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또 한 번 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온전히 디스커버제주라는 스타트업 때문이었다. 취재 차 체험해본 돌고래 탐사 프로그램은 제주를 ‘돌고래의 섬’으로 기억하게 해주었고, 그렇다면 ‘일몰 배낚시를 하는 제주’, ‘SUV로 질주하는 제주’는 또 어떤 모습일지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카페나 맛집 투어만 하고 돌아왔다면, 이걸로 제주는 충분히 봤다는 착각을 했을는지도 모른다. 디스커버제주라는 프리즘을 통해 제주는 수백 가지 표정을 지닌 다면의 섬이 되었다.
이 체험 여행 플랫폼은 ‘야생 돌고래 탐사’, ‘고망낚시’, ‘별밤투어’ 등 제주의 자연 그리고 지역민과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냈다. 김형우, 허진호 공동 대표는 서울과 미국 생활을 오래 하다가 제주에 정착한 ‘육지 사람들(타지인)’이다. 이 섬을 사랑한 그들은, 제주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는 제주 발굴가이자 창업가로 살아가고 있다.

■ 제주 내려와 스타트업하는 육지 사람들
두 분 다 사실은 타지 사람들이죠? 애향심이 창업의 계기가 됐을 리는 없고, 왜 제주를 택하신 건가요. 서울에서도 창업은 힘든 일인데요.
김형우 공동대표(이하 김 대표) = 저는 귀농 준비만 10년을 했어요. 금융권에서 영업 관리일을 하면서, 주말마다 귀농학교 다니고 제빵 교실 다니고 그랬죠. 5년 전엔 제주에 살러 내려왔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1년 만에 접고 올라간 적도 있어요. 다시 내려왔을 땐 대학 동창인 허진호 대표가 미국에서 제주로 살러 왔다길래, 둘이 뭐 해볼 건 없을까 고민하다가 창업했습니다.
허진호 공동대표(이하 허 대표) = 어머니가 집을 지으려고 제주에 땅을 사놓으셨는데, 사람이 이상하게 땅 있는 곳으로 마음이 가더라고요. (농담입니다.)저는 20년 정도 미국에서 살았는데, 한국 방송에서 친구들끼리 삼겹살에 막걸리 마시는 게 그렇게 부러워 보였어요. 향수같은 거였겠죠. 미국에서도 바베큐 해 먹지만 정취가 다르거든요. 부인이 병원 치료를 받을 일이 있어 한국에 돌아왔고, 오랜 로망의 땅이었던 제주에 자리 잡았죠.
지금의 디스커버제주 사업 모델을 만들기까지는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김 대표 = 2016년 한국관광공사에서 관광벤처 공모전을 열었어요. 거기서 선발된 게 창업의 시작이었고요. ‘왜 관광 사업의 주체는 늘 현지인들이 아닌 자본가들일까?’라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투어리피케이션(투어와 젠트리피케이션의 합성어) 문제가 제주에서도 심각합니다. 중국인들이 관광을 많이 온다고 해도 실제 돈 버는 건 면세점 뿐이에요. 덤핑 관광으로 온 사람들은 유료 관광지와 면세점만 들르지, 지역 시설 이용은 안 하거든요. 제주 지역민 입장에선 사실 반길 이유가 없는 거죠. 지역민이 관광 주체가 될 수 있게 만들어주자는 게 저희 취지였어요.
최근에는 지역 관광상품을 개발해서 운영하는 사례도 꽤 많지 않나요.
허 대표 = 6차 산업을 육성한다고 하는데, 실제 농어민 중에 자립해서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돼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농사짓고 들어와 컴퓨터를 켜는 게 쉬운 일이겠어요. 6차 산업에 성공한 사람들 보면 자녀의 도움을 받거나, 외부인들과 협업한 경우가 다수예요. 반대로 말하면, 그런 도움 없이는 결국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농어민들이 본업을 하면서, 부수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고요. 저희가 제주에 있는 자원을 발굴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을 현지인들과 함께하면 상생하는 구조가 되면서도, 재밌는 그림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구체적으로 농어민들과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나요.
김 대표 = 야생 돌고래 탐사가 대표적 프로그램이죠. 2017년도에 런칭했는데, 프로그램 취지를 어민들에게 설명했더니 ‘누가 돌고래를 돈 내고 보냐’는 반응이었어요. 저는 시드니로 신혼여행 갔을 때, 돌고래 투어에 참여해서 돌고래 꼬리만 봤는데도 좋았었기 때문에 반드시 수요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사실 어민 입장에서 돌고래는 귀찮은 존재예요. 그물 쳐놨는데 돌고래가 걸리면 풀어줘야 하니까요.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돌고래가 귀엽긴 하니까 핸드폰으로 다 사진들 찍고 하신다고요.
돌고래 탐사 말고 또 대표적인 협업 사례가 있다면요.
김 대표 = 섶섬에서 서귀포까지는 해수욕장이 없어요. 그래서 그 부지에서 스노클링 프로그램을 해보기로 하고, 제목을 ‘볼레낭개 호핑투어’로 지었어요. 그게 올해 여름 런칭하자마자 그야말로 대박이 났고요.
지역민들만이 줄 수 있는 현장감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평생 농어업을 해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서비스 정신 측면에서는 떨어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김 대표 =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에요. 프로그램을 하나 개발할 때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걸리거든요. 그동안 지역민들도 저희도 서로를 지켜보는 거예요. 함께 일하기에 괜찮은 사람인지. 바다 사나이들이 터프한 편이긴 하지만, 지금까지는 문제없이 모두 잘해주셨어요. 선장님하고 친해져서 돌고래 보러 자주 오시는 분들도 많고요.
허 대표 = 요즘 여행 트렌드가 ‘지역민과의 교감’입니다. 돌고래 탐사, 호핑투어, 고망낚시 모두 체험 활동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몇 시간 동안 제주 토박이와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만족도가 높아요. 그럴 기회가 없잖아요. 디스커버제주의 작년 캐치프레이즈가 ‘올레길을 지나 사람을 만나다’였어요. 올레길의 원래 의미가 ‘큰길에서 집의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입니다. 그 끝에는 지역민들이 사는 집이 있어요. 제주라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저희도 ‘사람 만나는 여행’으로 큰 주제를 잡은 거죠.
모든 프로그램을 지역민과 협업해서 운영하시는 건가요?
허 대표 = 아니요. 이주민들과도 같이 해요. 제주에 살러 오는 사람 중에서는, 재밌는 사람이 많거든요. 육지에서도 잘 나갔는데 놀기 좋아하고, 그런 아이디어 좋은 분들이 많죠. 그분들과 사진 강습이나 심리 상담 같은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자연을 활용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악천후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은데요.
김 대표 = 실제 그래요. 8월에 날씨 때문에 취소된 것을 금액으로 따져보면 3천만 원 가까입니다. 늘 위험부담이 있지만, 다행히 사업 기반이 흔들릴 정도는 아닙니다.

■ ‘디스커버 제주’에서 ‘디스커버 문’으로
제주관광공사와도 프로그램을 같이 만들고 계시다고요.
김 대표 = 프로젝트를 하나 같이 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위한 숲 체험인데요, 나뭇잎 그림을 보고 실제 식물을 찾아보는 내용이에요. 숲 지도를 제공해서 일종의 탐험 같은 걸 해보는 거죠. 숲에서도 여러 이야기 요소를 찾아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던 아이들이 자연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자연에서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있지만, 역으로 환경 훼손의 위험도 있을 것 같아요. 관광객이 몰리거나 하면 말이죠.
허 대표 = 비즈니스의 최우선 가치는 수익 창출이지만, 속도를 급하게 내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에요. 일정 가격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돌고래 탐사 프로그램도, 저희가 가격을 더 낮추면 손익분기 넘기는 시점을 더 앞당길 수 있어요. 하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너무 과하게 욕심을 부리다 보면 우리 사업의 원천 자원이 망가질 수 있는 거죠. 적정 수준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매출은 어느 정도 되나요.
김 대표 = 작년 통틀어 1억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상반기에만 1억을 넘겼어요. 와디즈라는 플랫폼에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는데, 상품마다 1,700만 원가량씩 모금을 받았습니다. 사실 올 상반기에는 주말마다 태풍이 오고 그래서 조건이 좋지 않았는데도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전망도 밝다고 생각합니다.
제주 스타트업을 취재해보니, 서울에는 없는 끈끈함이 느껴져요. 창업자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정서랄까요.
허 대표 = 실제 큰 힘이 돼요. 특히 제주스타트업협회 사람들은 사업적으로도 정말 중요합니다. 제주 창업 업계에는 크라우드펀딩에 도전하는 기업이 아주 많아요. 그리고 그때마다 서로 홍보해주고, 모금해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죠.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며, 서로의 마중물 역할을 해줍니다. 수도권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부족할 수 있는 네트워크와 정보 공유 문제를 협회를 통해 해소하고 있죠.
도 차원에서 창업자들을 위해 해결해줬으면 하는 문제가 있다면요.
김 대표 = 도의회 간담회에서도 제기한 문제가 있는데요. 여행업은 크게 세 가지예요. 국내여행업, 국외여행업, 일반여행업으로 나뉘죠. 정부가 창업 활성화를 위해 올해 6월에 여행업 등록 자본 기준을 50%로 대폭 낮췄어요(일반여행업 = 2억→1억 / 국외여행업 6천만 원→3천만 원 / 국내여행업 3천만 원→1천5백만 원). 하지만 제주도는 과거 규정을 그대로 유지 중입니다. 이걸 없애지 않는 이유는 도내 여행업체들을 살리기 위해서예요. 여행 업체가 너무 많아지면 경쟁이 치열해지니까요. 하지만 이런 방어가 별 의미 없는 게, 내가 서울에서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제주도에서 여행업을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거든요. 이러한 불합리한 규정들이 없어졌으면 해요.
디스커버제주는 사명 자체에 ‘제주’가 들어가요. 서비스 지역을 넓힐 계획은 없으신 건가요?
김 대표 = 물론 넓힐 계획이 있습니다. 다만 한 지역에서 확실한 성공 모델을 만들어야 확장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제주에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육지는 물론 해외로도 진출할 예정이에요. 그때는 ‘디스커버서울’, ‘디스커버런던’으로 이름도 다양해지겠죠. 많은 여행 플랫폼들은 중개만 하고 있어요. 자기 콘텐츠가 없죠. 그랬을 때 빠질 수 있는 함정은 가격만이 경쟁 기준이 된다는 점이에요. 죽어나는 건 콘텐츠를 공급하는 소규모 업체들이죠.
허 대표 = 그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 디스커버제주의 우선순위는 ‘우리만의 콘텐츠를 갖는 것’이예요. 향후 중개 플랫폼으로도 확장할 계획이 있지만, 일단 우리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정착시키는 게 먼저죠. 기존 프로그램을 플랫폼 위에 탑재할 때에도, 우리와 색깔이 맞는 것을 선별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디스커버제주의 단기, 중장기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김 대표 = 우선은 제주 안에서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그다음은 서비스 전국화에 나설 계획입니다. 3년 차인 내년에는 투자 유치와 채용 계획이 있고요. 그리고 저희가 사업 소개할 때 꼭 마지막 장에 넣는 게 있어요. 바로 우리의 최종 목표는 ‘디스커버문(Discover Moon)’이라는 겁니다. 10년 뒤엔 우주여행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제주에서 달까지, 세상 모든 곳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플래텀의 제주 출장은 유투버 해니(@해니의 제주일년살이by JEJUPASS)와 함께 했습니다.
다자요, 디스커버제주, 다이브비앤비, 제주다이브 등 여러 스타트업의 도움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경험했는데요.
이를 체험해보는 영상도 제작했습니다. 즐겁게 봐 주시고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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