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a Dictation : 남의 생각을 정리하는 기술 2
정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커다란 움직임을 잘 잡아낸다. 이야기를 해부해 보면 딱 한 덩어리로 이루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수 십개의 자잘한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다. 대신 커다란 3~4덩어리의 이야기로 순서를 맞춘다. 대부분 그 흐름을 잡아내지 못해 어려움을 느낀다. 앞서 말한 직관성은 조각난 정보들을 몇 개의 묶음으로 구성하는데서 나오므로 핵심과 흐름을 잡아내지 못하면 직관적으로 나타낼 수 없기에 대다수의 정리는 ‘모 아니면 도’식으로 괜찮거나 엉망이다.
그들이 좌절을 느끼는 부분은 받아적은 조각난 정보들을 어떤 매커니즘에 의해 큰 덩어리로 구성하는 가에 있다. 물론 여기엔 매커니즘이 있다. 영화나 연극쟁이들은 대개 극을 3막구조로 설계하고 남의 작품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해결사-서사시 두 가지의 패턴을 염두해두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즉, 이미 가지고 있는 구조에 어떤 정보들이 대입되는가를 보는 것이다. 이야기의 기본 패턴에 대한 의식이 없다면 각자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즉석에서 구조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는 명확한 주장이 있는 이야기는 항상 문제와 해결이 양립된 구도로 단정짓는다. 이 패턴을 나는 ‘해결사 구조’라 부르는데 여기엔 다양한 파생패턴들이 있지만 큰 줄기는 동일하다. 내가 좋아하는 TED 강연 중 한스 로슬링의 (Hans Rosling)의 ‘세계 인구증가에 대하여’ (Global population growth, box by box)를 예제로 설명해보자. 이 강연은 정말 구조화, 시각화의 교과서와 같으며 이해하기도 쉬워서 논리구조에 대한 강의를 할 때 실습예제로서 가장 먼저 꺼내들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수업에 들어온 교육생들은 언제나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인구폭발을 막기 위해 개도국 신생아 생존률에 범 세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것을 문제 및 해결 구조로 양분하면 다음과 같은 두 문장으로 분리할 수 있다.
문제 : 개도국의 낮은 신생아 생존률이 인구폭발의 원인이다
해결 : 생존률을 높이기 위한 범 세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해결사 구조의 이야기는 확실히 문제와 해결이 팽팽하게 양립하는 형태이며 다른 모든 내용들은 조연일 뿐이다. 로슬링 교수가 문제점을 증명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을 살펴보자. 그는 어린시절 선생님이 얘기한 30억 인구에서 시작해 1960년에서 2050년까지의 인구변화 모델을 3등분하여 ① 상황을 설명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구폭발문제’라는 ②이슈가 등장하며, 인구폭발문제는 결국 개발도상국에 집중된다고 ③문제를 제기한다. 이 문제는 미래에도 해결되지 않는 유아생존률이 주된 ④원인이라 지목을 하는 것으로 전반부를 완성한다.
그는 계속하여 정량적인 지표로 위에서 말한 것들을 한번 더 짚어낸다. 이야기를 듣는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그의 문제제기가 타당한 것이라 자리를 잡는다. 그가 설명하는 인구폭발 모델은 정량적으로 완전히 입증되었기에 우리는 확실히 로슬링교수의 의도대로 문제의식을 갖게된다. 그는 10분이라는 짧은 강연 시간중 8분 30초를 할애하여 ①상황-②이슈-③문제-④원인으로 이어지는 전반부의 ‘문제’덩어리를 완벽히 소화해 냈다. 남은 시간 그는 ⑤ 해결책으로 게이츠 재단이나 유니세프가 벌이는 개도국 유아들을 위한 지원책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고 끝낸다.
⑤ 해결책은 대단히 간단하지만 우리는 그 방향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 앞에서 해결책에 대한 모든 에너지를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완성된 논리구조는 아래와 같다. 이는 나의 주관적인 정리로 모양새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정리가 제대로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겠다.
• 결론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라
• 논리 구성 단계와 흐름을 몇 덩어리로 표현해 보라
• 각 이야기 덩어리가 말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핵심은 언제나 단순하며 구조적이다. 그걸 잊어선 안된다. 복잡한 핵심이란 있을 수 없다. 한 장 정도에 위의 그림과 같은 밀도로 정리해낼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설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림은 커다랗게 양분된 상위구조와 그 구조내에 포함된 하위구조를 직관적으로 나타낸다. 더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일관된 흐름, 인과관계를 말이다. 아마 그래야 빠른 시간내에 핵심을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 위의 그림은 논리구조에 대한 그림이지 실제 이야기의 그림은 아니다. 즉, 논리구조와 이야기의 모양새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설계하는 한스 로슬링 박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그는 논리구조를 확정해 놓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 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는 먼저 과거-현재-미래로 상황을 3등분하여(시간축) 경제발전을 4단계로 나누어(경제발전축), 10억 단위로 인구의 움직임을 설명한 모델을 만들었다.
사실 그 모델은 로슬링의 가설일 뿐이지만 그는 정량적인 데이타를 이용해 결정적으로 유아생존률과 출산률을 묶어 역시 과거-현재-미래의 축으로 원인을 지적한다. 이 때문에 이 강연을 보는 사람들 대다수는 이 강연이 과거-현재-미래로 3등분 되어 있다고 여기게 된다.
이는 틀린 분석이 아니다. 그러나 로슬링은 자신의 논리를 단순하게 증명하기 위해 이야기 구성을 그렇게 했을 뿐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실제 겉으로 보이지 않는 논리구조를 시각화 하는 일이다. (부가적으로 이야기의 전개까지 참고하면 가장 좋은 학습방법이다.)
위에서 나는 ‘해결사 구조’(혹은 해결사 플롯)의 분석(도해)방법에 대해 얘기했다. 주장이 있는 강연은 대부분 해결사 구조와 완전히 들어맞거나 변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세바시에 자주 등장하는 ‘성공사례’ 패턴도 이와 유사하다. 성공사례에 있어 ‘문제’에 해당하는 것은 어려움이나 도전과제이다. 성공사례는 어떤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날의 내가 있었는가를 얘기하는 것이다.
반면 주장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TED강연 중 라파엘로 단드레아(Raffaello D’Anrea)의 쿼드콥터의 놀라운 운동력 (The astounding athletic power of quadcopters)은 어떤 단계를 거쳐 결론에 이르고 있지 않다. 즉, 넘어서야 할 난관이나 문제점이 없이 그저 그것을 보여준다. 이런 패턴도 ‘해결사 구조’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패턴으로 난 그것을 ‘서사적 구조’로 부른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주간보고나 원리설명, 작동방법에 대한 매뉴얼 등이 그에 해당한다. 난 그러한 이야기들은 옴니버스 스토리를 감상한다고 간주하고 몇 개로 격리구분하려고 노력한다. 방금 예로 든 쿼드콥터의 놀라운 운동력이 딱 그렇다. 이 이야기는 기본적인 능력에서 고차원적인 알고리즘까지 대략 5-6개의 작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또 다른 유형도 있다. 난 지금까지 논리적인 주장을 펼치거나 지식을 정제하여 전달하려 하는 이야기의 형태에 주로 초점을 맞춰 얘기했다. 이러한 유형은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이야기도 있다. 난 이것을 ‘느낌’을 전달하는 이야기라 부른다. 예를들어 파울루 코엘류의 연금술사 같은 책 말이다. 이건 정리하려 들면 들수록 어렵다. 뭉게구름같고 안개같아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감동을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정의를 내리려는 시도는 바보같은 짓이다. 그러한 종류의 이야기는 청중 100명의 느낌과 감동이 제각각일 수 있으며 그것을 하나로 수렴시키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내가 Idea Dictation을 통해 연습하고자 하는 것은 100명의 청중이 모두 오해하지 않고 단 한가지로 납득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TED보다 현실은 더 가혹하다
현실은 TED강연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TED에 등장하는 강연자들은 평균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은 강연도 사실 많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훨씬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발표자가 정말 지루하게 발표를 해도 결국 그것을 해석해내어 논리적으로 반격을 가해야할 때가 종종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실제로 닥친다면 대부분은 펜과 정신줄을 놓고 포기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럴때는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들으려 하지 말고 발표자가 무엇을 문제삼는 것인지에 집중하라.
모든 것은 그것을 중시으로 풀리게 되어 있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이 몇 가지인지, 무엇인지만 추출해 내고 나면 그에 따른 해결책과 문제로 지적한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것을 역으로 재구성해 그 허점을 찾아낼 수 있다.
한스 로슬링의 또 다른 강연인 한스 로슬링과 마법세탁기 (The Magic Washing Machine)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단순하고 훌륭한 로직을 가진 강연이었음에도 Idea Dictation 실습에 참여한 대다수의 교육생들을 멘붕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심플하게 한번 꼬여있는 구조에 당황하여 문제점을 찾아내는 일에 실패하였고 당연히 결론를 뽑아내지 못했다. 그로인해 전체 정리의 모양새는 자리를 잡지 못하였고 초점도 잃게 되었다. 실망할 것 없다. 이건 대단히 흔한 일이다. 좀 더 멀찍이 떨어져서 전체를 관망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구도가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부록 : 한스 로슬링의 강연에 대해
로슬링의 강연을 듣고나면 두 가지 측면에서 항상 감탄하게 된다. 단순명확한 논리 구성과 비주얼한 이야기 구성때문이다. 사실 후자에 더 감탄하게 된다. 위에서 예로든 강연에서 보여준 시간축-경제발전단계-인구를 각각 3등분, 4단계, 10억 단위로 단순화 해낸것 자체가 놀랍다. 게다가 그것을 시각화를 넘어 소품을 이용해 전달하는 방식, 각 단계를 텍스트가 아닌 슬리퍼-자전거-자동차-비행기로 형상화 한 장면에서는 ‘오~ 이런’하는 탄식과 함께 고개를 흔들 수 밖에 없었다.
출처원문 : Idea Dictation : 남의 생각을 정리하는 기술 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