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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준범의 스타트업 공정거래 #4] 대기업으로부터 구두로 상품이나 용역 발주를 받은 경우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가장 난감한 경우는 오히려 대기업으로부터 대량 발주를 받게 되는 기회를 잡을 때 발생합니다. 제조기업이나 서비스기업 모두, 대기업과 거래하는 것은 한꺼번에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기회임과 동시에, 그만큼의 비용이 들어가는 리스크를 안게 되는 위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요?

우선 계약서 없이 구두로, 또는 단지 이메일로 업무 착수를 요청하는 ‘구두발주’의 경우입니다.

대기업이나 큰 유통채널의 담당자는 계약 전에 흔히 “우리와 거래하면 최소 O만개 정도는 필요하니, 미리 준비 하셔야죠?”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O만개라니!’ 다른 거래처 몇 개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물량을 들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사장님은 흥분되는 마음에 일단 내부적으로 업무 착수를 시킵니다. 아직 확실한 계약서나 판매일정이 잡힌 것도 아니지만, 일단 필요한 원자재를 끌어와서 공장을 돌리거나,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다른 협력업체들과 약속을 잡아 놓습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계약이 최종적으로 성사되지 않는 경우는 많습니다. 대기업이나 유통채널 내부의 문제일 수도 있고, 또 그들과 제3자와의 계약이 어그러지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발주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각종 준비를 해 둔(다시 말해, 이미 비용을 지출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약서가 없기 때문에 비용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일까요?

​만약 계약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이 비용은 법적으로 인정받기 매우 어렵습니다.
소위 ‘특별 사정에 의한 손해’이기 때문에 대기업이 알거나 알 수 있었다는 점을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증명해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원칙적으로 민법상 계약의 성립은 꼭 정식 계약서가 아니라 이메일이나 말로 이루어져도 됩니다. 나중에 계약이 있었다는 점을 계약서가 아니라 다른 정황증거로 보강해서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계약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아니라 그 계약이나 발주의 구체적인 조건입니다. 정식 계약서를 썼다면 계약으로 어떤 업무가 발주되었으며 그 정확한 내용(스펙)이나 기간, 가격, 지체상금, 투입인력과 같은 세부적인 내용까지 모든 것이 서면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계약 당사자인 양사의 대표이사 인감 또는 서명이 정확하게 남아서 더 이상 논란의 소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구체적인 계약서를 쓰기 전에 이미 예상되는 업무를 위해 원자재를 사 오거나 다른 협력업체들에게 필요한 업무를 발주해 놓은 경우라면, 다른 증거들을 통해 나중에 계약 자체가 인정되더라도 어떤 구체적인 업무를 위해 그런 준비를 했는지 증명할 방법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대기업이 계약 의사를 철회한 경우라면 관련 증거를 얻기는 더욱 어렵게 됩니다.

물론 하도급법이나 대규모유통업법 등에서 구두발주를 금지하거나, 계약을 하면서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일단 구두 발주를 받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아래와 같이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1. 모든 업무는 구두나 전화로 하지 말고 이메일과 같이 증빙이 남는 것으로 진행합니다.

발주를 받았을 때부터 감사를 표하는 내용을 쓰면서 증빙을 남기고, 수량과 가격 등을 모두 이메일로 남깁니다.

​2. 회의를 한 후에는 회의 참석자와 시간, 장소를 정확하게 기재해서 인쇄한 후 내부 결재를 받아 둡니다.

그냥 파일 형태로 보관하면 나중에 수정하거나 했을 때 생성 날짜가 달라지므로 증거로 하기 어려울 수 있고, 동의 없는 녹취는 최근 대법원 판결 이후 불법 소지가 있습니다.

3. 계약 준비를 위해 제3자에게 용역 또는 제품을 발주할 때에도 이메일이나 회의에서 반드시 그 사실을 언급하고 자연스럽게 동의를 받아 둡니다.

보통 이러한 형태의 계약에서는 재하도급의 경우 발주자의 승인을 얻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갑니다.

​위와 같은 조치는 최소한의 것이고, 계약을 진행함에 있어서 각 단계마다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물론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계약 협의에서 부당한 피해를 당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치시길 바랍니다.

*글: 법무법인 세움 – 천준범 변호사 / 원문: [천준범 변호사의 스타트업 공정거래] 대기업으로부터 구두로 상품이나 용역 발주를 받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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