 물질의 특성을 0과 1의 조합으로 바꾸는 과정이자 그 결과다. 정보를 수량화, 기호화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빠르고 편리하게 처리해준다. 그래서 참인지 거짓인지 흑인지 백인지 명쾌하게 해석된다. 반면에 ‘아날로그(analog)’는 관찰한 그대로를 구현한다. 모든 물질은 아날로그로 구현될 수 있다. 그리고 아날로그는 0과 1이 아닌 연속적인 수치로 표현하기 때문에, 인간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쉽다. 가령 색깔을 보더라도 인간은 흑과 백처럼 딱 맞아떨어지게 인지하는 게 아니라, 흑색과 백색을 희다 하얗다 검다 새까맣다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고 각 말의 의미는 개인에 따라 해석하는 정도가 다르다. 그런 면에서 아날로그는 인간에게 해석(생각)의 기회를 제공한다.
전달 방식이 디지털이어도, 결국 인간은 아날로그로 받아들이게 된다. 아래의 내용처럼 인간의 사고방식과 아날로그의 방식이 닮았기 때문이다.
- 1. 인간은 지구상 어떤 동물보다 창조적인 동물이다.
- 2. 참과 거짓의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사고하지 않는다. 기쁠 때 울고 슬플 때 웃는 게 사람이다.
- 3. 인간은 대화, 소통, 만남, 관계를 추구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이 아날로그적 동물이라는 것은 인간이 아날로그적으로 사고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를 설득하고 싶은 브랜드라면, 아날로그적으로 사고하는 소비자에게 당연히 아날로그 감성으로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은 사람 지향적이어야 한다
빠르고 간편하다는 것은 높은 경제적 가치와 이어지기 때문에 디지털은 최근 많은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이자 목적이 되어 버렸다. 아날로그라고 하면 낙후된, 경쟁력이 없는 것을 대변하는 듯하고, 디지털이라고 하면 새롭고 경쟁력 있는 것을 대변하는 것처럼 되었다. 그러나 디지털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성숙함이 생기면서,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의 가치가 대두한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때문에 점점 사라지는 인간의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라고 볼 수 있는데, 인간의 영역이라 함은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는 감각부터 감정을 느끼는 정신적 감각까지 인간이기에 가능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디지털 시대에 부족한 건 그리고 소비자 찾는 건 ‘인간적인’ ‘인간적 감성’이다.
다만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사고해야 할 개념은 아니다. 공존해야 한다. 디지털은 소비자에게 제공할 ‘기술적인 혜택’으로 이해해야 한다면, 아날로그는 소비자를 설득하고 감동을 줄 ‘문화적 코드’로 이해해야 한다. 결국, 브랜드는 디지털로의 변화를 명확히 이해하고 그 기반 위에서 아날로그 감성으로 소비자를 설득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를 설득하고 싶은 브랜드라면, 아래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 1. 인간의 감각으로 경험시켜야 한다
리테일 컨설턴트 ‘파코 언더힐’의 말처럼 “인간은 오감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육체적 존재”이다. 아날로그는 디지털이 줄 수 없는 오감 그 이상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LP가 시각과 청각, 그리고 만질 수 있는 촉각으로 소비자를 자극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비자는 불편하더라도 모든 감각을 동원해 제품이나 서비스와 소통하길 원한다. ‘애플’이나 ‘샤오미’, ‘알리바바’ 등 온라인 기반 브랜드가 오프라인 경험을 극대화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2. 인간적(아날로그) 감성을 담아야 한다
“인간적 만족을 가능하게 해 주고 인간의 본질적 힘을 확증해 주는 인간적 감성은 세련되게 창조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브랜드는 자신들의 서비스나 제품에 인간적 감성을 담거나 그것을 자극하는 마케팅이 필요하다. 설레임과 조바심이라는 인간적 감성을 느끼게 해준 ‘구닥’처럼 말이다.
위의 두 가지를 잘 실현한 국내 브랜드의 사례를 간단히 소개하면, 먼저 ‘현대카드’의 ‘라이브러리’가 있다. ‘라이브러리’는 디자인, 트래블, 뮤직 그리고 쿠킹 등 4가지 라이프스타일로 구분되는데 오프라인 공간에서 소비자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적 경험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쿠킹 라이브러리’에서는 칼로 도마를 내려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내가 직접 음식까지 만들어볼 수 있다. 직접 음식을 맛보고 만드는 등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활동에 1일 평균 방문자가 약 500명일 정도로 소비자는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기어’는 디지털 기능에 인간적 감성을 잘 결합한 제품이다. ‘갤럭시 기어’는 스마트 워치지만, 기존 아날로그 시계를 연상시키는 클래식한 디자인과 원형 휠로 아날로그 시계만의 감성을 잘 살렸다. 그래서일까? 아날로그 감성을 반영하기 시작했던 ‘기어S2’는 전작 ‘기어S’보다 판매량이 2배가 넘는 흥행을 했다.
#인문학적 사고에 익숙한 인재가 필요하다
여기까지 읽은 분이라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브랜드에 인문학적 사고에 익숙한 인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신호 속에 감춰진 아날로그적(인간적) 가치를 발견하고 무언가를 사회문화적(삶의 영역)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은 인문학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가장 핫했던 예능이 ‘알쓸신잡’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알쓸신잡’은 우리 사회에 지식 공유, 인문학 열풍을 몰고 왔는데 지식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증거이지 않을까?
지금도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인문학적 지식을 갖춘 사람이 선호될 것이며 소비자를 항상 고민해오던 마케터의 역할은 더 확장될 것이다.
#에필로그 : 디지털 시대, 브랜드는 아날로그로 소비자를 설득해야 한다
디지털이 우리의 삶을 개선해준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잃은 것에 대해서 되짚어보는 것은 충분히 유의미하다. 원래부터 아날로그로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모르게 디지털의 가치만을 얘기하고 있던 것이며, 사람들이 아날로그를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디지털 가속화는 사람들에게 더 아날로그를 찾게 할 것이다. ‘디지털의 아날로그화(化)’는 대세고 필연이다. 이제 브랜드는 디지털을 보완하기 위해 상품이나 서비스, 서비스를 알리는 마케팅 등 소비자와 대면하는 모든 것에 인간적인 가치를 느끼게 할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란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공존하는 시대이며, 디지털로의 변화를 이해하고 아날로그 감성으로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는 브랜드가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 마음을 움직이는 브랜드가 될 것이다.
결국, 기술은 사람 지향적이어야 한다.
이성길 / 현재 광고회사 Group IDD에 재직 중인 광고기획자이며, 광고마케팅 관련 강사 및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플리토, 토니버거, 트리아뷰티 등 스타트업이나 신규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담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