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의 Daily up] 9.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 혹은 해피엔딩
얼마전 아주 친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는 내용이다. 거의 10년 동안 같은 건물에서 살았고, 여름휴가 때마다 함께 가족 여행을 하는 사이이다보니 왕복 8시간 거리의 지방이라 해도 안 갈 수 없었다.
상가에는 인근 지인과 함께 가게 되었는데, 그가 차 안에서 들려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어 글로 옮겨본다.
지인의 지인(이하 A대표)은 한 때 큰 여행사를 운영했다고 한다. 일본 여행사와 제휴하여 일본 관광객들을 국내 호텔, 식당, 여행지등에 소개하는 일을 했고, 아주 사업이 잘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휴한 일본 여행사가 부도가 나서 같이 부도가 났다고 한다. 보통 여행사의 관행이 한달 뒤 결제하는 방식인데, 다음달에 들어오기로 한 돈이 안 들어왔으니 한 달 단체 관광객들의 호텔비, 식비, 각종 비용들을 국내 여행사가 책임져야 하는데, 그것이 힘들다 보니 부도난 것이었다.
A대표는 한 번의 실패에 굴복하지 않고 재기를 노리고 있단다. 다만 한 번 부도가 나면 단기간에 재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기존 거래처에 적지 않은 피해를 주었을 것이기에, 현금 선입이 아니면 신규 거래가 힘들었을 테고. 그래서 당장은 따로 여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던 차에 A대표의 아버님이 상을 당했다. 사업이 잘 될 때야 여러 거래처들에게 부고장을 돌렸겠지만, 부도난 상황에서는 그것이 애매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업계에서는 나름 유명한 사람이었기에 여러 지인의 입을통해 부고소식이 전해졌고 알만한 사람은 다들 참석했다고 한다.
어느 상가던지, 직접 참석하는 사람도 있고, 참석이 어려울 때는 부조금만 보내는 경우도 있고,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못들은 척 하는 경우도 있다.
이날 상가에 모인 업계 사람들의 술 안주거리로 부고소식을 ‘못들은 척’하는 B식당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평소(부도나기 전) 같으면 당연히 참석했거나 화환이라도 보냈어야 하는 곳이 모른 척 한 것인데, 상가집에 참석한 사람들, 특히 여행사 사람들 입장에서는 B식당이 괘씸해보였다고 한다. 게다가 상주가 잘 나가던 시절에 꽤 많은 소득을 올려준 식당이기도 했기에 공분은 컸단다. 아무리 상주가 부도난 상황이지만, 아버님이 돌아가신 상황인데 모른 척 했기에 그런 식당과는 거래하지 말자는 말이 (상가집에 참석한 여행사 사람들끼리) 돌았다는 것이다.
단체 여행객을 타겟으로 한 식당은, 최소 몇 백석 규모의 큰 식당인데, 어느 날부터 그 식당에 여행사들이 식당 예약을 하지 않다보니, 식당이 텅텅 비게 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여행업계에서는 여행사가 식당에게 갑의 위치를 가진다. 특정 호텔이나 식당으로 예약을 잡느냐, 안 잡느냐에 따라 호텔이나 식당의 매출은 크게 달라질 것이기에 보통 식당이나 기념품점에서는 매출액의 몇 퍼센트를 여행사(가이드)에 주는 구조가 공공연하게 있다.
A대표 부친상을 모른척 한 B식당이 나쁘다거나, 암묵적 합의(어떻게 보면 야합)를 한 여행사 사람들이 정의롭다거나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아니고.
결론은 못 내겠다. 상황에 따라서는 우리 모두가 그 여행사일 수도 있고, 그 식당일 수도 있기에. 다만 인간관계나 사업이나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도 중요하다는 것만 기억하며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