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억 회. BTS의 음악이 올해 스포티파이에서 재생된 횟수다. 이 거대한 숫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진다. 각각의 재생 버튼 뒤에 어떤 순간들이 있었을까. 누군가는 새벽 버스에서 졸며 출근길을 달래고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첫 월급을 받은 기쁨을 노래로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이별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같은 곡을 수십 번 반복해서 들었을지도 모른다.
스포티파이가 발표한 2024년 연말결산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우리 시대의 음악 소비가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실감하게 된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올해 262억 회나 재생되었다. 2년 연속 세계 1위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귓가에 닿았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CD나 카세트테이프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숫자다.
올해 한국 시장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음악가는 지민이었다. 그의 솔로곡 ‘Who’는 소위 ‘빌리언 클럽’에 가입했다고 한다. 10억 회 이상 재생된 노래들의 모임이라는데, 숫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그 안에 있다. 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솔로 아티스트로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기까지의 여정, K팝이라는 장르가 세계 음악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기술의 발전까지.
임영웅이 2위에 올랐다는 것도 흥미롭다. 트로트 가수가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이런 성과를 거두리라고, 몇 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클래식, 재즈, 힙합, 트로트… 이제는 그저 ‘좋은 음악’과 ‘나의 음악’만이 있을 뿐이다.
스포티파이는 올해 ‘나의 음악 무드 변천사’라는 기능을 새로 선보였다. 1년간의 청취 기록을 세 단계로 나누어 보여준다고 한다. 마치 소설처럼 말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사운드트랙으로 2024년을 써내려갔다. 봄날의 설렘은 팝송으로, 여름밤의 고독은 재즈로, 가을의 그리움은 발라드로 채워넣으며.
‘슈카월드’가 팟캐스트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도 눈에 띈다. 이제 우리의 귀는 음악만 듣지 않는다.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듣고, 때로는 고요함마저 듣는다. 출퇴근길의 음악, 집안일할 때의 팟캐스트, 잠들기 전의 ASMR까지. 우리의 일상은 소리로 가득하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협업곡 ‘APT.’가 K팝 차트 6위에 올랐다. 서울과 라스베가스가 만나 하나의 음악이 되었다. 이제는 이런 게 특별할 것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음악은 언제나 국경을 넘나들었지만, 지금처럼 자유롭게 넘나든 적은 없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음악을 소유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마다 스트리밍한다. 저장도 하지 않는다. 언제든 들을 수 있으니까. 이것이 음악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었을까? CD를 소중히 모으던 시절과 지금, 우리는 음악을 더 사랑하게 된 걸까, 덜 사랑하게 된 걸까. 답은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음악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39억, 262억. 차가운 숫자들이 춤춘다. 하지만 그 춤추는 숫자들 사이로 우리의 뜨거운 순간들이 보인다. 누군가의 첫사랑, 누군가의 이별, 누군가의 승진, 누군가의 좌절. 모든 순간에는 음악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하나의 숫자가 되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그 순간은 다시 하나의 숫자가 되어 내년의 통계에 포함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숫자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차가운 숫자들이 우리의 가장 뜨거운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다. 2024년, 우리는 그렇게 음악과 함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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