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407] 꼭 있어야 하지만, 쓸 일이 없어야 더 좋은 서비스
미투(#metoo) 운동이 확산되면서 피해자들의 상담 사례가 늘고 있다. 일례로 지난 18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성폭력 피해자 지원 기관인 ‘해바라기센터’와 ‘여성긴급전화1366’의 이용 건수가 늘었다고 밝혔다. 지난 3개월간 해바라기센터 이용자는 4,429명, 여성긴급전화1366 이용자는 6,963명으로 총 11,392명이 피해 상담을 받았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늘어난 수치다.
미투운동으로 성폭력의 인식전환이 폭넓게 진행 중인 가운데 지난해부터 성폭력 피해자를 돕기 위한 서비스를 개발해온 스타트업이 있다.
리슨투미는 성폭력 대응 가이드이자 피해 기록을 동시에 기록할 수 있도록 한 앱서비스이다. 모바일 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기록 단계에서 이용자 신원 정보를 묻지 않아 신원 노출을 꺼리는 피해자들을 배려했다. 여기에 PKI 응용 암복호화, 데이터 위변조 방지, 변경이력 관리 등 보안 기술을 적용해 본인 이외엔 정보를 알 수 없도록 했다.
서비스를 만든 기업은 1금융권 서비스에 하드웨어 방식 보안 모듈을 도입시킨 ‘커넥트엑스’. 커넥트엑스는 기술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벤처로 변모한 뒤 리슨투미를 론칭했다.
국내를 넘어 전세계 성폭력 사각지대를 없애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겠다는 커넥트엑스팀을 만났다.
김근묵 대표(사진 아래 오른쪽)를 비롯한 커넥트엑스팀/사진=커넥트엑스
핀테크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소셜벤처’로 방향을 전환한 계기는.
우리 구성원은 삼성전자, SK, 안랩 및 컨설팅 기업 출신이다. 핀테크 분야에서 ‘보안’에 특화한 모듈을 개발했고 신한카드에 우리 기술이 탑재될 정도로 기술력도 인정받았었다. 다만 기술을 뺏겨 불가피하게 사업을 중단했다.
업을 접을 순 없었기에 금융계 종사자들을 만나며 의견을 구했다. 그러다 한 사람으로부터 20년 전 성폭행 경험을 듣게 됐다. 그는 여전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고 하더라. 문제를 제대로 인식한 계기였고 우리 사업의 동기가 됐다.
곧장 국내에서 관련 데이터를 찾아봤고 미국 및 전세계 데이터도 분석했는데 대부분 결과가 비슷했다. 아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비율이 약 80%에 달하며 그 중 87%의 피해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밝혀지면 2차 피해의 위험을 당할까 걱정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짧게는 넉 달, 길게는 1년 동안 신고가 지연된다. 피해자는 신원이 밝혀지는 것을 꺼렸고, 사람들을 믿지 못 하는 경향이 있었다.
성폭력은 사건 발생에 비해 신고율이 극히 적다. 약 2.2%만이 신고를 하고, 1366과 성폭력상담소 신고 비율을 더해도 2.4%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 수록 진술의 신빙성은 부족해져 가해자 처벌도 어려워진다. 게다가 성폭력은 재범 비율도 높다. 악순환이 된다는 증거다. 피해자 중심의 신고 시스템을 만들어 이 부분을 바꿔보자고 다짐했다.
작년 10월 알파 버전을 모 대학 강연 때 선보였다. 학생 200명 중 92%가 서비스 필요성에 공감해 줬다. 본격적으로 사업화에 돌입한 게 작년 9월이다.
성폭행 신고 절차에 근본적인 문제는 뭐라고 보나.
공공기관이나 기업, 대학 등 신고기관 홈페이지에 성폭행 접수처가 있지만, 이를 찾기가 꽤 복잡하다. 검색 포털에 ‘성폭행 신고’라고 적어도 내용을 접수하는 페이지가 바로 뜨지 않는다. 여정도 복잡하지만 작성 첫 칸부터 심리적으로 무너진다. 피해자에게 누구냐고 묻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닉네임으로 작성할 순 있다. 그럼에도 신변 노출을 극도로 꺼리기에 신고를 마음 먹은 이들 중 절반이 여기서 신고를 포기한다. 또 대부분 웹 기반이기에 PC에서만 적어야 한다. 타인이 없는 장소에서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단계를 거쳐 힘들게 적은 내용은 제출하고 나면 수정, 삭제가 불가능하다. 현 시스템은 피해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리슨투미는 일이 발생한 직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솔루션이다.
국내 상황을 두고 ‘성폭력 사각지대’라는 말을 한다. 맞는 말이다. 사전 예방적 측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되려면 수십 년 걸릴 거다. 처벌을 강화해야 하는 것도 맞다. 다만 처벌 절차가 미비한 상황이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문제 해결 지점은 ‘발생 직후’라고 봤다.
우리 서비스는 100% 앱으로 이뤄져 접근성을 높였다. 피해자가 어떻게 신고를 해야 하는지 가이드를 제공하고, 공동신고가 가능하도록 해 진술 신뢰성도 높였다. 보통 피해자는 혼자 신고했을 때 신뢰성을 의심받는다. 리슨투미는 내용을 기록하면 누군가가 같은 사람을 지목 했다고 알람이 뜬다. 복수의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신고한 본인들이 알 수 있는거다. 이 때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 과정의 모든 게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내용은 몇 번이고 수정할 수 있다. 보안도 철저하다. 해킹도 할 수 없고 본인이 아니면 누가 썼는지 모른다. 앱 내 질문은 성폭력협의회 등 단체의 자문을 구해 만들었다.
대학 내 성폭력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국내 385개 대학 중 성폭력 사건에 대한 예산이 있는 곳은 120군데 정도다. 그중 연 예산 1천만원이 안 되는 곳이 열에 여섯이다. 사건이 일어나면 학생과 상담사 모두 피로도가 상당히 높은 것도 문제다. 피해자의 학번, 주민번호, 소속을 녹음하는 것이 상담의 시작이다. 작은 사회에서 신분이 노출되는 건 꺼릴 수 밖에 없다. 피해자는 ‘누가 날 얼마나 진실되게 도와줄까’하는 의구심을 하고, 상담사 입장에선 정해진 프로세스대로 해야하기에 감정노동이 심하다. 피해자를 돕기 위해 프로세스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간 계약 연장이 어려워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 상담 중에 유사강간의 정의 등 구체적인 단어 및 상황 언급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도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그래서 리슨투미는 비대면을 통해 신속, 안전하게 사건에 대응할 수 있게 했다. 각 집단의 고통을 분담하는 데 효율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가 얻게 될 긍정적인 요소는 어떤 것이라고 보나.
공동증거는 혼자 말한 것보다 더욱 힘이 있다. 게다가 가이드에 따라 이성적 판단으로 최대한 작성하기 때문에 객관성 확보에도 용이하다. 아울러 피해자의 자존감 회복이 가능해질 거다. 나 이외에 다른 피해자가 있음을 알면 용기가 날 거다. 의견이 모이면 연대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잠재적 손실을 줄일 수 있다. 현재 사회에 파장을 불러오는 건 블라인드와 같은 익명 서비스에 폭로되는 글이다. 거론된 기업의 명성은 바닥으로 추락하는 동시에 매출도 급락한다. 지난해 4분기, 550억 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한 가구 제조 기업이 실례다. 성폭행 사건이 매스컴에 알려진 뒤 이 기업은 전년동기 매출보다 12%나 줄었다.
리슨투미의 디자인은 화려하지 않다.
디자인을 따지기 전에 서비스를 대하는 피해자의 심경을 헤아리고 싶었다. 굳이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봤다. 성폭력엔 성 구분을 따로 두지 않아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처음 기획 컨셉은 핑크색상이었다. 이를 청록색으로 바꾼 것도 같은 이유다. 청록색은 회생, 재기를 뜻한다.
피해자 입장에서 가장 걱정되는 건 보안일 거다.
리슨투미에선 최대한 개인 정보가 보호된다. 기록한 정보는 폰에만 저장되며 서버엔 사건을 구분하는 코드만 올라간다. 상습범을 신고했을 경우 소속만 확인한다. 신고 전까지는 휴대폰 잠금 장치만 잘 관리하면 정보 유출은 없다. 디바이스를 기반으로 PKI 응용 암복호화, 데이터 위변조 방지, 변경이력 관리 등 보안 관련 기술을 완벽히 적용했다. 나아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AI로 작성 진위 여부와 적확도, 바이오매트릭스를 활용해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방식도 고려 중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어떻게 적용할 생각인가.
분산기술을 이용해보고자 한다. 데이터를 암호화 해서 퍼뜨리는 거다. 서버에서 지울 순 있지만 바꿀 수는 없다. 우릴 포함해 누구라도 데이터에 접근해 조회하거나 수정이 불가능하다. 이마저 지울 수 있다해도 데이터는 사용자 폰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B2B 모델로 시작했지만 대중에게 솔루션을 공개했다.
처음 목표는 공동체 내부의 문제 해결이었다. 성폭력은 지인 사이에 많이 발생한다. 지인은 기업, 학교, 공공기관 등에 있기에 기관에서 우리 솔루션을 도입해 내부에서 해결하길 바랐다. 사실 ‘미투’는 피해자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불행한 방법이다. 얼굴과 이름을 내걸고 불필요한 소문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워지는 걸 감안하고 나서는 거다. 피해자가 미투로 용기를 내기 전 내부 조직에서 해결돼야 문제가 잡힐 거라고 봤다.
하지만 미투운동을 보며 취약한 신고시스템에 전전긍긍하는 이들이 있을 거라 여겼다. 유명인 미투만 화제가 되고 일반인 미투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나. 빠르고 안전하게 기록이 가능한 것, 공동 신고가 가능해지는 것만으로도 상습범의 범죄 비율을 낮출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 소비자용 솔루션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겠다.
올해 1월 아시아 여성인권 세미나가 열렸다. 행사에 참가해 리슨투미를 발표하며 참석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자신의 국가에 빨리 도입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며 글로벌 진출 가능성을 봤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인정 받으면 각국 전문가 조언을 받아 UI를 바꿔 진출하고 싶다.
미투운동에 편승해 등장했다는 오해를 걱정한다고.
우린 전세계에서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기 전부터 개발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미투가 진행될 땐 괜찮았는데, 국내에서 공론화된 뒤 진의를 의심받진 않을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성숙한 의식 조성과 함께 서비스의 동반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역설적이게도 미투가 터진 뒤 영리사업 추진이 어려워졌다. 사용하기로 한 일부 기업과 대학이 보류하기도 했다. 다들 우리 서비스를 좋게 평가했다. 보안이 완벽해 선순환이 일어날 거라는 것에 공감대가 이루어졌다. 다만 솔루션을 도입한 곳에서 신고 건수 긍증 우려가 제기됐다. 사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문제가 불거지는 것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대학은 외부에 의무적으로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하기에 다른 학교와 비교를 걱정하기도 했다. 청와대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특정 기업을 돕는 것이기에 난색을 표했다. 현재로선 우리가 독점으로 관련 서비스를 만들기 때문이다.
좋은 서비스인건 맞지만 영리적 이익을 취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는거다. 대안이 있다면.
우리는 성폭력을 넘어 갑질 문화, 비리를 신고하는 솔루션도 생각중이다. 비리와 갑질, 성폭력은 모두 같은 카테고리에 속한다. 은밀하고 끊임 없는 게 공통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공헌하고자 한다. 우리는 리슨투미를 ‘꼭 있어야 하지만 쓸 일이 없어야 좋은 앱’이라고 정의한다. 소화기처럼 말이다.
김 대표는 일반 기업이라면 은퇴할 나이에 창업에 재도전했다. 그것도 소셜벤처 사업가로 말이다.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창업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두 딸을 위해 한다는 마음도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젠더평등을 이끄는 데 힘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