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지도를 펼쳐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리스본에서 헬싱키까지, 세계 곳곳에서 스타트업들이 모여드는 축제가 열린다. 포르투갈의 웹 서밋에서는 지중해의 따뜻한 바람이 불고, 핀란드의 슬러시에서는 차가운 북유럽의 공기가 감돈다. 하지만 그 온도의 차이를 넘어,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1998년 IMF 외환위기. 그때 우리는 ‘벤처’라는 말을 더 자주 듣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경제 속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시작됐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작은 기업들이 등장했다. 그것이 한국 스타트업의 초기 모습이었을 것이다.
강남 테헤란로는 한때 ‘테헤란밸리’로 불렸다. 거리를 걷다 보면 당시의 흔적을 아직도 발견할 수 있다. 청년들이 네모난 사무실에서 각자의 꿈을 키우던 그 시절을 지나, 변화가 찾아왔다. 2010년대 초반,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그때부터 ‘스타트업’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변했다. 2013년만 해도 180여 개에 불과했던 글로벌 스타트업 행사가, 2018년에는 4000개로 늘어났다고 한다. 숫자의 증가는 어떤 변화를 말해주는 걸까. 어쩌면 그것은 혁신이 더 이상 한 곳에 머무를 수 없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2019년 겨울, 처음으로 문을 연 컴업(COMEUP). 매년 11월이면 이 자리에 모여들던 이들이 올해는 12월의 한겨울을 택했다. ‘Innovation Beyond Borders’. 이 슬로건이 말하는 것처럼, 혁신에는 국경도, 시간도 없다. 실리콘밸리의 창업자가 서울의 투자자를 만나고, 헬싱키의 기술이 싱가포르의 시장을 만나는 곳. 그것이 바로 오늘날 스타트업 축제의 모습이다.
우리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변화하고 있다. 첫 세대 창업자 중 일부는 투자자가 되어 돌아왔다. 실패한 창업자들이 다시 도전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제 그들의 시선은 국내 시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세계를 바라보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축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혁신이라는 것은 본래 외로운 일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일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가끔 멈춰 서서, 비슷한 길을 걷는 이들과 마주칠 필요가 있다.
혁신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는 왜 더 자주 만나려 하는 걸까. 어쩌면 그것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연결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역설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축제는 끝나겠지만, 그곳에서 시작된 대화는 계속될 것이다. 더 깊은 기술을 향해, 더 넓은 시장을 향해, 새로운 가치를 향해. 국경을 넘어선 혁신의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를 발견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해갈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축제를 만드는 이유다. 그리고 그 축제는, 어쩌면 미래를 만드는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