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에는 디테일이 없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특허문헌의 활용 다각화
2007년부터 특허 업무를 시작했으니 햇수로 올해 15년이 되었다. 그 동안 특허와 관련된 많은 업무를 경험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출원 후 공개된 많은 특허문헌들을 활용하기 위해 주요 국가에 출원된 특허문헌으로부터 유의미한 다양한 정보를 분석하고자 하는 여러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허문헌을 통해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기술발전도를 그려보기도 하고, 경쟁사 또는 관련업계의 특허출원 동향을 분석해서 앞으로의 R&D 방향을 예측하거나 인사이트를 얻으려는 컨설팅도 활발하게 수행되고 있다.
우리 BLT에서도 2013년부터 지난 9년간 100건이 넘는 특허 기반의 중장기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많은 사례를 경험해왔다.
특허문헌에 디테일이 없는가?
이 글을 쓰는 현 시점에도 BLT에서는 여러 건의 분석 프로젝트가 수행되고 있다. 이 중에 개인적으로 2개의 프로젝트에 대해 PM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과제를 수행하면서 한국, 일본,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공개된 특허문헌을 분석하여 기업에 도움이 될만한 결과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제 수행 과정에서 특허문헌에 기재된 내용을 같이 보면서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는데, 적지 않은 고객이 특허 내용에 대해 기대감을 가졌다가 막상 내용을 함께 확인하면서 적잖이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대개의 경우는 궁금한 발명내용에 대한 특허문헌에 상세한 기술 관점의 내용이나 알고리즘, 기술구현방법 등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 발생한다. 특허문헌에 기재된 기술내용을 참고하려고 했지만, 간단하게 요약적으로 기재되어 있거나 일부 내용이 생략되거나 통상의 기술자가 보기에 당연한 소리(?)만 언급하는 특허문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특허문헌에 디테일이 없다는 것.
디테일이 없는 상황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디테일이 없는 것은 죄악시 될 정도로 디테일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특허문헌에 디테일이 없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인 소식일 수 있다. 특허에 디테일이 없다는 고객의 지적은 모든 경우에 타당한 것은 아니지만, 왜 이런 지적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특허문헌 중에서는 개념적인 내용 정도에 그치는 문헌도 꽤 존재한다.
특정 기술분야의 특허 분포나 동향을 확인하기 위한 동향조사나 특허맵(patent map)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긴 여정을 거치곤 한다. 유의미한 특허문헌을 몇 건 찾기 위해서, 검색식을 통해 도출된 수천 건 이상의 원천데이터(rawdata)를 일일이 확인하는 고생스러운 작업을 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유의미한 특허를 선별해서 고객이 고민하고 있는 R&D 방향에 도움이 될만한 구체적이고 유효한 내용을 제공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아무리 찾아도 수박겉핥기 식으로 기재되어 있는 특허문헌만 줄줄이 나올 때는 안타깝거나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특허문헌의 유형이나 기술분야, 작성의도, 작성시점, 대리인의 전문성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다양한 사례가 존재할 수 있다. 디테일이 없는 특허문헌은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눠볼 수 있는데, 실제로 디테일이 없는 개념적인 아이디어에 불과한 발명인 경우와, 실제로는 디테일이 있지만 의도적으로 추상화하여 출원한 발명인 경우다.
전자는 특허명세서를 작성하는 대리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디테일을 언급하고 싶어도 디테일을 언급할 수 없는 난감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아직 아이디어 초기 단계이거나 기술개발 초기 단계여서 아직 디테일에 대한 검증이나 확립까지 도달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특허출원을 빠르게 진행하여 출원일을 확보하려는 경우에 주로 발생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사업이나 시장 또는 기술이 검증되는 과정에 맞춰서 후속적인 특허출원을 통해서 특허 장벽을 견고하게 구축하는 보강작업이 필요하다.
후자는 특허의 독점권은 확보하면서 기술의 공개는 최소화하는 것으로, 공개되는 정도에 따라 기업 입장에서 이상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특허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범위까지만 기재할 수 있다면 공개된 범위가 그대로 독점권이 발생하는 범위가 되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구체적인 알고리즘과 수학식, 노하우에 해당하는 설정값까지 모두 공개했지만 독점권이 발생하는 특허등록을 받지 못했다면 연구성과만 노출시키고 얻은 것은 없는 그야말로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특허 문헌을 검토하는 것이라면 크게 문제되지 않겠지만, 특허문헌을 통해서 기술의 흐름이나 R&D 방향을 수립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자 하는 컨설팅 상황에서 특허 문헌을 검토하는 것이라면 다소 난감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런 내용으로도 특허를 받을 수 있나요? 라는 어이없어 하는 고객의 푸념(?)은 덤으로 따라오게 된다.
특허제도의 양면성
디테일에 대한 논쟁(?)은 특허제도의 특이한 성격에 기인한다. 특허제도는 상반된 성격을 동시에 가진 제도다.
먼저, 특허제도는 기술을 개발한 발명자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기술을 개발한 발명자에게 최장 2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독점권을 보장하고 있다. 잘 아는 것처럼 타인의 특허를 허락없이 실시한다면 민사적인 손해배상뿐만 아니라 형사적인 책임까지 질 수 있다.
반면, 특허제도는 양질의 기술이 계속 개발되어 산업발전을 촉진할 수 있도록 공정한 경쟁 환경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의도로 특허청은 특허출원한 내용을 18개월이 지나면 모든 내용을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공개해서 특허문헌이 기술개발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다. 특허 독점 기간이 영구적이지 않고 20년이라는 기간 제한을 둔 것도 같은 취지다.
특허문헌은 공개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특허법에서는 특허명세서를 작성할 때 기술내용이 명확하게 잘 드러나도록 기재하는 것을 법제화 하고 있다. 특허문헌의 권리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한 취지이면서 동시에 공개된 특허문헌을 보는 연구자가 잘(?) 참조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살펴본 것처럼 너무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내용만 기재되어 있으면 특허명세서 작성원칙에 위배되는 것인데, 대체로는 특허성이 있을리 없기 때문에 등록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허제도의 취지와 별개로 현실적으로 볼 때, 힘들여 개발한 독자적인 기술의 모든 것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은 대부분의 고객이 원치 않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리인 입장에서는 고객으로부터 세부적인 기술내용까지 발명자료로 전달받았다고 해서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별 생각 없이 디테일한 내용을 그대로 기재하여 특허명세서를 작성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특허문헌의 불편한 진실(?)
특허제도에 양면성이 있는 것처럼, 특허제도의 범주에 속한 특허문헌도 꽤 독특한 성격을 가진다. 15년차 현직 변리사가 느끼는 특허문헌의 특징을 정리해보자면,
1. 특허문헌은 기술에 대한 문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법률에 대한 문서에 더 가깝다.
2. 특허문헌은 기술을 공개하는 목적이 있지만 정작 작성자들은 최대한 기술을 덜 공개하기 위해 노력한다.
3. 특허문헌은 기술을 소개하는 문서이면서 야박하게도 소개된 기술을 따라하지는 말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정리하자면 특허문헌은 독점력이 발생한 범위를 선언하는 선언서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독점력이 발생한 범위에 대해 설명하는 기술내용을 포함하는 법률문서인 것이다. 오롯이 기술문서의 성격만을 가지는 대표적인 문헌으로써 논문을 들 수 있다. (물론, 모든 분야의 논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논문을 의미)
특허는 논문과 유사한 흐름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연구의 배경과 종래의 기술이 언급되고, 문제점이 언급된 다음에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순차적으로 접근한다. 양자의 논리 전개 방식은 유사하지만, 기술을 언급하고 다루는 방식은 다르다. 전술한 것처럼 특허문헌은 독점력을 얻기 위한 특허의 청구범위를 선언하고 그 독점력이 발생하는 범위와 독점기술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 논문처럼 기술개발의 성과를 공유하고 구현 방식과 실험 조건 등 모든 상세한 내용을 다른 연구자에게 알리고 검증 받는 목적의 문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허문헌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그간의 경험상 봤을 때, 기업의 관점에서는 특허문헌에서 설명하는 기술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기술의 본질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특허는 권리를 효율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고객이 특허분석사업을 통해 특허문헌을 발굴하고 이로부터 구체적인 기술내용이나 구현방법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얻고자 할 경우에는, 실망하거나 특허 자체를 별 것이 아닌 양 오해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특허문헌은 특허문헌의 목적을 이해하고 이에 맞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허문헌의 디테일은 특허성을 인정받을 정도까지만 언급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고 또한 그것이맞는 전략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남이 낸 특허문헌을 분석하는 입장에서는 특허문헌의 분석을 통해 기술의 디테일을 얻으려고 하기 보다는, 특허문헌의 내용을 통해 다른 유사 분야의 기업은 어떤 식으로 특허전략을 수립하고 있는지, 어떤 내용에 초점을 맞춰서 권리범위를 설계하고 있는지, R&D나 사업의 방향성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등 특허문헌을 통해 알 수 있는 거시적인 흐름에 주목하는 것이 특허문헌을 활용하기 위한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원문 : 특허에는 디테일이 없다
필자소개 : 유철현 BLT 변리사 : 유 변리사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직접 투자하는 ‘엑셀러레이터형’ BLT 특허법률사무소를 시작으로, IT와 BM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다양한 기술 기반 기업의 지식재산 및 사업 전략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심의위원과 한국엔젤투자협회 팁스(TIPs)프로그램 사업 심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