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만나는 중국의 한국인#2] 텐센트 ‘큐큐브라우저’를 만드는 유일한 한국인, 강소연 디자이너
텐센트 강소연 디자이너는 현재 중국 내 모바일 브라우저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큐큐 브라우저(QQ Browser) 팀에서 일하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입니다. 또 그녀는 텐센트에서 일하고 있는, 단 두 명의 한국인 디자이너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2017년 중국에 넘어가 첫 직장인 화웨이에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재, 그녀는 3만 명의 텐센트 직원 그리고 15억 명의 중국인과 소통하는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디자이너로서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필살기가 필요한 법이겠죠. 그녀는 ‘소통’과 ‘수용’을 키워드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주었습니다.
디자이너도, 결국은 언어다
중국에서 첫 기업인 화웨이에 입사했을 때는 중국어를 거의 못 했어요. 대학 시절 1년간 중국 유학을 했지만, 그 후 10년 동안 중국어 공부를 놓고 한국에서 대학원, 회사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면접도 영어로 보고, 업무도 영어로 진행하기로 합의하고 입사를 했어요. 하지만 쉽지 않았죠. 고위층 임원급 인사들은 영어를 잘해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 아래 있는 동료 직원들과는 소통이 어려웠습니다. 특히 디렉터와의 소통 문제가 불거지면서, 어떻게든 중국어를 빨리 배우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1년 남짓한 기간을 화웨이에서 일한 후, 헤드헌터의 연락을 받고 텐센트로 이직하게 됐습니다.
텐센트 면접을 볼 때까지도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은 없었어요. 중국어로 간단한 인사를 하고,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려는데 면접관이 갑자기 말을 끊더니 ‘중국어로 하라’고 지시하는 거예요. 중국어 가능 여부가 입사의 조건이었던 겁니다. 이후 세 번의 면접 동안 나의 언어 능력을 확인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디자이너니 디자인 실력은 당연히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소통 능력입니다.
디자인팀은 기획팀과 개발팀 사이에서 조율을 잘해야 하는 샌드위치 조직입니다. 중국에서도 이제 ‘디자이너는 예쁜 것을 만들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통을 잘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요. 당시만 해도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았기에, 회사에서 얼마간 기다려주는 시간이 있었죠. 저도 소통 능력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임했어요. 외국인 디자이너가 중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법도, 결국은 언어입니다.
중국 표준과 국제 표준은 다르다
중국에 와서 디자인하며 놀란 것이 있어요. 바로 중국엔 중국만의 표준이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워낙 내수 시장이 작기 때문에, 애초에 글로벌 향 디자인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저 역시 일정한 국제 표준에 맞춰 디자인을 푸는 것에 익숙했죠. 하지만 중국은 달라요. 인구수만 15억이 넘다 보니, 독자적인 디자인 표준을 갖게 됐어요. 중국 표준과 국제 표준은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국제 표준은 대체로 간결한 스타일과 스토리 중심으로 디자인을 푸는 것이 요즘의 대세입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기능 중심의 디자인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시각적으로도 풍부한 느낌을 선호하죠. 색감도 상대적으로 눈에 확 들어올 수 있도록 쨍한 계열을 사용합니다. 어느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일 뿐이죠. 외국인 디자이너로서, 글로벌향 디자인이 더 취향에 맞고 친숙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내 눈에 아무리 이게 예뻐 보여도, 15억 중국인이 싫어하는 디자인이라면 그건 틀린 거죠. 중국에서 일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중국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표준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변화에 대한 태도입니다. 중국에서 일할 때는 ‘만만디(漫漫地)’ 문화를 잘 이해해야 해요. 만만디는 ‘천천히’라는 의미의 중국어로, 한국의 ‘빨리빨리’와는 대척점에 있는 자세입니다. 한국 기업에서는 디자인 개편 작업을 하면, 비교적 빠르고 과감하게 변화를 도입하죠. 그러나 중국은 변화에 대해 매우 보수적입니다. 인구수가 많다보니, 무언가를 바꾸었을 때 따라오는 반응 역시 매우 크기 때문이에요. 서비스 디자인에 있어서도 천천히, 조금씩 바꾸어나가는 것이 중국의 스타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도시별로 선호하는 디자인이 다르다는 것도 중국의 특징입니다. 1, 2선 도시와 3, 4선 도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은 완전히 달라요. 이것이 성별, 연령에 따른 선호도 차이보다 더 큽니다. 기업에서도 이를 고려해, 각 도시민을 타겟팅한 앱을 따로 만들 정도로요.
‘합의’를 중요시하는 중국의 기업 문화
중국 기업에서는 대표부터 인턴 직원에 이르기까지 기탄없는 토론이 가능해요.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업무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견 교환은 부서 간에도 자유롭게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기획팀 인턴이 UX 담당 부서가 하는 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요. 모든 사내 직원이 다른 팀에 일에 대해서도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면, ‘이건 어때?’ 하는 식으로 편하게 제안합니다. 그 의견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면, 인턴의 아이디어라고 할지라도 바로 적용하고요.
때로는 타 부서의 일에 너무 과도하게 참견하는 일까지 벌어져요. 중국 기업은 의견 일치(Consensus)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따라서 디자인팀 총괄자가 최종 컨펌을 한 시안일지라도, 기획팀의 확인을 받아야 일이 마무리돼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한국에서는 디자이너가 차마 못 본 결과물이 개발팀에서 바로 배포되기도 해요. 중국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일입니다. 작업과 관련한 모든 팀이 결과물을 봐야 하고, 이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최종적인 합의에 이르러야 고객을 만날 수 있죠.
15억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를 디자인해 본다는 것
디자이너로서 ‘대륙을 봤던 경험’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 15억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를 디자인한다는 것에 대한 쾌감 역시 크고요.
특히 제가 일하고 있는 도시인 심천의 경우, 수많은 회사의 본사가 위치한 곳이예요. 따라서 다양한 서비스에 참여해볼 수 있고, 기업 내 의사 결정권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죠. 텐센트의 경우에도 북경, 상해 등 지점이 있지만 대다수의 직원이 심천에서 근무 중입니다. 또한 심천은 중국 정부에서 계획적으로 키우고 있는 IT 도시이기 때문에, 변화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텐센트에서는 중국에 관심이 있고, 큰 시장에서 일해보고 싶은 한국 디자이너들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실력과 마음만 있다면 연차도 상관없어요. 중국어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유창하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기회는 열려있으니, 관심 있는 디자이너들의 많은 연락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