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人사이트] 임팩트VC가 젠더 관점 투자를 하는 이유
중소벤처기업부는 16일 ‘소셜벤처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2019년까지 최대 청년 일자리 2,000여개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서울 성수동 일대에 소셜벤처 허브를 육성한다. 이외에 창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소셜벤처와 대기업·공기업간 사회적경제기업 지원 사업도 활발해진다. 모태 펀드 출자(800억원)를 기반으로 1200억원 규모의 ‘소셜임팩트투자 펀드’도 조성된다. 펀드 총액의 70% 이상이 소셜벤처에 투자되는 셈이다. 이와 함께 민간이 50% 이상 출자하는 ‘엔젤모펀드’를 200억원 규모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모처럼 소셜벤처에 훈풍이 불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소셜벤처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여러 투자자도 소셜 벤처에 예전보다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반 투자를 벗어나 보다 성평등적 관점에서 투자 프로세스를 다루겠다 나선 투자사가 있다.
2008년 국내에서 설립된 소셜벤처전문 임팩트 투자사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이하 소풍)가 그 곳이다. 피투자사로 쏘카, 텀블벅, 셔틀타요 등이 있으며 2018년 현재 소풍이 투자한 기업의 기업가치는 약 4,500억 원에 달한다.
소풍은 올 상반기부터 젠더 관점의 투자(Gender Lens Investing)를 전면 적용했다. 서류 심사부터 심의 위원회까지 투자 선발 과정 전반에 걸친 정비를 통해 여성 창업가 발굴에 나선 것이다. 젠더 관점의 투자란 젠더 평등을 전제로 투자를 집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풍은 내부적인 가이드라인을 통해 파트너와 투자심사역의 젠더 감수성을 점검하고,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심사에 성 차별적인 관점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사전 액셀러레이팅(대면 면접) 과정에 도입한 ‘젠더 관점 관찰자’ 제도는 여성 대표자가 성 편향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경험하지 않도록 진단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최종 투자 결정 시 최소 1개 이상의 여성 창업 기업이 포함되도록 해 과정상의 보완 뿐 아니라 실제 결과로 나타나게 했다.
소풍의 젠더 관점 투자는 과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을까. 유보미 심사역, 고영곤 매니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왼쪽부터)고영곤 매니저, 유보미 에스오피오오엔지 심사역/사진=플래텀 DB
젠더 관점에서의 투자 방식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유보미 심사역(이하 ‘유’): 내부에서 ‘왜 이렇게 여성 창업자가 적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갑자기 든 생각이 아니라 몇 년에 걸친 생각의 발로였다.
우리는 연 2회 배치(Batch)제로 투자를 진행한다. 보통 투자 받은 팀의 25% 정도가 여성 창업 기업이었는데, 지난 하반기엔 한 팀도 없어 놀랐다. 내부에서부터 고민이 시작 됐다. 조직 내에서 여성 창업가를 대할 때 편견 어린 시선으로 보진 않았는지 조목조목 따져봤다. 그 결과 ‘젠더 관점의 투자(Gender Lens Investing)’ 프로젝트가 만들어졌다.
소풍에선 젠더 관점 투자를 위한 TF를 꾸려 해외 사례를 공부하며 점검했다. 투자 미팅 때는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관찰한 뒤 피드백 역할을 주는 인사도 배석했다. 투자를 집행할 때 어떤 부분에서 편견이 생기는지 파악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한 결과물 중 하나가 리포트다.
심사할 땐 서비스와 사업성만을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 아닌가. 젠더 관점이 필요한 이유는 뭔가.
유: 가능성 높은 여성 창업 기업이 꽤 된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편견이 있다. 오래 달릴 체력이 적다든가, 기술 전문성이 떨어진다거나, 뛰어난 개발자를 합류시킬 역량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편견을 해소하려는 방책의 일환이다. 또 한가지론 테크 분야에 여성 창업인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자 했다.
어떤 기회를 준다는 건가.
유: 지금껏 여성 창업가가 많이 탄생하지 못하게 된 데는 사회 구조의 불평등이 있었다. 일례로, 여성 창업자가 문화-예술 방면에 많은 것에 비해 기술 분야는 적은데, 이는 살아오는 과정에서 주입되는 성역할 및 교육의 결과가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쪽 분야는 여성이 진출하기에 다소 높은,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 존재한다고 봤다. 이에 여성 기업에 투자라는 기회를 제공해 균형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투자사인 우리가 먼저 여성 창업에 더 개방적인 태도를 취해 기술 분야에 더 많은 여성이 뛰어들 여건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물론 사회에 뿌리내린 본질적인 편견을 없애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당장 우리가 기술 분야 교육을 진행하긴 어렵다. 그래서 투자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리포트를 낸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어떤 편견을 발견해 극복하고자 한다는 것을 리포트로 지적했다. 다른 투자자도 돌이켜 보고 자성해 투자 프로세스를 보완하는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
보고서를 낸 후 투자자 반응은 어땠나.
유: ‘내부에 이런 편견이 있었다’, ‘여성 심사역이 부족했다’, ‘더 좋은 창업가를 발굴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등 다양한 피드백이 왔다. 이런 성찰을 통해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개인 및 기관이 많아지길 바란다. 더 나아가 각자 찾은 방법을 공유할 수 있으면 더욱 진보한 투자생태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투자 과정에서 심사역의 젠더 감수성을 점검한다고.
고영곤 매니저(이하 ‘고’): 파트너와 심사역을 대상으로 젠더 감수성 체크리스트를 배포해 스스로 성 고정관념을 객관화하게 했다. 서류평가 단계에선 2인 이상 여성창업가면 소셜 미션이 아주 없지 않은 한 통과시켰다. 면접 과정에선 투자를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의 감수성을 평가했다.
유: 창업자, 팀원들의 젠더 감수성이 낮을 수 있다. 우린 그 부분에 가감 없이 피드백을 했다. 예를 들면, 육아 관련 서비스의 주제가 ‘워킹맘’에 쏠릴 땐 육아가 왜 엄마만의 역할인지, 주요 타깃이 엄마인 이유에 대해 묻는 식이었다. 동시에 우리도 편견 어린 질문을 하지 않도록 점검했다. 개발자를 구할 수 있는지, 임신하면 육아는 누가 하냐는 등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발언 등을 하지 않도록 말이다.
고 매니저는 관찰자로 투자심사에 참여한다.
고: 관찰자로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단지 참여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내부에서 자체 경각심을 가지게 되는 듯 했다. 회의가 진행될 땐 창업자 본인을 위해 참석하는 것이라 사전에 언급한다. 적극적으로 교정에 나서는 역할은 아니다. 다만 내부에서 기준을 찾을 수 있도록 했고 제3의 존재로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노력했다.
젠더 관점 투자 방식을 도입한 후 배치팀 여성 창업가의 비율이 33%로 늘었다. 역차별 이슈는 없나.
유: 여성 창업자라고 무조건 통과시킬 순 없다. 2인 이상 이뤄진 여성 기업이면 통과시킨다는 것 외엔 꼼꼼하게 확인한다. 사업모델, 발전 가능성, 소셜 미션 등을 모두 따져본다. 참고로 이번 배치 팀 중 단순 ‘젠더’관점에서 투자를 받은 팀은 한 곳도 없다. 투자 심사 방식 때문에 뽑히지 않아야 할 팀이 가산점을 받아 선정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선정된 곳은 모두 잠재력 있는 좋은 팀이다.
고: 놓친 팀이 없나 다시 살펴봤다. 한두차례 면접을 더 봤을 팀은 있었겠지만, 투자로 이뤄질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는 게 내부 결론이었다.
배치팀에 성평등 가이드라인을 준다고 들었다. 실제 팀에 관련 문제가 보일 때 어떤 조언을 하나.
유: 실례로, 개발자를 남성 위주로만 채용한다거나 여직원이 회계&경리를 맡는게 당연시 될 때 보완될 수 있도록 조언한다. 가감 없는 조언이 가능한 건 소풍 내부 조직도 그렇기 때문이다. 각자 상황을 고려치 않은 상황과 발언을 했을 경우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한다.
고: 창업자와 구성원, 투자자 역할은 모두 다를 거다. 냉정히 말해 투자자가 구성원의 방법으로 해결방안을 찾는다면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거다. 각자 처한 상황에서 개선사항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창업 생태계 개선에 제언할 것이 있다면.
유: 성평등 문제는 갈 길이 멀다. 창업가에게 고정된 성 역할을 바라는 게 여전하다. 이는 남녀가 따로 없다. 창업가가 편견 속에서 기회를 잃지 않는 프로세스 고도화가 필요하다. ‘펜스룰’을 지지하는 투자자는 없었으면 좋겠다.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향후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유: 용기를 가지고 뛰어드는 창업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또한 그들이 예비 창업가에게 용기를 주는 존재가 되어 생태계의 선순환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소풍은 성장하도록 돕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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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국내 투자계 젠더 관련 현황
국내 7년 미만의 창업기업 가운데 여성이 설립한 기업은 38.4%를 자치하지만(중소기업청, ‘2015 창업기업 실태 조사’), 2016년 투자를 유치한 국내 스타트업 244개 중 여성 창업 기업은 16개로 6.5%에 그쳤다. 투자 금액도 전체 1조724억원 중 4.1%를 차지할 뿐이다(플래텀, 작년 한 해 투자 받은 여성 창업 기업은 총 16개사, 450억 원 규모, 2017.1.9). 2015년 기준 여성 심사역은 57명으로 전체 747명 중 7.1%로 나타났으며(한국벤처캐피털협회), 2016년 기준 한국 금융기관의 여성 경영진 비율은 4% 미만이었다(연합뉴스, 韓 금융기관 경영진 여성 비율 4%…세계 최하위 수준, 2016.6.20). 여성 창업가는 투자 유치과정에서 여성 투자자나 여성 금융전문가를 만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실정이다.
- –해외 사례
미국 투자 업계의 젠더 관련 통계도 국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더 스트릿(The Street)의 2017년 11월 보도에 의하면 미국 내 벤처 투자금 중 3%만이 여성 CEO가 있는 기업으로 흘러갔고, 여성 심사역은 전체의 6%로 나타났다. 이렇듯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결하기 위해 루트 캐피털(Root Capital), 빌리지 캐피털(Village Capital) 등 투자사가 젠더 관점의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사회적 기업에 투자와 액셀러레이팅을 제공하는 빌리지 캐피털의 경우 투자 결정에 상호 평가(Peer Selection)를 도입하자 여성 창업가의 비중이 40%까지 상승했다. 실사(Due Diligence)에 너무 많은 시간과 자원이 들어간다고 판단한 빌리지 캐피털은 투자 결정을 상호 평가(Peer Selection) 방법으로 전환했다.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 종료된 다음 같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동기들이 팀, 제품, 재무적 성과, 임팩트 라는 4가지 기준에 따라 서로를 평가하게 한 것이다. 프로그램 주제(해결하려고 하는 분야)마다 투자금은 상이하지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2개의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여성 창업가의 지원 비율은 평균 15%에 불과했지만 상호 평가 방식을 사용하자 투자받는 비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상호 평가를 통해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의 생존율은 9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스탠포드 소셜이노베이션 리뷰, The Rise of Gender Capital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