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T칼럼] 미국 등록상표 ‘ROBOT’의 가치는?
ROBOT 이라는 미국 상표를 독점할 수 있는가?
흥미로운 미국 등록상표가 하나 있다. 2017년 5월에 미국 특허청에 출원되어 2018년 5월경에 등록된 ‘ROBOT’ 이라는 상표인데, 도안 하나 없이 우리가 흔히 문자상표라고 부르는 알파벳 5글자로 표장이 구성되어 있다. 상표는 도메인과 유사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편적이면서 짧고 단일한 단어로 되어 있는 상표는 등록 받기 어렵다. 닷컴 도메인도 한 단어로 된 것은 이미 선점되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단, 상표와 도메인은 지정상품 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상표는 지정상품에 따라 표장의 의미와 이질적일수록 식별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제 아무리 ‘ROBOT’ 이라고 하더라도 로봇이 적용되기 어렵거나 로봇과 의미상의 거리가 먼 분야를 지정할 경우에는 상표등록이 가능할 수도 있다. 마치 ‘APPLE’ 이라는 단어가 전자제품에 적용되고, ‘AMAZON’ 이라는 단어가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IT 인프라 등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상표로서의 강력한 식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ROBOT’도 로봇을 떠올리기 어려운 분야의 지정상품을 지정한다면 등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 ‘ROBOT’ 상표는 지정상품 분류 30류의 다양한 식품, 주로 분식류 관련 상품을 지정하고 있다. 상표권리자의 사업영역을 고려하면 일응 수긍이 간다. 문제(?)는 43류인데 Restaurant services; self-service restaurant services; canteen services; cafe services; cafeteria services; food and drink catering; snack-bar services; carry-out restaurants 등과 같이, B2B와 B2C를 포괄하면서 거의 F&B 서비스 전 영역에서 지정서비스업 등록을 받았다. 로봇으로 요식업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부분의 비즈니스 형태를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표출원을 하게 되면, 등록여부를 심사관이 판단하게 되는데 이러한 심사관이 등록여부를 판단하는 시점에 표장이 지정상품 또는 지정서비스업 분야에서 식별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이를 고려할 때, ‘ROBOT’ 이라는 표장이 F&B 분야의 지정서비스업에 식별력이 있는지 여부를 미국 심사관이 판단한 시점은 2018년 1분기 시점으로 추정된다. 2018년 초라고 한다면, 2015년 영국의 몰리로보틱스가 주방용 자동 조리 로봇인 ‘몰리’의 프로토타입을 공개하고 한창 양산형 제품(참고로, 2021년에야 양산형 모델이 출시되었다)에 대한 R&D를 하고 있던 시점이고, 최초의 서빙로봇인 베어로보틱스의 ‘페니’ 라는 제품이 막 출시된 시점이다. 즉, 아직은 로보틱스 기술이 F&B 분야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푸드테크 분야의 청사진의 초기 버전이 그려지기 전 시점에서 ‘ROBOT’이 F&B 분야의 지정서비스업에 식별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사후적으로 판단해본다면, 꽤 아슬아슬한 시점이었던 것 같다. 물론 상표출원인은 상표 등록시점에 ‘ROBOT’ 이라는 브랜드로 분식점, 카페테리아 등 F&B 비즈니스를 수행하고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미국 현지에서도 비즈니스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 특허청이 요구하는 사용증거(SOU)를 제출할 수 있었다. 미국 특허청의 심사관 입장에서도 거절할만한 명분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등록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초에 등록결정을 내린 그 심사관은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 COVID-19로 인해 전세계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F&B 분야를 중심으로 일상 영역에 로봇이 급속도로 활용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 누군가가 F&B 분야에서 ‘ROBOT’ 이라는 브랜드를 독점하겠다고 상표를 출원한다면 식별력 문제로 인해서 등록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F&B 분야의 ‘ROBOT’이라는 순수한 문자 형태의 등록상표는 막차를 탄 상표라고 할 수 있다.
F&B 분야의 ROBOT 브랜드의 가치는?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이지만, 상표의 가치는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다. 대체적으로 상표의 인지도나 상표의 해당 시장규모, 상징성, 매출 기여도 등 여러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매년 자주 기사에 인용되는 포브스(Forbes)나 브랜드 파이낸스(Brand Finance), 인터브랜드(Interbrand) 등 여러 곳에서 발행하는 브랜드 가치 순위를 종합해보면, Apple의 브랜드 가치는 대략 5,000억 달러 선이다. 최상위 브랜드의 가치는 평가하는 기관별로 편차가 크진 않지만, 하위 브랜드로 갈수록 편차가 커진다. 가치의 절대적인 객관성은 담보하기 어렵지만, 애플이 만약 Apple 이라는 브랜드를 다른 업체에게 양도한다면, 양도받은 업체가 보유한 Apple 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애플이라는 글로벌 기업보다 더 가치있는 제품을 만들거나 판매하는 곳이라면 브랜드 가치가 더 올라갈 수도 있겠고, 애플만큼의 혁신성을 통해 시장을 개척하는 기업이 아니라면 브랜드 가치를 급전직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생각해볼 수 있다. 결국, 브랜드의 가치는 브랜드 자체의 절대적인 가치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자체에 누적된 무형의 가치에 더해서 브랜드 소유 기업의 기업가치나 비즈니스 규모 등이 함께 고려될 수 밖에 없다.
브랜드 홀더에 따라 상표와 브랜드 가치가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다. 2021년 10월경에 페이스북에서 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면서 메타 관련된 브랜드를 인수한 사례가 있는데, 당시 인수가액은 메타 파이낸셜 그룹(Meta Financial Group) 이라는 곳으로부터 6,000만달러 규모였다. 거래기록이 있으니, 일단 2021년 10월 기준으로 META 라는 브랜드의 가치는 6,000만 달러로 인정할 수 있다. META 라는 브랜드가 인수된 시점 이후부터 구 페이스북의 사업실적과 결부되어 브랜드의 가치가 재조정되어, 2024년 기준으로 ‘META’의 브랜드 가치는 유튜브 브랜드 가치의 2배가 넘는 750억 달러로 추산된다. 즉, 메타 파이낸셜 그룹이 ‘META’ 라는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을 당시와 단순 비교해서, 3년 만에 ‘META’의 브랜드 가치가 1,000 배 이상 상승했다.
이를 비춰 볼 때, 현재 국내의 한 요식업 프랜차이즈 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F&B 분야의 ‘ROBOT’ 이라는 상표의 현재가치는 마치 ‘META’ 라는 브랜드를 메타 파이낸셜 그룹이 보유하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로봇 기술의 보편화는 F&B 산업을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으며, 효율성, 정확성, 안전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음식 준비, 포장, 배달과 같은 작업을 넘어 일정한 품질로 반복적인 작업인 썰기, 자르기, 섞기를 처리할 수 있으며,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복잡한 요리를 만들고 고객의 취향에 맞춰 레시피를 개인화할 수 있다. 전세계적인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팬데믹 이후 시대에 필수적인 높은 위생 기준을 보장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 로봇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앞으로의 ‘ROBOT’ 브랜드의 가치는 훨씬 더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술한대로 앞으로는 로봇과 같은 보편적인 단어를 누군가가 상표권으로 독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몇 년 사이에 F&B 분야의 로봇 도입이 너무나도 빨리 이루어졌고, 식당업, 카페테리아, 패스트푸드 등에서 로봇을 사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이제 낯익은 풍경이 된지 오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이미 시장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로봇 관련 기술을 떠올릴 수 있는 특정 단어를 기업이 개인 브랜드화 할 수 있는 시점은 지나갔다. 미국 특허청에 요식업 분야에 있어서 ‘ROBOT’ 이라는 다섯 글자의 표장이 개인기업에게 독점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기막힌 타이밍에 천재지변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이뤄낸 다소 기형적인 상표 독점 사례로 볼 수 있겠다.
‘ROBOT’ 상표의 새로운 주인은 누구가 될 것인가?
최근 2024년 6월 하이투자증권에서 발행한 2024년 하반기 로보틱스 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1분기에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로보틱스 업종의 추세적인 상승세가 다시 관찰되기 위해서는 협동로봇 수요 회복이 확인되어야 한다고 진단하고 있으며, F&B 분야가 협동로봇의 활용도가 가장 높은 분야임을 주목하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북미는 글로벌 협동로봇 수요의 약 25.2%, 독일을 포함한 주요 유럽 국가들이 28.2%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노동자 평균 임금이 높거나, 인력난을 겪고 있는 북미 및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협동 로봇 수요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됨으로 주목하고 있다.
얼마 전에 F&B 분야의 미국 등록상표 ‘ROBOT’이 매각주관사를 통해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BLT 칼럼을 빌어 ‘ROBOT’ 이라는 상표의 가치에 대해 고민해보는 내용을 다루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시의적절한 시점에 미국 등록상표 ‘ROBOT’이 매물로 등장했다고 본다. 인공지능의 엄청난 발전 속도에 따라 로봇 관련 기술도 고도화되면서 활용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고, 인력난 또는 ESG 관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명분을 기반으로 로봇 분야의 성장 잠재력은 더욱 높게 평가되고 있다. 로봇 이라는 키워드는 가상 공간에 한정되는 메타버스 분야를 상징하는 ‘META’ 라는 브랜드보다 더 큰 성장을 이룰 것으로 개인적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거대한 잠재가치를 보유한 ‘ROBOT’ 이라는 브랜드를 품을 새로운 주인이 누가될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원문 : 미국 등록상표 ‘ROBOT’의 가치는? – 산업용 로봇을 넘어 로봇 시장의 초고속 성장을 견인하는 F&B 분야의 로봇 브랜딩
필자소개 : 유철현 BLT 변리사 : 유 변리사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직접 투자하는 ‘엑셀러레이터형’ BLT 특허법률사무소를 시작으로, IT와 BM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다양한 기술 기반 기업의 지식재산 및 사업 전략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심의위원과 한국엔젤투자협회 팁스(TIPs)프로그램 사업 심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