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人사이트] 핀테크 유니콘의 홍보 전략을 짜는 사람, 토스 윤기열 PR 리더
지난 12월 10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가 국내외 투자사로부터 약 9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1조 3천억 원 대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국내 핀테크 업계 사상 첫 유니콘(기업가치 1조 이상의 스타트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유니콘 기업에게도 홍보가 필요할까? 유니콘은 이미 유니콘이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여기저기서 취재 요청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기업의 몸집이 커질수록 보는 눈도 많아지는 법. 여기서부터는 난이도가 훨씬 높아진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덜 보여줄지, 또는 무엇에 동의하고 무엇을 반박할지에 대한 좀 더 정교한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토스의 대외적인 홍보 전략이 바뀌기 시작했음이 느껴졌던 것은 작년 12월께 개최된 기자간담회서부터였다.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는 이 날 간담회에서 토스를 앞으로 단순 송금앱이 아닌 ‘토탈 금융 플랫폼’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토스에는 통합 계좌·신용등급 조회 서비스, 비트코인 간편 거래 등의 서비스가 슬금슬금 붙고 있었는데, 이날의 기자간담회를 계기로 토스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이 토스의 첫 대외 행사의 중심에 토스 윤기열 PR 리더가 있었다. 가파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홍보 전략은 무엇일까. 그녀를 만나 물었다.
◼︎ 토스 모르던 홍보 전문가가 토스에 들어와 처음 한 일은 ‘무기고 정비’
입사 전까지 토스에 대해 잘 모르셨다고요. 사실인가요?
그러기도 힘든데 그랬어요. 입사 전에는 에델만 등 PR 에이전시에서 10년간 IT 대기업 홍보를 전담했습니다. 토스는 작년 중순, 문 대통령의 ‘방미 동행 경제인단’ 발표 기사를 읽다가 처음 알게 됐어요. 스타트업은 우아한형제들과 비바리퍼블리카 두 곳이었는데, 배달의민족은 잘 알고 있었지만 토스는 생소한 이름이었죠. 어떤 스타트업이길래 선정된 걸까 호기심이 생겼지만, 곧 잊어버렸어요.
잘 알던 스타트업도 아니었는데, 홍보 총괄을 맡게 된 연유는 무엇이었나요.
좋은 기업의 홍보 담당으로 일해보고 싶다는 욕구는 늘 있었는데, 우연히 인사팀을 통해 인터뷰 기회가 왔습니다. 당시 인터넷은행이 주목을 받고 있었던 시기라, 회사의 성장성에 대해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었죠. 홍보가 공석이었던 상태였고요. 하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만들어가며 일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어 합류를 결정했어요.
10년 차 홍보인으로서, 처음 회사에 와서 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할 일이 아주 많았을 것 같은데요.
가장 먼저 우리 회사가 가진 무기와 현재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을 했어요. 제가 최초로 가졌던 문제의식은 토스의 대중적 인지도에 관한 것이었어요. 토스는 과연 대중적인 서비스일까요? 만약 제가 스타트업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렇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지표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고, 유망 기업으로 자주 조명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제가 속해있던 업계에는 토스를 사용하거나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대중적인 서비스가 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죠. 이 업계 안팎의 온도 차를 줄이는 것을 첫 과제로 삼았습니다.
자사를 객관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특별히 참고한 지표가 있었나요.
당시 마케팅팀에서 인지도 관련 다양한 조사를 하고 있었고, 그 데이터를 보니 제 개인적인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또 기자들을 만나 회사와 서비스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졌는지 들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미디어는 우리를 대중과 연결해주는 창구니까요. 그들이 우리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있는 셈입니다. 당시 토스 팀은 100여 명 규모였는데, 여전히 20~30명이 일하고 있는 조직으로 아는 기자분들이 있었어요. 연 매출도 200억 정도 나고 있었는데, 돈을 못 벌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이런 오해를 풀고, 우리의 현황과 방향성을 확실하게 보여줄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입사 3개월 만에 추진한 것이 기자간담회고요. 토스의 공식적인 첫 대외 행사였습니다.
확실히 작년 12월 기자간담회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홍보 관점에서 기자간담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아무 때나 무턱대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사실 기업이 신규 서비스를 출시하거나 사업 분야를 확장할 때, 모든 기자를 개별적으로 만나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마련하는 것이 간담회입니다. 보통 대기업에서 많이 개최하지만 스타트업에서도 다를 건 없다고 생각해요. 간담회는 우리 서비스를 언론에 좀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한 자리예요. 팀 내에 그런 수요가 있다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기자 3~5명을 초대해 작게 시작해봐도 괜찮아요. 간담회를 통해 기자들이 우리 기업에 대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관심도는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아까 회사의 무기를 파악하는 작업을 하셨다고 했는데, 찾아낸 무기를 어떻게 활용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홍보 대행사에서는 담당사 별 대외 메시지를 정리합니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수많은 국가에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하고요. 메시지 필러(Message Pillar)라고도 부르는데, 토스에는 ‘뛰어난 사용자 경험’, ‘탄탄한 팬층’, ‘선진적인 기업 문화’라는 굵직한 기둥들이 있었어요. 그 기둥들 아래에 핵심 메시지를, 또 그 아래에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와 수치들을 정리해보는 거죠. 이걸 끝내고 나면 다양한 기회가 눈에 띄어요. 예를 들어 새로운 채널이나 기획 시리즈를 발견하면, 여기엔 이 주제를 피칭해보면 좋겠다는 감이 오는 거죠.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요.
얼마 전 크리에이터 태용님과 작업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태용 측에서 먼저 창업가 인터뷰를 제안해주셨어요. 최초 기획은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타깃 청중이 예비 창업자와 스타트업 종사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두 가지 역제안을 드렸습니다. 첫 번째로는 토스가 사실 비바리퍼블리카의 9번째 서비스거든요. 앞선 8번의 실패를 통해 깨달은 ‘되는 아이템 찾는 법’을 알려드리면 좋을 것 같았고요. 두 번째는 기업 문화 이야기를 제안 드렸어요. 결국 두 개 다 좋다고 하셔서, 영상이 두 편 제작됐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업 문화 콘텐츠는 공유가 상당히 많이 됐어요.
토스가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한 모바일 신용 조회 서비스는 공중파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어요. 사내에서는 서비스 고도화를 무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외부에 잘 안 알려져 있는 것이 안타까워 제가 직접 사례자를 찾아 언론에 피칭을 한 건이었어요. 추후 해당 방송 영상을 광고 컨텐츠로 활용했는데, 그 어떤 컨텐츠 마케팅보다 효율이 높았습니다. 전통적인 방송사부터 크리에이터에 이르기까지 각 채널에 적합한 우리의 무기(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얼마 전 한 테크 기업 홍보 담당자로부터, 자사 기술이 너무 복잡해 홍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기자에게도 대중에게도 통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고요. 이런 기업에서 일하는 홍보인들은 어떻게 기삿거리를 발굴할 수 있을까요?
우리 기술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실어줄 매체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제1원칙은 사용자 입장에서 우리 서비스를 썼을 때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핀테크도 기술적으로 파고들면 상당히 복잡한 영역이죠. 하지만 사용자가 궁금한 건, 기술의 작동 원리가 아니라 그 서비스가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이니까요. 그 가치를 명확히 전달해야 합니다. 영 갈피를 못 잡겠으면 벤치마킹할 수 있는 동종 업계 기업을 찍어서, 그 기업의 기사를 열심히 탐구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에요. 어떤 관점으로 기사를 냈는지 분석하다 보면 우리 회사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게 되니까요.
◼︎ 멈추면 실검 뜨는 토스의 위기관리 전략은?
최근 투자를 유치하며 국내 첫 핀테크 유니콘이 되었어요. 핀테크는 국가가 주목하고 있는 산업이기도 하고요. 성장세가 빠를수록 중요해지는 것이 위기관리 전략입니다. 대비하고 있는 바가 있나요?
제가 합류하고 나서 회사 설립 후 가장 주목받았던 사건이 있었어요. 작년 11월 트래픽이 급격히 몰려 토스 앱 접속이 몇 시간 동안 안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만큼 그 파장이 컸습니다. 위기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빠른 상황 파악, 원인 규명, 고객에 대한 충분한 보상안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가 기업 입장에서는 ‘우연히 트래픽이 많은 날’이었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급여일’이어서 더 큰 불편이 있었어요. 토스만 써서 공인인증서나 은행 앱이 없었던 고객들은 더 답답하셨을 거예요. 여기에 착안해 사과 메시지를 쓰고, 보상을 제안했습니다.
[특히 오늘은 많은 고객분의 급여일이었고, 한창 송금이 많이 이루어지는 시간대에 장애가 발생해 그 시간에 반드시 돈을 입금하거나 받으셔야 했던 분들, 토스만을 믿고 발을 동동 구르셔야 했던 고객분들께 진심으로 송구한 마음입니다.]
사후 수습도 중요하지만, 선제 방어 전략도 중요할텐데요.
그렇습니다. 무슨 사고가 터질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특히 금융 산업은 고객의 금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민감한 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팀 내에서 새롭게 무언가를 기획하고 시도할 때에는, 논의의 아주 초기 단계서부터 저도 참여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업팀에서는 아무래도 사업성과 숫자를 근거로 결정을 내리게 되죠. 저는 그 변화나 메시지가 고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향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을 기획 단계서부터 관리하는 것이죠.
자사 미디어인 토스피드의 콘텐츠들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마케팅팀이 아닌 홍보팀에서 관리하고 있다고요.
토스피드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비바리퍼블리카가 진지한 금융 서비스를 하는 기업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하다보니, 토스를 단일 송금 앱으로만 인지하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토스가 단지 앱이 아닌 종합 금융 기업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했죠. 또 저희가 알리고 싶은 모든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될 수는 없잖아요. 이를 보완하기 위해 <토스는 왜?>, <토스의 보안 철학>, <재테크 이야기> 등의 콘텐츠를 쌓아가고 있어요. 금융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들러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 해외 PR, 스토리 하나를 잘 만드는 것에 집중해라
해외 PR은 많은 스타트업이 시도조차 못 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절차나 방법도 불투명하고요. 토스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에이전시에 맡길까 고민도 했지만, 현재는 저희 팀이 하고 있어요. 그런데 해외 매체에서 다뤄지는 것이 단지 멋져 보이기 때문에 시도하는 거라면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턱대고 해외 매체에 기사를 내라고 요구하는 대표가 있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되물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토스의 경우 대부분 해외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했기 때문에 해외 PR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제가 드릴 조언은 ‘하나의 좋은 스토리를 만드는 데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첫술에 배부를 수 없죠. 대기업이 아닌 이상 처음부터 월스트리트저널이 기사를 실어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목표를 크게 잡지 말고, 우리 회사가 속해있는 산업군이나 스타트업에 특화된 작은 매체서부터 시도해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거기서 영문 기사 하나를 잘 만들어 놓으면, 그게 결국 검색에도 잡히고 향후 레퍼런스가 됩니다. 기회를 하나하나 쌓아가는 거죠.
국내 미디어 리스트를 만들 때는, 자사가 속해있는 산업군 기사를 검색해서 일일이 연락처를 수집한다고 들었어요. 해외의 경우도 마찬가진가요?
비슷합니다. 해외 기자와 인맥이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있을까요. 또 해외 언론은 개인적 친분보다는 뉴스의 가치에 따라 취재 결정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계속해서 새로운 곳을 발굴하고, 기자 관점에서 흥미로울 만한 사안을 피칭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주로 미국 매체에 피칭을 하시나요.
‘주한외신기자클럽’이라는 단체가 있어요. 글로벌 미디어의 한국 주재원들이 모인 곳이죠. 한국인과 외국인이 섞여 있습니다.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국내 대기업과 북한이에요. 사실상 그 외 주제들은 다뤄지기가 어렵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사에 의미 있는 꼭지가 있다면, 그 주제가 왜 의미가 있고 왜 다뤄줘야 하는지를 설득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해외 언론은 한국 스타트업의 어떤 점에 관심이 있나요.
안타깝지만 기본적으로 큰 관심이 없다고 전제하는 게 맞습니다. 토스의 경우에는 글로벌 투자사로부터 투자받은 한국의 핀테크 기업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주효했어요. 또 저희가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시점이, 월 1조 송금액을 달성했을 때였는데요. 해외 기자에게는 미국의 유명 송금 서비스인 벤모(Venmo)와 비교해서 피칭을 했어요. 우리는 한국의 벤모인데, 1조라는 수치를 벤모보다 더 빠르게 달성했다는 식으로 설명했죠. 이해를 돕기 위해서요. 홍보의 기본은 혼자 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니까, 언제나 고객과 기자 입장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포인트를 잡는 게 핵심입니다.
증권업, 보험업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홍보 측면에서도 전략적인 변화가 있나요.
갈 길이 멀지만, 이미 기본적인 틀은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나머지는 관련 콘텐츠를 얼마나 잘 쌓아가는지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산업마다 나름의 맥락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잘 읽어내기 위해 매일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희 자체 미디어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내용도 다양해질 예정이에요.
마지막으로 토스의 단기, 중장기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토스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금융 서비스가 필요한 모든 사람이 토스를 찾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기업과 서비스에 대한 호감과 신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토스 홍보팀의 역할입니다. 회사 성장에 발맞춰 그 몫을 잘해나가고 싶습니다.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