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스타트업이 있을까, 블록체인을 할까’ 북한 창업 생태계 5문 5답
북한에도 스타트업이 있을까? 북한의 창업 생태계를 5문 5답으로 정리했다.
북한에도 스타트업이 있을까?
사기업이 금지된 사회주의 국가 북한에서 개인이 창업을 할 수 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 키워드가 바로 ‘돈주’다. 돈주는 북한에 시장화 바람이 불던 90년 대 등장한 신흥 자본가 세력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시스템이 약화하며 국가가 인민에게 물품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자, 암암리에 인민 간 거래가 가능한 자유시장이 형성됐다. 이를 ‘장마당’이라 부르는데, 이때의 상거래 활동으로 부를 축적한 토착 집단이 재일동포, 화교와 함께 돈주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국가에서 놀리고 있는 공장을 빌려 직접 제조업을 하거나, 무역 사업에 나서 외화를 벌었다. 또 소기업에 자금을 대출해주는 금융 기관의 역할도 했다. 국제 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2016년 3.6%의 성장률을 보이는 등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돈주 집단의 자생력 덕분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2003년에는 ‘종합시장 개혁을 통해, 장마당이 합법화, 상설화됐다. 이 시기 과거 국가 소유였던 외화 상점의 80%가 개인 돈주에게 넘어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 북한 내에는 문서상 국영 기업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개인이 운영하는 자영업체와 소기업이 존재한다. 편법이긴 하지만 자본이 있는 개인의 창업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북한의 창업 교육 NGO인 조선교류(Chosun Exchange)의 제프리 시(Geoffrey See) 대표는 박원순 시장과의 만남에서 “창업과 관련한 북한 주민들의 생각과 문화, 즉 소프트 인프라가 바뀌고 있다”면서, “북한은 아직 사회주의 국가지만, 기업들의 자주성이 과거에 비해 높아지고 있으며 북한 정부 역시 성과와 책임을 기업 스스로 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조선교류는 9년 전부터 약 2천여 명 이상의 북한 시민을 대상으로 창업 워크숍을 진행해온 싱가폴의 단체다.
조선교류의 배대연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평양과 평성 사이에 있는 은정과학지구에 지난 2년간 약 17개 정도의 스타트업이 설립됐다. 그에 따르면 2015년 조선교류가 북한 시민 11명을 싱가폴로 초청해 4개월가량 창업 관련 교육을 진행했고, 북한으로 돌아간 이들이 자금 지원을 받아 작년 말 기준 10개 내외의 기업을 세웠다. 분야별로는 전자, 식약품 분야 스타트업이 다수다. 이 기업들이 통상적인 개념의 스타트업과 가장 유사한 형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IT 창업도 이루어지고 있을까?
아직까지 북한 내에는 도소매업과 일반 서비스업, 생계형 소상공인 창업이 다수다. 그러나 배대연 애널리스트 말에 따르면, 최근에는 북한 내 인트라넷을 활용한 기술 창업도 생겨나고 있다.
북한 내에서는 인터넷 접속이 차단되어 있지만, 정부가 구축한 자체 인트라넷 ‘광명’을 통해 다양한 전자상거래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북한 지역 곳곳에는 인트라넷에 접속할 수 있는 피시방과 유사한 시설도 들어서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가 성장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인트라넷 쇼핑몰인 ‘만물상‘이다. 신발부터 전자기기에 이르는 4천 개 이상의 품목을 판매하고 있어, 북한의 아마존이라고 불린다. 북한 전문 매체 엔케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만물상은 2016년 기준 일 2만3천 명의 방문자 수를 기록했다. 북한공공서비스총국이 관리하는 ‘옥류’ 다음으로 방문자 수가 높은 사설 온라인 쇼핑몰인 셈이다. 올 1월에는 주문 후 24시간 내에 물건을 무료로 배송해주는 ‘앞날’이라는 사이트도 문을 열었다.
모바일 앱 서비스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2018년 현재 북한의 스마트폰 사용자 수는 400만 명을 돌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미있게도, 북한에서는 앱을 다운받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야 한다. 평양IT센터에 위치한 앱스토어에서 사용자들은 앱과 보안 소프트웨어를 블루투스를 통해 다운받을 수 있다.
지난 3월 엔케이뉴스는 전자책 앱 ‘나의 길동무’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앱에는 정치, 경제, 문학예술, 과학기술 도서 1,300여 권이 포함되어 있다. 작년 6월에는 북한의 한 기술 스타트업이 운동을 도와주는 피트니스 앱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내비게이션 앱 ‘길동무 1.0’, 사진 보정앱 ‘봄향기 1.0’ 등이 유명하다.
유진투자증권의 리포트 ‘북한 IT, 어디까지 왔나’에 의하면, 북한은 우수 학생들을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로 양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건만 주어진다면, 향후 젊은 세대의 IT 창업은 계속해서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모바일 서비스 사용이 일부 엘리트 계층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 해외와의 인터넷 연결이 단절되어 있다는 점이 현재로서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현재 북한의 인터넷은 러시아와 중국 두 국가와만 연결되어 있다.
북한의 실리콘밸리는 어디?
현재 북한에 스타트업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추후 창업 중심지로 발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을 꼽자면 바로 ‘은정첨단기술개발구'(이하 은정 지구)다.
은정 지구는 2014년 북한 국가과학원 주도로 조성된 19㎢ 규모의 IT 첨단 기술 산업단지로, 평양 인근 평성이라는 도시에 속해있다. 평성은 북한의 최대 유통 거점 도시다. 전국 각지로 연결되는 철도 도로망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모든 물건이 평성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또 기술 인프라에 중국의 수입 원자재를 결합해 제조업 생산지로 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은정 지구 내에서 창업하는 기업의 경우, 해외 기업과 동등한 세재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유리하다. 이러한 이유로 앞서 언급한 싱가폴의 NGO 단체 ‘조선교류’는 근 시일 내에 은정 지구에 창업 허브를 조성할 계획이다.
해외 단체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북한 정부가 부정적이진 않을까. 이 의문에 배대연 애널리스트는 “은정 지구가 경제 특구로 지정되어 있는만큼 북한의 다른 지역보다는 훨씬 외국 투자자와 기업에 대해 개방적이기 때문에 북한 정부 측과 큰 갈등은 없는 상태”라 말한다.
조선교류 측은 “정확한 시점을 내놓을 순 없으나, 여건이 되는대로 해외 투자자와 북한 유망 스타트업을 연결하며 인큐베이터로서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은정 지구 이외에도 북한에는 현재 27개의 특구와 개발구가 존재한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에만 20여 개가 생겼다. 향후 이 지역들 역시 관련 산업 창업의 기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북한 내 주요 개발 도시를 지도에 표시한 것이다.
투자 관점에서 바라본 북한의 현황은?
긍정적, 부정적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 관련 비즈니스와 투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실제 국내 로펌업계에서도 최근 투자자들의 문의가 증가함에 따라 북한 팀을 따로 꾸려 북한의 투자 인프라에 대해 분석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북한 경제 관료들 역시 곧 대북 경제제재가 끝날 것이라고 주장하며, 중국 각지에서 투자 유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대북투자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기업가와 투자자들은 가공되지 않은 원석으로서의 북한의 잠재력에 주목하며 대북투자를 선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친구로 알려진 카지노 황제 ‘아델슨’과 세계적 투자가 ‘짐 로저스’가 바로 이러한 북한 투자 옹호론자다. 현재는 대북 경제제재로 인해 한국인이 북한에 직접 투자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제재가 완화됐을 때 바로 액션을 취할 수 있도록 물밑 작업을 해놓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과거 대북 투자는 조선족과 손을 잡고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동남아를 우회하는 방식이 선호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다. 정치적 변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과거 국내 기업도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사업 폐쇄 등의 아픔을 겪었다. 해외 기업의 투자 성과도 좋지 않다. 중국의 5대 채굴 기업 중 하나인 시양은 북한과의 철광성 채굴 합작 사업을 벌였지만 1년이 안 되어 철수했다. 2008년부터 북한에서 이동통신 서비스를 개시한 이집트의 오라스콤은 대북 제재로 인해 수익금을 반출하지 못해 곤란을 겪었다. 오라스콤 역시 북한 내 사업을 철수한다는 설이 계속해서 돌고 있다.(올 1월 오라스콤은 이를 반박했다.)
블록체인에 대한 북한 정부의 입장은?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암호화폐 사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비트코인닷컴은 지난 3월, 북한이 2017년 한 해에 채굴 혹은 해킹을 통해 최소 1만1천 개의 비트코인을 획득했다고 보도했다. 금융 안보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대북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가상화폐 시장을 활용하고 있다.
관련 인재 양성에도 적극적인 모습이다. 작년 11월에는 평양과학기술대학이 교내에서 블록체인, 비트코인과 관련한 외국 전문가의 강연이 열렸다는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 3월 문형남 숙명여대 교수는 “북한이 블록체인 기술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 만큼 그 기술 수준 역시 높을 것”이라면서, “남북 교류가 활성화될 경우 북한 측 전문 인력과 국내 기업 간의 협업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