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471] 아이들을 디지털 세상에 안전하게 착륙시키는 조종사들
이다영 필로토 대표는 어릴 때부터 사회 참여적인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대학생 때는 장애 아동 음악치료 서비스를 만들어 여러 상을 수상하는 등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그 서비스를 써본 부모들의 눈물이었다.
“여러 부모님들께서 제 손을 잡고 우셨어요. “사재를 털어서라도 투자를 할 테니 제발 이걸 계속 만들어 달라”라고 말해준 분도 있었고요. 하지만 여러 이슈가 겹쳐서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돼서 그 기대에 부응하진 못 했어요. 그게 지금도 아쉬워요.”
삼성전자에 입사 원서를 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구현하고 싶은 서비스를 같이 만들 수 있는 개발자가 많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IT 프로덕트에 꾸준히 도전을 했는데, 같이 만들 수 있는 개발자를 만나는 것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 개발자들이 많이 있는 회사로 들어가서 원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거였어요.”
회사 생활을 하며 부끄럽지 않은 서비스를 기획하기 위해 승진과 무관한 교육 대학원에 지원한다. 회사 업무로 주말에도 출근해야 했기에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회식이 있는 날에는 정신을 차리려 일부러 토해가며 매진했다. 결과적으로 성적 우수로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현직 유치원 교사들을 만나 지금 사업 아이템의 모티브를 얻었다.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특히 아이들이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짚어줬죠.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첫 사업 아이템은 선생님들의 문제 제기에서 시작된 거예요.”
이 대표는 아이데이션을 거쳐 교육과 기술을 연결시키는 모델을 기획했다. 그리고 AI 캐릭터가 아이의 올바른 스마트 기기 사용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하는 서비스를 선택했다. 사전에 보호자가 설정한 기기 사용 시간이 지나면 스마트폰 화면 속 캐릭터가 등장해 친근하게 사용 종료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물활론적 사고(物活論的 思考, 무생물에게 생명과 감정을 부여하는 사고. 유아기에 나타나는 인지적 특성 중 하나)가 투영됐다. 아울러 기기와의 적정 거리 유지, 유해 콘텐츠 차단 등의 실시간 모니터링 서비스 기능도 부가했기에 맞춤형 AI 교육도 가능하다.
이 아이템으로 삼성전자 사내 벤처 프로그램 ‘씨랩 인사이드’에 지원했고 우수 과제에 선정됐다.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하진 않았다. 삼성전자 내 서비스에 접목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회사의 제품 결과 맞지 않아 스핀오프를 선택했다. 회사에서도 원하는 것을 만들어 보라며 독려해 줬다. 불과 한 달 전 일이고 법인 설립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초보 창업자가 되어 정글에 막 발을 내디뎠지만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사표를 낸 지 일주일 만에 125개 스타트업이 지원한 스타트업 데모데이(2022년 5월 디캠프 디데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입주공간과 초기 투자 길이 열렸다.
“입주공간이 너무 절실하던 상황이어서 지원했어요. 같이 무대에 서는 기업들을 살펴보니 공작새와 병아리가 겨루는 싸움이라 생각했어요. 그저 무대에서 우리 이야기를 편하게 하자라고만 생각했죠. 운좋게 우승을 했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아요. 저희에게 기대가 있을텐데, 그 이상의 성과를 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어요. 우선 제품을 잘 만드는 데만 집중하려고 해요.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을 빨리 만들어서 보여드리는 것이 눈앞의 목표예요.”
필로토의 장기적인 마일스톤은 몇년 후가 아니라 100년 후에 맞춰져 있다.
“교육은 ‘100년지대계’라고 하는데, 100년 뒤 교육이 지금과 같을까요. 100년 뒤 세상은 분명히 달라져 있을 것이고, 그 변화된 모습에 맞는 교육과 육아 모형이 있을 거예요. 그에 걸맞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계획이예요. 아이들이 디지털 세상에 무사히 착륙하게 아이들의 눈높이 맞춰서 서비스를 만들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사회 참여적 활동을 많이 했어요.
문제가 생기기 전에 조기에 발견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늘 생각했어요. 예나 지금이나 보육을 할 때 특정 단서들을 놓치면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어요.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교육을 늦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해요. 에듀테크 영역에서 제가 관심있는 것은 조금 더 공부를 잘 하게하고, 조금 더 우수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뒤떨어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게 막아줄 수 있는 것이예요. 부모님이 아이를 매순간 들여다볼 수 없는 가정도 문제가 없도록 하는 거죠. 아주 우수한 아이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최저선을 맞춰주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교회나 지역 단체에서 봉사 활동을 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저소득층 아이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미술치료 수업에서 보조 교사로 참여하기도 했죠. 그런 수업을 받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기 위해선 디지털 방식으로 치환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생이 된 뒤 장애 아동 대상 음악 치료 서비스를 만든 배경이 됐죠.
-장애 아동에게 음악 치료 서비스가 왜 필요한가요. 그걸 디지털로 바꾼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요.
장애 아동들에게 음악치료를 제공할 때 100여 종의 아날로그 악기를 가져다 놓고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상황과 반응을 체크해가면서 소근육 운동 등을 유도해 주세요. 장애 아동들은 손 운동을 놀이로 밖에 배울 수 없기에 지속적으로 해야 도움이 되는데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게 되죠. 꾸준히 하지 않으면 퇴행되는 형태로 가죠.
그래서 스마트폰 게임 형태로 음악 치료 서비스를 만들고, 모듈형 디바이스에 손 운동을 단계별로 시켜줄 수 있는 장난감을 페어링 하도록 했어요. 그걸 통해 여러 학회나 기관에서 상을 많이 받기도 했어요. 상보다는 여러 부모님들께서 제 손을 잡고 우시던 게 기억에 남아요. “사재를 털어서라도 투자를 할 테니 제발 이걸 계속 만들어 달라”고 말해준 분도 있었고요. 하지만 여러 이슈가 곂쳐서 하고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서 그 기대에 부응하진 못 했어요. 그게 굉장히 아쉬워요.
-그 뒤에 삼성전자에 입사했어요.
사회적 약자를 돕는 IT 프로덕트 도전을 계속했는데, 제가 디자인 베이스다 보니 같이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개발자들이 많이 있는 회사로 들어가서 구현하는 것이었어요. 삼성전자에 입사원서를 낸 이유 중 하나였죠. (웃음) 입사 후 함께 일하던 개발자 분과 지속적으로 여러 시도를 하다가 씨랩(C-LAB, 삼성전자 사내벤처 제도)에 도전했어요. 풀타임으로 일해도 괜찮은지, 잘 만들 수 있는지를 실험했고 최종적으로 함께했던 팀원들과 스핀오프를 하기로 결정했죠. 그것이 지금의 필로토 팀입니다.
-창업 이야기를 해보죠. ‘필로토(Piloto)’라는 회사명은 어떤 의미를 담고있나요.
‘필로토(Piloto)’는 스페인어로 ‘파일럿’이라는 뜻이예요. ‘아이들이 디지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날 때 능숙하게 착륙할 수 있는 조종사로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세상에 필요한 것을 만드는 데 있어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 왜 창업이었나요.
맞아요.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형태가 중요한 건 아니었어요. 세상에 필요하고, 제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만드는 게 우선순위였어요. 저에게 창업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것을 증명해서 보여주는 접근’에 가까워요. 삼성전자에서는 대기업 서비스, 제품에 제가 생각하는 기능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일했죠.
사실 저는 회사 생활이 너무 즐거웠던 사람이었어요. 팀원 분들 대부분이 교수님이거나 박사님이셔서 많이 배웠고 성장했다고 느끼거든요. 감사하게도 큰 프로젝트도 많이 맡겨 주셨고요. 그래서 퇴사하고 싶다거나 창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그런데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회사 서비스의 결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고민이 됐어요. 그때 회사에서 나가서 한번 시도해 보라고 독려해 줬어요. 씨랩이 그런 걸 증명해 보는 프로그램이잖아요. 그래서 선택했어요.
-팀원소개를 해준다면요. 두 명의 개발자와 두 명의 디자이너로 구성되어 있어요. 팀빌딩은 어떻게 했나요.
삼성전자에서 신입 때부터 같이 프로젝트를 했던 개발자 차한나님, 삼성에서 16년을 재직한 베테랑 개발자 조재홍님, 그리고 SBS 비디오머그에서 저의 사수였던 정순천님 이렇게 네 명이에요. 한 분 한 분 강점이 굉장히 뚜렷한 팀이고, 알아서 일을 잘해 주셔서 제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팀이에요. 아마 그게 저희 팀의 가장 큰 장점일 겁니다.
저희 CTO(조재홍)님은 2009년 출시된 아이스크림폰 때부터 스마트폰 개발에 참여한 개발자예요. 제가 그리는 비전에 공감해서 동참해 주셨어요. 두 아이의 아빠가 대기업의 좋은 복지를 뒤로하고 어려운 선택을 해준 거죠. CTO님은 쉬는 날이나 여유가 있을 때 본인 자녀들을 위한 교육 앱을 만들곤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교육과 아이들을 위한 솔루션에 큰 가능성이 있고, 제가 만들려고 하는 서비스가 본인에게도 꼭 필요하다고 동감해 주셨죠.
저희 디자인 팀장님(정순천)은 삼성에 오시기 전에 CJ ENM, SBS 등에서 팀장으로 근무하셨어요. 매니징을 해야 하는 경력인데, 지금 저희 팀에서 캐릭터 하나하나 모두 제작하고 계세요. 본인이 가진 재능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고 하세요.
-씨랩 프로그램은 독립해서 나가더라도 5년 안에 재입사할 기회가 있습니다. 씨랩 출신 창업자들이 자주 듣는 질문일 텐데, 만약에 지금 프로젝트를 실패하면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온실속의 화초이고,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결론부터 말해 돌아갈 계획은 없습니다. 팀원 모두 회사안에서 인사고과를 잘 받던 사람들이고, 중요한 일을 맡았던 인재들이에요. 단순히 스타트업 놀이를 한다고 생각했다면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저희 팀은 ‘다음 세대를 위한 기술과 서비스가 현재 방식으로 충분한가’라는 공통된 관점을 가지고 있어요. 아울러 지분 구조, 임금, 근무방식 등도 부끄럽지 않아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지켜가고 있어요.
-디자이너 출신 창업자들이 디테일에 강하다는 평가가 있어요. 하지만 그런 대표와 함께 일하는 직원은 괴롭다는 의견도 공존합니다. (웃음)
예전에는 저도 아이콘 하나, 버튼 하나 집착을 하는 편이었지만 개발자들과 협업하며 둥글둥글해진 것 같아요. 저희 팀 개발자들이 저보다 더 디테일에 집착이 강하고, 완벽하게 하려는 의지가 있어요. 그래서 결과물에 대한 믿음도 크고요. 저는 그것보다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제품이 빨리 론칭해서 사용자들에게 베네핏을 주는 것을 주로 생각해요. 본질이 아닌 것에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많은 스타트업이 디캠프 디데이 무대에 서는 걸 염두에 둬요. 125개 기업이 지원한 5월 행사에서 최종 6팀에 선정됐고, 우승까지 했습니다. 예상했나요?
전혀요. 저흰 다른 스타트업에 비해 극 초기 기업이잖아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디캠프의 위상도 몰랐고, 사실 디데이가 정확히 어떤 행사인지도 잘 모르고 지원했어요. 아주 솔직히 말씀드리면, 입주공간이 너무 절실하던 상황이었어요. (웃음) 같이 무대에 서는 기업들을 살펴보며 공작새와 병아리가 겨루는 싸움이라고 봤어요. 그저 우리 이야기를 편하게 하자라고만 다짐하고 무대에 섰죠. 사실 지금 이 인터뷰 자리도 부끄러워요. 아직 만든 게 없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기에 약간 주제 넘는 일 같게 느껴져요.
-회사 업무와 관련된 유아교육 전공이 부각됐지만, 대학교 때 전공은 디자인입니다. 대학원에서 유아 교육을 배웠어요.
삼성전자에서 어린이를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하며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제품을 쉽고 재밌게 많이 쓸까, 그 서비스가 아이들에게 궁극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인공지능 스피커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요. 아이들에게 반말을 해서 친근감을 주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존댓말을 사용하여 존중하는 느낌을 주는 게 좋을까요. 그것에 대해 다양한 의사결정이 있을 거에요. 기술과 아이들이 어떤 관계로 시작하게 될지, 기술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등을 고민 안하고 서비스를 설계하면 나중에 부끄럽고 후회될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는 주변에 자문을 구하러 다니고 테드(TED) 영상을 보기도 했죠. 그래도 풀리지 않아서 회사 근처에 있는 서울교대에서 청강을 해보자 싶어서 홈페이지 들어갔는데 교육대학원 입학전형 공지가 보였요. 교대 전공 대부분은 초등 정교사들만 수강할 수 있다는 표시가 있었는데, 유아 교육만 없는 거예요. 그래서 비전공자도 들을 수 있겠다 싶어서 지원을 했어요. 알고 봤더니 사립 유치원 교사들은 정교사 자격증이 없기에 표시가 없었던 것이더라고요. 입학 서류를 내러 갔는데 소속 기관에 삼성전자라고 적힌걸 보더니, 학교 관계자가 “직장 어린이 집 이세요?” 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웃음) “면접으로 시험을 보는 학교가 아니고 논술 시험과 문답고사를 보는 학교라서 떨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 임용고시를 보는 사람들이 합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문제를 낸다”라고도 설명해 주셨고요. 그저 접수를 했으니 시험은 보게 해달라고 했죠.
시험 준비 분량이 임용고시 분량처럼 어마어마했어요. 회사에서 IF 디자인 어워드 공모전 준비도 해야해서 주말에도 출근하던 때였고요. 회식자리에서 술이라도 마시게 되면 일부러 토하고 나서 공부를 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 조건 속에서 준비해서 시험을 봤는데, 다행스럽게도 입학 성적 우수로 붙었어요. 여담이자만 주변 시선은 이해하지 못 한다는 쪽이었어요. 학교에서는 “IT 디자이너가 왜 교육 대학원에 왔어요? 회사에서도 승진하는데 필요해서 왔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회사에서는 “교육대학원은 왜 간 거에요? 유치원으로 노후 준비해요?”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어린이가 올바른 스마트 기기 사용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어요. 그걸 대학원에서 발견했다고요.
대학원에서 만난 유치원 선생님들의 이의 제기가 발단이 됐어요. 제가 삼성전자에 일한다고 했더니 선생님들이 화를 내더라고요. (웃음) 건강검진을 했는데 거북 목과 손목 터널 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이 많은데, 핸드폰을 왜 그렇게 무겁게 만드냐는 거였어요. 어린이들이 스마트폰 기기를 엎드려서 보잖아요. 그 이유가 스마트 폰이 무거워서 그런 거거든요. 아울러 아이들이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말해 줬어요.
7세 미만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은 부모님들이 각 가정마다 정도의 차이가 생길 수 있어요. 다른 아이에게서 안 좋은 표현을 배울 때도 많다고 해요. 유치원에서 아이들의 머리를 때리면서 “뚝배기 깬다”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해요.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면 유튜브에서 본 경우가 많고요. 선생님들은 난감해요. 부모님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기에 단호하게 주의를 주기도 어려워요.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영상 콘텐츠라도 보여줘야 밥이라도 편하게 먹을 수 있고, 급한 일이라도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유치원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중재자가 있으면 좋겠다” 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지금 저희가 영유아를 타겟으로 한 서비스를 만드는 주요 배경이 됐어요. 그래서 저희 사업 아이템은 완벽히 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없어요. 현장 선생님들의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거든요.
-그런 아이데이션을 통해 MVP(최소요건 제품)까지 만들었을 텐데요. 가설 검증은 어떻게 했나요.
아이들에게 부적절한 콘텐츠는 부모님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혹은 안 좋은 것이라는 인지가 부족할 때 노출되곤 해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부모님은 아이들을 위한 필터링 기능을 바라요. 바른 자세로 적절하게 봤으면 좋겠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안내해 주면 좋겠고, 아이에게서 핸드폰을 뺏거나 바로 꺼버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끌 수 있게 습관을 들이는 기능들인 거죠. 이러한 니즈들을 수집하고 분류해 봤는데,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쓸 때는 잘 쓰고, 끌 때는 딱 껐으면 좋겠다”라고 정리가 됐어요. 수많은 니즈를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도 있잖아요. 우선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추리는 작업을 했고, 그것을 교육에 적합하게 만드는 과정으로 이어 갔어요.
스마트폰을 그만해야 하는 시간이 됐을 때 상황을 생각해 보자고요. 지금 스마트폰 관리 앱이나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어른 입장에서 만들어져 있어요. 그냥 화면을 꺼버리는 것은 간단하지만 교육적으론 위험한 방식이에요. 이때 필요한 것은 얼마나 쓸지 약속을 하고, 시간이 됐으니 멈춰야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예요. 저희 서비스는 그걸 AI 캐릭터로 안내해 줘요. 아이가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단계를 더했고 눈높이에 맞춘 UX적 장치들을 추가했죠. 아이의 눈높이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시키고, 무엇을 해야 되는지, 그리고 무엇을 기대 받고 있는지를 이해시킬 수 있어요. 1년간 이용자가 말하는 개선점 등 피드백을 수집하고 반영하며 MVP를 만들었어요.
저희 제품을 테스트한 회사 내 부모님들은 좋게만 평가해 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외부 가정을 섭외해서 써보게 했고 얼마나 개선이 되었는지 대학병원에서 임상실험을 했어요. 자기 조절력이 정말 발전했는지, 스마트폰 중독이 어느정도 완화가 됐는지 테스트를 통해 효과를 확인했어요.
-거기에 ‘물활론적 사고’와 같은 이론적 배경도 있을 텐데요.
현재 스마트 기기를 처음 사용하는 시점이 영유아까지 낮아진 시점이죠. 그래서 영유아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 물활론적 사고와 같은 인지 발달 특성을 차용해서 쉽게 이해하게 만들었어요. 영유아 시기에는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쉽지 않고, 발달이 빠르지 않으면 글을 더듬더듬 읽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용 상황을 소리로 들려줬어요. 아동 심리 상담 전문가를 찾아가서 우리가 생각한 표현이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인지, 단어 몇 개를 썼을 때 아이들이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지를 자문 받았어요. 또 문장을 짧게 분절하여 5세 수준 언어 발달 상황에서도 내용이 정확히 이해가 되는지를 살펴보며 스크립트를 하나씩 다듬었죠.
부모님이 스마트폰 기기를 허용한 시간이 30분이라면, 27분 정도에 AI 캐릭터가 “나 제시간에 보내줄 수 있어? 우리 약속 지켜줄 수 있어?”라고 말을 걸어요. 아이가 약속을 지킬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캐릭터가 “기다릴게” 라고 하면서 스스로 종료할 수 있도록 기다려줘요. 캐릭터가 꼬박꼬박 조는 걸 보여줘서 아이가 캐릭터를 보내줘야 될 것 같은 장치를 해 놓아요. 30분이 되면 캐릭터가 “이제는 진짜 안돼. 미안해” 하면서 화면을 끄죠. 아이가 스스로 잘 껐다면 칭찬해 줘요. “지난번에 약속을 잘 지켜줘서 내가 더 튼튼해졌어. 그래서 오늘은 더 많이 놀 수 있어” 라고 말하죠. 잘 안 지켰을 경우는 “오늘은 약속 잘 지켜 줄 거지?” 라고 말해줘요. ACT(수용전념치료) 상담 기법을 적용해 최대한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거예요.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은 단순 챗봇이 아니예요. 아이가 대답하는 것을 토대로 그 아이의 문장 구성력을 분석하도록 만들었어요. 아이 나이에 맞춰서 이야기하도록 한 거죠.
저희 제품을 보고 ‘타이머네? 캐릭터 타이머네?’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는 사용자들이 저희 제품을 보고 “그냥 단순한 앱이네?”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는 의미잖아요. 그 뒤에 무슨 기술이 있는지, 저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이용자에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냥 사용자들이 베네핏만 즐겁게 얻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곳에서 따라할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특허 출원은 어떻게 했나요.
저희 특허는 ‘어린이의 스마트 기기 사용 습관과 사용 형태를 교육하고 관리하는 인공지능 음성인식 어시스턴트’예요. 보통 기업이 출원할 때 핵심 기술 또는 일부를 보호하는 형태로 가는데, 저흰 콘셉트 전체를 보호해요. 인공지능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대화하고 케어하는 모든 경우의 수, 기술을 묶어서 냈기에 조금 더 포괄적이라 봅니다. 특허의 소유권이 사실상 삼성전자에 있고, 저희는 실시권을 양도받는 거라서 만약에 누군가가 따라 한다면 삼성 특허팀을 이겨야 할 거예요.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서비스가 나올지도 모르죠. 저희가 앱 안에 특정한 자연어 처리 모델을 넣었다 하더라도 스마트 기기 사용 습관을 관리하는 기술이 기존에 없었던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왜 그렇게 설계되었고, 어떤 장점이 있고, 또한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 데이터를 왜 수집해야 하고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지 등 ‘WHY’가 분명하지 않으면 어려울 거라 봐요. 감히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WHY가 명확해요. 후일 누군가가 카피캣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저흰 그다음을 하고 있을 거예요.
한편으로 카피캣이 많아지면 오히려 더 좋을 것 같기도 해요. 소비자들이 정말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테니까요.
-시장 규모는 어느정도로 추산하나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도 염두에 두고 서비스를 시작했는데요.
한국이 저출산 국가라서 시장이 작다고 여기시는 분들도 있는데, 국가 기관 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이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비율만 보면 경쟁력 있는 시장이예요. 포브스에서 조사한 것에 따르면 작년 기준(2021) 1조원 규모의 시장이었고, 연 11% 정도 성장하고 있어요. 한국은 문맹률이 굉장히 낮고 어린이들이 글자를 빨리 읽고 쓰는 편이예요. 특히 대화로 중재하고 어린이 맞춤형 UI를 제공하는 저희와 같은 서비스 수요가 높아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 해 두고 시작했어요. 한글 버전과 영어 버전과 둘다 만들고 있는데, 동시에 론칭할 계획이예요. 앱 서비스이다 보니 앱마켓에 올리면 되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매체에서 타겟팅 광고를 한다면 해외에도 저희의 소식이 닿을 겁니다. 저희가 CES에 참가해보니 해외쪽 수요가 많다는 것을 체감했어요. 향후 영어 외 언어를 많이 추가해서 반응을 살펴 볼 생각입니다.
-단순히 스마트 기기 사용 습관 관리로 멈추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어떤 영역으로 확장을 고려하고 있나요.
화면과 어린이 얼굴 거리를 분석해서 조금 멀리서 보게 유도하거나, 경향성을 분석해서 전 달에 비해서 이번 달에 너무 가까이서 본다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6개월 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안과 검진, 시력 검사 안내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동안에 로그데이터가 쌓이잖아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 지를 알 수 있죠. 부모님의 동의를 받으면 그것을 분석해서 상업적이지 않는 범위에서 추천을 하는 것이 가능해요. 아이가 ‘타요’를 좋아한다면 캐릭터에 대한 상세 정보를 제공해서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소재를 드릴 수 있겠죠. 아이가 공룡을 좋아한다면 공룡전시회 정보를 알려드릴 수 있고요. 그런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어찌보면 저희가 궁극적으로 진행하고 싶은 방향입니다.
-향후 청소년까지 사용 대상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알고 있어요. 청소년층은 물활론적 사고가 통하지 않는 세대인데요. (웃음)
진로나 관심사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부모님 뿐만 아니라 아이 본인한테도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진로나 공부에 대한 고민이 많잖아요. 자신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알려주는 거죠. 그런 맥락에 따라 전공 분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을 거예요. 관심 정보에 대한 책들을 추천해 줄 수 있고, 아이의 관심사와 관련된 학과에 대한 정보, 관련 석학의 강연 정보 등을 알려 줄 수 있을 거예요. 아이들이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면서 만들어가는 궤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려주고 싶어요. 그것이 디지털 세상에서 저희가 그리는 데이터 분석의 미래입니다.
-사업이니까 당연히 수익모델이 있을 겁니다. 어떻게 돈을 벌건가요.
삼성전자에서 테스트를 할 때는 “삼성 ‘키즈 모드’를 바꾸고 싶다”라는 목적에서 시작했어요. 스핀오프해서 사업화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서 수익 모델에 대해서는 초기 단계예요.
세간에 스마트 기기에 대한 단순 통제 기능을 제공하는 무료 서비스가 많아요. 저희도 무료 정책이지만, 아이들이 자기 조절력을 기르고, 주체적으로 스마트 기기 사용을 잘 주도할 수 있도록 해주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교육하는 기능들이 들어가 있어요. 아무래도 알려지기만 한다면 소비자들이 저희 제품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어느정도 이용자가 모이면 앱 안에서 캐릭터 스킨을 바꾸거나, 유해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기능들을 인앱으로 제공할 수 있을 거예요.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앱에서는 일체의 수익을 발생시키지 않을 계획이예요. 대신 부모님용 앱에서 수익모델을 생각하고 있어요. 5세 아이를 기르는 부모님이라고 한다면 거기에 맞는 맞춤형 정보를 드린다 거나 맞춤형 광고와 같은 것을 제공하는 쪽으로 일단은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은 구체적인지 않은 초기 단계의 플랜입니다.
-향후 장단기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회사에 사표를 낸 지 일주일 만에 디데이 우승과 같은 좋은 일이 있었지만, 부담이기도 해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어요. 일단 단기적으로는 제품을 잘 만드는 데만 집중하려고 해요. 사용자들이 기대하는 것들을 빨리 만들어서 “이게 맞죠?”라고 보여드리는 것이 단기 목표예요.
교육은 ‘100년지대계’라고 하는데, 100년 뒤 교육이 지금과 같을까요. 100년 뒤 세상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고, 그 변화된 모습에 맞는 교육과 육아를 상상하면서 서비스를 만들려고 해요. 아이들이 디지털 세상에 안전하게 착륙하게 돕는 파일럿이 되고 싶어요. 그런 관점에서 서비스를 만들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