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人사이트] 현실이 주는 서사의 감동 ‘멋언니’ 기획 과정
나이가 많다고 어른이 아니고, 나이가 어리다고 미숙하지 않다. 사람의 성숙도는 세월과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1020 세대에선 나이와 상관없이 멋있으면 언니, 오빠로 불리운다. 카카오페이지의 ‘멋있으면 다 언니 : 황선우의 스압 인터뷰(이하 ‘멋언니’)’는 그런 것을 잘 보여주는 인터뷰 시리즈이다. ‘멋있는’ 사람들의 날것을 모바일에 특화된 형태로 보여준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주최로 지난 27일 열린 테헤란로 스터디클럽에는 멋언니를 기획한 카카오페이지 이수현 팀장과 인터뷰어로 콘텐츠를 만든 황선우 작가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날 이수현 팀장은 웹툰, 웹소설이 중심인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서 조금은 결이 다른 멋언니라는 콘텐츠를 기획하게 된 계기와 과정을 공유했다. 이 팀장은 카카오페이지에서 일반도서 콘텐츠의 전자책 유통과 오리지널 기획 총괄을 맡고 있다. 이하 발표 내용 전문.
콘텐츠만 좋다면 종이든 모바일이든 그릇은 상관없다.
책이라고 하면 흔히 종이책, 전자책이라는 형태적 특성으로 떠올리실 수 있는데요. 책은 좋은 콘텐츠를 종이라는 그릇에 담아낸 것이고, 콘텐츠만 좋다면 모바일이라는 그릇에 옮겨 담아도 독자들이 반응을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2015년 제가 회사에 와서 처음 한 일은 초분절된 회차 판매, ‘기다리면 무료’라는 방식으로 책을 새로운 그릇에 담는 일을 했습니다. 제가 입사를 한 당시에 카카오페이지는 웹툰과 웹소설을 서비스하고 있었고, ‘달빛조각사’라는 콘텐츠를 서비스하면서 지표가 우상향을 그리고 있었어요. 권 단위 보다는 회차 단위 서비스가 익숙한 독자들이 모인 플랫폼이었죠. 저는 출판사를 돌면서 책 서비스를 제안하고 분권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했어요. 아무래도 소설에 특화된 플랫폼이었기 때문에 인기 있는 소설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확대해 나갔고요. 기다리면 무료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유효했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으로 책 카테고리도 확장되었습니다.
신더(루나 크로니클 시리즈)는 저희의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줬던 작품인데요. 서비스 할 당시 이 작품은 출간된 지 한 2년 정도 됐던 구간이었어요. 구간이었기 때문에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서비스를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기대 이상의 좋은 성과가 났어요. 카카오페이지를 이용하던 독자층, 특히나 1020 세대가 이 콘텐츠를 굉장히 많이 봤는데요. 콘텐츠가 가진 판타지적 키워드가 독자와 굉장히 잘 맞아 떨어진 거죠. 당시 전자책 사전까지 통틀어 가장 많은 매출을 냈던 콘텐츠가 됐어요. 자신감이 붙어서 ‘이런 비슷한 류의 소설류 콘텐츠들을 더 가져와서 서비스를 늘려야 되겠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자책에 종이책의 일부만 유통이 되고있고, 소설만 서비스하는 건 한계가 있었어요. 얼마 가지 않아 걱정했던 상황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저희가 콘텐츠를 유통하는 맨 마지막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장 잘 팔 수 있는 콘텐츠가 시장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에 시간을 통제할 수가 없었고, 두 번째는 전자책의 특성상 종이책에서부터 정해지는 가격을 통제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리고 콘텐츠마다 가격이 다 모두 상이했기 때문에 분권을 해놨을 때 품질을 통제할 수도 없었어요. 해결책을 고민해 봤지만, 사실상 시장에서 정해진 룰을 깨고 개선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콘텐츠 유통 뒤가 아니라 제일 앞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기획했다.
용기를 내서 ‘콘텐츠를 만드는 맨 앞으로 가자’고 했어요. 콘텐츠 기획과 제작을 하기로 한 건데요. 이게 ‘카카오페이지 오리지널’가 됩니다. 소설에서 쌓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먼저 오리지널 소설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계기가 됐던 게 저한테는 김영탁 감독님의 소설 ‘곰탕’이었습니다. 김 감독님이 써두고 어디 내놓지 않았었던 소설을 우연히 저희가 제안을 받게 됐어요. 그걸 외부 편집자와 함께 협업을 해서 분권 형태로 웹소설과 비슷하게 제작을 해서 서비스를 했습니다. 시장에 맞춰 제작이 된 콘텐츠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주 뜨거운 반응, 그러니까 기존의 웹소설만큼의 반응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장르의 확장성이라는 측면에서 결과를 볼 수가 있었고, 또 기존의 웹소설보다 조금 더 집중을 요하는 콘텐츠를 독자들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됐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조금 더 소설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장하기 위해서 공모전 등을 진행하면서 콘텐츠를 늘려나가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 소설 개발의 안정화가 이뤄지고 난 뒤 카테고리를 늘려나가는데요. 그중에서 비소설류인 경영경제, 자기계발 등 영역에서 조금 더 오리지널을 확장해보자는 계획을 했어요. ‘판을 키워보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조금 더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고민을 한 겁니다. 이 고민을 실행할 수 있었던 계기는 데이터로 보여주는 결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독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독자들을 조금 더 확대해나간다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모바일 콘텐츠가 어때야 할까?’ 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독자들이 즉각적 반응을 해줘야 소비가 될 것이다’, ‘가독성을 좀 높여야 한다’ 등 여러 가지 가설을 많이 세웠습니다. 이런 가설들에 해당하는 콘텐츠를 많이 보고 논의했죠.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문법도 바꾸고, 분량도 바꾸고, 보여주는 룩도 바꿔야 한다고 봤고요. 가장 중요한 건 반복적인 방문과 소비, 그리고 모바일에서 소비하는 콘텐츠인 만큼 피로도를 최소화할 수 있는 콘텐츠였어요. 특히나 ‘무엇무엇을 하라’ 라고 강요하는 듯한, 선언하는 듯한 콘텐츠는 최대한 피하려고 했죠. 이런 여러 가지 가설들을 가지고 팀에서 오랫동안 논의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걸 테스트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빠르게 만들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반려동물 콘텐츠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가십성으로 다룰 수 있는 콘텐츠를 시도해 봤어요. 그걸 잘 풀 수 있는 작가님들과 함께 협업을 해서 콘텐츠를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그런 콘텐츠들은 이미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유튜브 등에서 영상의 언어로 매력적으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유튜브에서 소비되는 콘텐츠를 뛰어넘는 텍스트 콘텐츠를 고민하게 됐어요.
왜 멋진 여자 주인공은 소설 속에만 있는거야? 현실이 주는 서사의 감동
고민 과정과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는 중에 열심히 읽고 있던 웹소설에 달린 댓글을 봤어요. ‘내일이 기말고사인데 이거 읽는 나 정말 현타온다’라는 댓글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제 모습이더라고요. 로맨스 판타지 속 여자 주인공들은 우여곡절을 거쳐 성공을 향해 가고 있는데, 그 소설을 다 읽고 난 나의 모습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거였죠. 돌아오면 현실 자각 타임이 오는 거고요. 카카오페이지에서 웹소설을 잘 읽던 제 조카도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고요. “고모, 현타가 와.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라고요. 그때 깨달았던 거 같아요. ‘왜 소설 속 멋있는 여자 주인공은 소설 속에만 있을까? 현실에서도 멋있는 언니들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놓쳤던 기준들이 떠올랐어요. 구체적인 독자와 작품이 가져야 될 명확한 구매 동기, 그리고 우리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죠. 이 세 가지를 담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봤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웹툰, 웹소설을 보는 21살 조카가 기꺼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콘텐츠, 판타지의 세계가 아닌 현실에 기반을 둔 어떤 서사가 주는 감동, 우리 팀만이 할 수 있는 콘텐츠를 생각했죠. 그리고 협업하는 파트너가 우리와 일함으로써 가질 수 있는 새로운 가치도 고려해 봤고요. 우리와 베스트셀러 프로젝트를 했던 유시민 선생님이 “카카오페이지 책 카테고리에 기도실 같은 곳이면 좋겠다.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콘텐츠를 서비스했으면 좋겠다”는 말에서 영감을 얻은 부분도 있어요.
그리고 지금 세대들이 공유하고 있는, ‘밈’ 이라고 부르는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 세대가 공감하는 어떤 정서나 그런 표현 방법들이요. 그런 것들을 최대한 모바일 콘텐츠에 녹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선언적인 얘기가 아니라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옅은 메시지를 담으면 좋겠고, 우리가 하고 싶은 주제를 가지고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기준을 가지고 실험할 수 있는 게 인터뷰 콘텐츠였습니다.
인터뷰 콘텐츠는 형태적으로 새롭지는 않다. 왜 인터뷰 콘텐츠였냐면.
레거시 미디어, 영상 산업에서 많이 다루는 인터뷰 콘텐츠를 다룬건 저자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인터뷰 콘텐츠는 어떻게 보면 이야기하는 사람이 굉장히 부각이 많이 되는데, 제가 황선우 작가님을 섭외한 계기는 황선우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태도나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이에요. 그것이 인터뷰이와 티키타카가 된다면 좋겠다고 봤어요.
그래서 인터뷰 콘텐츠를 실험하게 됐습니다. 카카오페이지는 회당 100원인데요. 저희는 소장가 500원, 대여가 200원으로 객단가를 좀 많이 높였어요. 하지만 종이책 시장에서 소비되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한 수준이죠. 가격이 콘텐츠를 선택하는데 허들이 되지 않게끔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분량 역시 기존의 콘텐츠 대비 두 배 이상의 분량으로 스압이 느껴지게 만들었어요. 사실 저희가 생각하는 적절한 분량이 있기는 했지만, 너무 좋은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그걸 빼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조금 더 깊이 있는 몰입감을 줄 수 있겠다는 확신도 있었죠.
그렇게 ‘멋언니’를 2, 3개월 동안 준비하고 7월 30일에 론칭을 했어요. 주 1회 연재로 부지런히 달려왔습니다. 1020 여성 핵심 타깃으로 한 인터뷰 콘텐츠였고요.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서 했던 어떤 선택과 기준들, 그런 가치관들을 얘기할 수 있는 콘텐츠로 담아냈습니다. 좋은 내용과 사진들이 담겼고,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가미됐어요.
‘내부 설득’과 ‘없던 시스템을 조율하며 만든다는 것’의 어려움
이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내부 설득을 해야만 했어요. ‘왜 이 콘텐츠에 이렇게 특별한 저자를 모시고 이 비용을 써야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죠. 단지 “제가 황선우 작가님을 너무 좋아해요.” 로는 되는게 아니니까요. 작가님이 쓴 에세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판매 성과 등 여러 데이터를 참고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선을 제시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또 인터뷰이 섭외, 인터뷰 진행 과정, 그 이후의 작업을 하는 과정도 쉽진 않았어요. 이런 것들이 다 그전까지 카카오페이지에는 없던 시스템이기 때문이에요. 그걸 조율해 가는 것이 어찌보면 제일 어려웠어요.
악플이 단 한 개도 없는 유일무이한 콘텐츠
다행히도 독자들이 너무 재미있게 봐주고 반응을 해준 덕에 유의미한 성과를 내게 됐어요. 특히 두 달 정도 연재하며 2,000개 정도의 댓글이 달렸는데, 악플이나 비난성 댓글이 정말 한 개도 없는 유일무이한 카카오페이지의 콘텐츠가 됐습니다. 황선우 작가님의 ‘방망이 깎는 노인’식 노력으로 아주 퀄리티 높은 콘텐츠가 나왔어요.
‘지속성과 확장성’ 그리고 ‘올드마켓과의 시너지’ 남은 고민
하나 잘 되는 걸로 끝나는게 아니라 지속가능해야 유지가 됩니다. 그리고 확장성도 필요하죠. 어떤 형태로, 어떤 협업 파트너와 함께, 어떤 분야의 이야기를 우리답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드마켓인 출판 시장과 함께해 시너지를 내고 싶어요. 우리가 만든 오리지널 콘텐츠는 방향키라고 봐주시면 될 거 같아요. 카카오페이지의 책탭이 어느 방향으로 갈 거고, 독자들이 어디에 반응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방향키 같은 콘텐츠인거죠. 아울러 새로운 소비문화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