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의 Daily up] 14. 축구공 만 개를 구해주세요
엊그제 금요일 오후에 전화를 받았다.
“축구공 만 개를 구해주세요.”
모 대기업이 월드컵 마케팅을 하려는데, A 브랜드나 B 브랜드 정도면 가능하다. 예산이 얼마이며, 단도 인쇄가 필요하다는 정보였다. 아~ 이거 쉽지는 않겠지만, 특정 브랜드를 취급할만한 업체 몇 곳에 전화해서 찾을수만 있다면, 생각보다 쉽게 돈을 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드컵이 개막했으니, 월드컵 관련 제품들을 찾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월드컵 관련 마케팅을 하려는 업체의 부탁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월드컵 관련 마케팅을 하려는 업체가 많아질 수록 인기있는 일부 제품들은 품귀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에 그런 체품을 찾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반대로 찾을수만 있으면 납품할 수도 있다.
마침, 거래하는 업체가 그 정도 수량을 찾을 수 있는 업체라서 전화로 자세한 설명을 드렸더니 두 시간 정도 지나서 찾았다고 한다. 다만, 특정 브랜드인 건 맞는데, 여러 가지 모델을 섞어야 가능하다고 해서, 그렇게라도 제안서를 만들어주면, 전달해주겠다고 했다. 그 업체가 정식 제안서를 만드는 동안, 우선 제품을 찾아달라는 업체에 연락해서 우선 특정 브랜드 제품을 찾았으니, 그 대기업에 1차 통보해라고 했고, 정식 제안서를 받으면 다시 전달하겠다고 했다.
정식 제안서를 받아서, 다시 전달한 후 삼십분쯤 지나서 다시 연락이 온다. 우리가 찾은 B 브랜드는 안 된다고 한다. 아니? 처음에 A 브랜드나 B 브랜드는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특정한 선수의 사인볼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 선수는 A 브랜드에서 협찬을 받으니 다른 브랜드 제품은 곤란하며, A 브랜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했으면, 시간 낭비도 덜 했을 것인데, 이제와서 그런 이야를 하니 무척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A 브랜드 제품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니, 물건을 찾아준 업체에 전화하여 상황 설명과 함께 다시 한번 부탁드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시간이 금요일 저녁 7시가 넘었다는 것이다. 해당 업체가 일찍 퇴근했다면 재고를 알 수 없는 것이고, 그 경우 월요일 오전이 되어야 가능 여부를 알 수 있다. 당연히 그 업체에서는 월요일 오전에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하는데, 막상 특정 업체에서는 재고가 있으면 하루 빨리 인쇄해야 한다고 하니 힘들더라도 가능하면 재고 여부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 업체로부터 전화가 왔다. 간신히 A 브랜드 업체 담당자와 통화를 했든데, 그런 전화가 많이 왔었고, 재고가 없다는 것. 크게 한 방 맞은 느낌이다. 이미 특정 대기업은 A 브랜드 본사에 전화해서 국내에 재고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물건을 찾아달라고 했다는 말인가?
4년에 한번씩 월드컵이 열리고, 미리 준비할 시간도 충분했을 것인데, 이제 와서 국내에 재고가 없다는 것까지 파악했으면서 특정 기업의 마케팅 부서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었나? 아니면 재고가 없다는 것을 확인삼아 찔러본 걸까? 그 대기업이 자신들의 진행상황을 사전에 공유해 줬더라면 어땠을까?
그 제품을 찾으면 몇 억의 매출이 발생한다는 기대는 일장춘몽이 되었지만, 특정 정보를 받으면 좀더 구체적인 확인을 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뼈 속 깊이 깨닫게 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