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가 말하는, ‘팀을 봅니다’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작년 한 해 관객 수 기준 top 10 국내 영화를 한 번 살펴보자.
- 7번 방의 선물 (1,200만 명)
- 설국열차 (900만 명)
- 관상 (900만 명)
- 베를린 (700만 명)
- 은밀하게 위대하게 (600만 명)
1년 전 시점으로 돌아가서 ‘올해 흥행할 영화는 무엇일까?’를 고민한다면?
좋은 방법은 신뢰하는 영화 전문가를 찾아가 의견을 듣는 것이다. 위 질문을 영화 전문가에 던진다면, 그분은 내공을 바탕으로 성실히 답할 가능성이 높다. 많은 유명/신진 감독, 배우 등이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인지, 어떠한 좋은 시나리오가 있는지 내부 정보를 알고 있을 거고, 이 축적된 정보를 기반으로 의견을 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분의 코멘트를 신뢰할 가능성 역시 높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이다.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분야별 전문가, 특히 특정 스타트업의 핵심 멤버를 충분히 잘 아시는 분이 그 스타트업을 적극 추천하신다면, 최소한 반 이상은 그 스타트업의 매력에 설득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외부의 추천/의견 없이 VC가 직접 한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이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다시 영화 비유를 들어보자. 감독/캐스팅 등이 정해지기 전 시나리오만을 보고 흥행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김수현이 정해지기 전의 ‘은위’ 웹툰만을 보고, 하정우를 고려하지 않고, ‘더 테러 라이브’ 시나리오만을 보고, 흥행 가능성을 판단해야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된다. 물론 둘 다 스토리가 재미나지만, 스토리만으로 ‘이 영화가 대박 나겠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게임 기획서나 프로토타입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렵다. 주변의 수많은 게임 스타트업, 출시된 게임들을 동시에 보고 있으니, ‘이런 류의 게임은 조금 쉽지 않겠다.’ 정도의 감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기획서만 보고 ‘와 투자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기는 어렵다. 또한, Project financing이 아니기 때문에, 한 게임에만 초점을 맞춰서 투자 결정이 내려지긴 어렵다.
결국 ‘팀’ 이 걸어온 모습을 보게 된다. 영화로 치자면, 이 감독이 과거에 어떤 영화를 만들었고, 흥행은 어땠고, 혹 흥행은 안 되었더라도 관객들과 비평가들의 평은 어땠는지, 이런 것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VC가 “우리는 팀을 보고 투자합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첫 번째. 360도에서 바라본다.
팀을 잘 이해하려면, 팀 핵심 멤버를 잘 아는 지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물어본다’ 의 수준은 “누구 혹시 알아요? 어때요?” 정도의 짧은 대화가 아니다.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을 들으며 그분의 과거 행적, 포인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함이다. 구체적 에피소드 중심의 대화를 나누게 되면 그분에 대한 스토리만 1시간 이상 듣게 되기도 한다.
그럼 지인들을 어떻게 찾는가? VC라는 업의 특성상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기 때문에, 또 케이큐브 팀의 인맥이 모두 합쳐지면 상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연락이 가능하다. 그리고 뵙고 싶다고 연락 드리면 VC는 뭐 하는 사람들이지? 하는 호기심에라도 미팅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한 분의 의견만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수 명, 수십 명의 의견을 들으며 다면적 관점을 보기 위해서 많은 공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과거 몸담았던 조직의 직속상관, 다른 직무 영역 동료, 사업팀 담당자, 옆 조직의 동료, 심지어 경영진까지. 그리고 거쳐 간 조직별로 훑으면 정말 많은 분을 만나게 된다.
실제로 한 게임 스타트업의 투자 검토 과정에서 만났던 분을 모두 꼽아보니 15명 정도가 되었고, 이런 심도 있는 검토 과정을 거치다 보니 나 또한 그 조직의 일부가 된 듯 많은 에피소드들을 알게 되었었다. 그 과정에서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코멘트가 있었다.
“이제 우리 회사 3년 이상 다닌 직책자 수준은 되신 것 같네요~”
두 번째. 작은 것이라도 ‘되는 가능성’을 찾으려 한다.
스타트업을 만나면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그 중 안 될 가능성을 꼽기 시작한다면 과연 투자를 진행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걸음마를 시작한 스타트업이 뒤뚱뒤뚱 불안하게 걷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99% 불완전함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의 잠재력을 지닌 1%의 잘 될 가능성, 핵심 요인을 찾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보자.
얼마 전 투자한 게임 스타트업(체리벅스)의 PD 분이 정말 어떤 분인지 확인하는 과정에 있었다. (게임 제작에 있어 PD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PD로서의 기본 역량에 대해서는 충분히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고 그 외에 공통으로 듣게 되는 피드백이 하나 있었다.
“장현진PD가 쫀득한 액션감. 타격감을 살리는 데는 진짜 짱이야!!”
이미 이러한 강점(Edge)이 잘 반영되어 그분이 참여하신 게임이 좋은 성과를 냈기에, 끄덕끄덕 수긍이 갔다. 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이유를 파보고 싶었다. ‘체리벅스’라는 회사가 선보이는 게임이 잘될 수 있는 핵심 이유 중 하나라는 신호가 왔던 것이다. 그리고 과거 경험과 이력, 역량들에 대해서 곰곰이 다시 되짚었다. 여기서 한 가지 내용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분이 PD를 하시기 전에는 게임 애니메이터였고, 그것도 사내 top 수준을 넘어서 세계적인 CG 대회에서도 수상할 정도의 능력자 셨던 점을.
CG에 대한 얕은 소견으로 봤을 때, 애니메이션에 개성과 생동감을 부여하는 것은 키를 잡는 것이다. ‘키를 잡는다.’ 함은, 모델링이 끝난 오브젝트가 어떤 프레임에서 어느 위치에 어떤 자세를 하고 있는지를 세세하게 조정해주는 작업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아래 닌자 캐릭터를 멋지게 모델링하고, 텍스쳐도 입히는 것이 준비 완료 단계라면, 진짜 닌자 느낌이 나게 사뿐사뿐 걷고 빠르게 검을 휘두르는 등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은 키를 잡는 작업이다.
액션게임에서 주인공 캐릭터가 주먹을 뻗어서 누군가를 때리는 동작을 생각해보자. 이것을 단순히 주먹 뻗기 전의 자세와 타격했을 때의 자세로만 키를 잡는다면, 그냥 등속도로 팔을 뻗으면서 마지막에 적의 몸통 어딘가에 살짝 닿으면서 끝나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밋밋한 액션인가. 그런데 이 타격감을 살리기 위해서 팔을 뻗으며 주먹이 이동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또 단순 타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격 시점 후 주먹이 움직이던 가속도 때문에 으드득 으스러지는 느낌이 들게 접촉해 있는 시간을 또 키로 잡아준다면, 아마도 훨씬 쫀득한 액션감이 살아나지 않을까? 즉, 핵심멤버의 차별화된 역량을 파보는 과정에서 게임이 잘될 가능성이 좀 더 높겠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즉, VC는 어떻게든 잘 될 가능성을 찾기 위해 다각도의 파보는 작업을 거치게 된다.
덤으로 이 부분을 파보는 과정에서 또 다른 플러스 요인도 발견할 수 있었다. 게임 개발은 100% 고도의 팀 작업인 만큼, 팀원 간의 높은 싱크율, 기획자의 의도를 기반으로 한 빠른 협력,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장현진 PD의 경우 애니메이션 제작역량이 탁월, 기획의도 및 게임 방향성을 뚝딱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단순 문서가 아니라) 이 영상을 기반으로 팀 커뮤니케이션을 이끌고 있었다. 이를 통해, 팀의 작업이 한결 빨라지고 서로의 높은 이해도로 리소스 낭비, 잘못된 방향 때문에 생기는 시간 낭비가 원천 봉쇄되고 있었다.
정리해보자. 특정 게임, 특정 서비스가 ‘잘될 가능성이 높다!’라는 확신을 가지기 위해선 실제 단순 기획요소가 아니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요인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 중 안될 이유를 찾으면 99개가 나올 것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VC는 어떻게든 1~2개의 잘될 이유를 찾아 나선다. 특히 초기의 경우, 이 1~2개 이유는 팀원들의 역량과 경험 – 미묘한 Edge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왜냐면 스타트업 초기에는 멤버들의 개개인의 역량과 팀워크가 사실 전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끝까지 갈 수 있는 팀워크의 끈끈함을 찾습니다.
어떤 스타트업을 만나서든 팀워크가 어떤지 물어본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부터 만났고 얼마나 친하고 등등을 말씀하시면서 최고로 좋다고들 보통 대답한다. 하지만 초기의 으쌰으쌰, 끈끈함이 팀워크의 전부를 보여주진 않다고 본다. 팀워크는 시간이 일정 부분 흐르고 오르락 내리락 롤러코스터를 몇 번 같이 타본 후에도 여전히 끈끈한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그런데 아쉽게도 투자를 검토하는 초초기 단계에서 이를 판단하기 위해 한참을 기다릴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툭툭 던져보는 뼈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 분위기를 유심히 보게 된다. 예를 들면, “모두 다 의견이 갈리면 최종 결정은 누가 하세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정답이 있는 질문은 아니다. 혹, 팀워크 관련 에피소드를 열심히 들으며 특정 스타트업의 팀워크가 실제 어떨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예시를 들어보자.
예전 한 스타트업을 투자할 때, 워낙 유쾌한 성격으로 좋은 분위기를 만들면서도, 업무에 있어선 굉장히 진지하고, 팀을 공격적으로 리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대표님이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겸손’하신 모습이 와닿았다.
이러한 대표님을 중심으로 팀이 끈끈하게 뭉치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였었다. 물론 ‘팀워크가 좋은 편이구나’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러한 모습만을 보고 ‘팀워크가 너무나도 인상적이다.’라고 까지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와우’하게 한 순간은 다음과 같았다.
‘선데이토즈’가 아니라 ‘웬즈데이토즈’라고 가끔 대표님이 농담을 했었는데, 창업 멤버 10분이 매주 수요일 저녁에 토즈에 모여서 3시간 가량의 빡센 회의를 몇 달간 진행했기 때문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하실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다음. 사실 그 10분 중에는 아직 회사에 합류 전인 – 현직에 계신 분이 절반 이상이었다는 사실. 자신의 업무를 모두 마치고서야 퇴근하고 참석할 수 있는 분들이 다섯 분이었다. 또한, 모이는 공간 – 토즈 또한 물리적으로 꽤 먼 거리에 있었다. 그런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10명의 멤버가 몇 달 동안 출석률 100%를 유지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는 건, 분명 팀워크가 있음을 보여 준다. 서로 간의 믿음,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 등 견고한 팀워크가 바탕이 되지 않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즉, 우리 팀에 대해 왜 팀워크가 있는지에 대해 꾸며낸 형식적 대답이 아닌, 실제 팀워크가 좋으면 정말 다양한 사례, 에피소드가 자연스럽고 풍부하게 나오게 된다. 이러한 견고한 팀워크에, ‘이 팀은 정말 해낼 수 있겠다.’라는 나름의 확신을 가지게 되고 투자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무엇을 보고 투자하냐는 질문에 항상 “팀을 봅니다!” 라는 말씀을 드리면서도, 상세하게 풀어 설명드릴 기회가 없었다. 이 기회를 빌어 자세히 사례 기반으로 설명했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한다. 앞으로는 VC의 업무•노력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한다.
이제 조금 이해가 되셨죠? VC는 ‘진정 팀을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