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것들이 이를 썩게 만든다 : 구걸 그리고 개발원조에 대하여…
오늘도 지하철에 앉아서 잡지를 뒤적이고 있는데,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혹자는 너무 메말랐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분들에게 돈을 준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서울에서 가끔 마주치는 빅이슈는 예외다. 길을 가다 판매원 분들이 보이는대로 한 권씩은 사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한국에 일주일 머무는 동안 4-5권씩을 살 때도 있다. 그럴 땐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UNDP와 같은 큰 기관에서는 저개발국을 대상으로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거금의 자금을 집행을 한다. 그런데 그 중엔 정부의 중간관리층들에 의해 야금야금 뜯겨나가 결국 마지막엔 껍데기만 남는 프로젝트이 많다. 각종 진행 과정 중에 부정부패가 만연해 원래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프로젝트가 흘러가기도 한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저개발국에 지원되는 많은 자금들이 각종 명목으로 사라지고, 오히려 그런 개발자금을 비지니스로 삼는 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난다. 발전은 커녕 사회의 후퇴만 진행될 뿐이다. 혹자들은 이 공무원/정치인들을 비판한다. 그런데 이 문제가 단순히 부패한 관리자 몇몇의 잘못에 대한 것일까?
내가 경제학을 공부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이 주어진 인센티브 앞에 어떤식으로든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 사회 속의 개인이 잘못된 인센티브로 인해 전체적인 사회의 악화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단순히 도덕률에 기대 개인을 비판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시스템 주의자일 수도 있고, 사회주의자 일 수도 있다.
오늘 지하철에서 천원을 쥐어주는 것과 단순히 돈으로 저개발국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일까? 사회적 시스템의 개선이 부재한 단순한 자금 지원, 물품 지원이 그들의 삶이 “잠시동안” 나아지는데 조금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그들의 자립 의지를 꺾지는 않을까? 달달한 것들이 이를 썩게 만든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있는게 낫다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뿌듯함을 위해 한 행위가 사회적으로 더 나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다.
태국에서 캄보디아를 넘어가는 국경, 많은 외국인들이 캄보디아 입국 비자를 받기위해 서있다. 어린 아이들이 몰려와 구걸을 한다. 불쌍한 아이들을 보고 그 외국인들은 잔돈을 쥐어준다. 아이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게되자 그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본격적으로 구걸에 참여시킨다. 그렇게 구걸하는 아이들은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게 되자 이제 외국인 관광객들은 인근의 문방구에서 펜과 공책을 직접 사서 아이들에게 쥐어준다. 고사리 손에 펜과 공책을 쥐어준 외국인 관광객들은 뿌듯함을 느끼며 국경을 지난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물건들을 문방구 주인들에게 팔고 다시 현금을 받는다. 예전에 아이들이 구걸을 하며 받을 수 있는 돈이 1불 이었다면, 이제는 문방구 주인에게 수수료롤 떼주고 난 50세트만 손에 남게 된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의도는 좋았으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고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여하튼, 그것이 돈이 되었든 물품이 되었든 그 아이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 탐스슈즈는 소비자가 한켤레의 신발을 살 때마다 한 켤레의 신발을 제 3세계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기제를 가지고 있어 크게 관심을 받았다. 소비자들은 탐스슈즈를 소비하면서 뿌듯해했고 실제로 신발은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아프리카의 한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공짜로 신발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더이상 시장에서 신발을 구매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이 기존에 사서 신던 신발은 폐타이어를 잘라서 만든 조잡한 형태의 것이었는데, 사람들이 더이상 신발을 구매하지 않게 되자 가내 수공업 형태로 신발을 만들던 사람 대부분이 직업을 잃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공짜 신발만을 기다리게 되었고, 지역 산업은 붕괴되고 말았다. 우리가 생각해던 만큼 모두가 행복하지는 않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고 나만 기분 좋으면 의무는 끝이 나는 것인가? 오히려 우리들은 이렇게 문제를 더 크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분명히 선일 것이다. 그런데 의도가 좋았다고 해서 결과까지 항상 좋지는 않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컨설턴트가 되고 싶었다. 어떤 한 단체/기관/집단의 시스템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하면 작게는 한 단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크게는 한 국가와 사회 시스템 전체의 효용을 최대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저개발국과 같은 곳의 시스템 개선은 한 개인의 이슈가 아니었다. 수 많은 이익집단과 정치집단이 엮여있고,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그것이 비록 긍정적인 방향일지라 하더라도)를 원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내 꿈이 그냥 순진한 이상일 뿐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난 정말 순진했다.
내 편협한 경험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정부 차원의 ODA는 개발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있다기 보다는 외교의 성격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눈에 뛰는 ‘보이는’ 성과가 중요하다. 본국과 주재국 정부의 눈치도 봐야하는 처지다보니, 적시적절한 개발 원조를 진행하기는 정말 어렵다. NGO들의 경우에도 많은 곳들은 정말 풀뿌리에서 저개발국 지역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개발 원조를 핑계로 선교 활동에 치중하거나 사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너무 많이 보였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위해 지역사회에 더 나은 원조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 경우도 보았왔다. 내가 지극한 이상주의자이면서도 동시에 지독한 현실주의자여서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의 개발원조 방식들이 그 본연의 목표를 이루는데 정말로 기여하고 있는지에 회의적이다.
그런데 정말 무책임하게도 나 또한 정답은 알지못한다. 다만 현실을 철저하게 받아들이고 인센티브 기제를 잘 이용한 시스템의 구현으로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빅이슈와 같은 모델은 홈리스들로 하여금 노동을 시작할 수 있게 하고 다시금 사회의 구성원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 그들이 직접 일하는 과정에서 사회속의 사람들과 접촉하고 대화하면서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도 치유하고, 자립의 기반도 세우면서 다시 희망을 되찾을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시스템이 시간은 걸리더라도 단순히 길거리에서 돈을 던져주는 행위보다 훨씬 발전적이지 않을까?
방글라데시의 그라민뱅크의 경우를 보면 대출 금액은 낮추고, 대출 심사 기준 또한 낮춰 여성들이 쉽게 자립의 기반을 세울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은행은 낮아진 대출 심사 기준 만큼 높은 이자율를 취하여(그래도 소액이다) 은행도 일정 수준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운영도 가능해진다. 이런 기제야말로 단순히 자금 지원과는 달리 자립성, 지속성을 갖추고 있는 것 아닐까?
베이징의 예술가 지역인 798 구역에는 아프리카 대사관에서 일하던 한 젊은 직원이 세운 Beijing Africa Center가 있다. 이곳에서는 아프리카의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기도하고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물품이 판매되기도 한다. 그 곳엔 인큐베이션 센터도 있는데, 이 센터는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아프리카 지역의 중소기업에 염가로 사무실도 제공하고 중국 진출 컨설팅도 지원한다. 이런 방식으로 센터는 중국-아프리카 간의 무역도 촉진하고, 아프리카 로컬 기업들의 발전(장기적으로 지역의 발전)도 도모하며, 지분 투자를 통해 센터의 장기적인 운영 기반 또한 갖출 수 있다.
물론 내가 기업을 하는 입장이다보니 기업의 형태(현실 사회의 인센티브 기제)를 이용한 문제 해결 방법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연체의 글이 쓸데없이 길어지는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장기적으로 수혜국의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수혜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집중해야한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개발원조의 지속성을 위해서라도, 단순한 자금/물품 지원과 같은 행위는 긴급 구호의 범주만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선일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어떤식으로든 저개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고민은 한번도 버린 적이 없다. (thanks to youthCLIP) 그런데 적어도 지금의 방식에서는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다. “모두다 엉망이야”라고 다 내려놓겠다는 말이 아니다. 계속 고민하고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거라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divide]
출처원문 : 달달한 것들이 이를 썩게 만든다 : 구걸 그리고 개발원조에 대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