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겨울 햇살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바깥세상은 혼란스럽다. 뉴스는 비상계엄과 내란, 탄핵이라는 무거운 단어들로 가득하고, 경제 전문가들은 앞으로가 더 어려워질 거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12월의 코엑스는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컴업 2024’라는 이름의 스타트업 축제가 열린 날이었다. ‘축제’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260개의 스타트업이 모였고, 그중 150개는 해외에서 왔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시대에, 이들은 오히려 더 멀리 보고 있었다. 숫자만 보면 단순한 통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천 개의 희망이 압축되어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UAE, 인도, 일본, 스웨덴 등이 차린 국가관이었다. 세상은 분열되고 갈등하는데, 이곳만큼은 달랐다. 각국의 스타트업들이 자신들의 기술과 비전을 선보이는 모습은 마치 올림픽 선수촌을 연상케 했다. 여기서는 국경도, 이념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려는 열정만이 있었다.
행사장 한편에서는 리벨리온의 박성현 대표가 연단에 섰다. 한국 스타트업 최초로 사우디 아람코의 투자를 받아낸 인물이다. 그의 발표를 듣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아무리 어둡다 해도, 미래를 향한 도전만은 멈출 수 없다는 것. AI 반도체, 우주 발사체와 같은 단어들은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우리의 희망이 되어 있었다.
전시장을 천천히 걸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라이보2’라는 사족 보행 로봇이었다. 어릴 적 상상했던 로봇의 모습을 떠올렸다. 현실이 된 상상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력.
행사장 곳곳에서는 각양각색의 언어가 들렸다. 한국어, 영어는 물론이고 아랍어, 스웨덴어, 일본어가 뒤섞여 울렸다. ‘스타트업 코리아 특별비자’ 1호 수혜자인 스페인 기업 ‘아이마’의 카를로스 킥 CTO는 한국에서 큰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혼돈의 시기에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여전히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였다.
이틀간의 행사를 지켜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곳이 단순한 전시회나 컨퍼런스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곳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피난처’이자 ‘희망의 광장’이었다. 법률 상담존에서는 글로벌 진출에 대한 열띤 상담이 진행됐고, 기후테크 전시관에서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탄소중립이라는 공동의 과제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리버스 피칭’ 자리에선 대기업이 스타트업에게 먼저 협력을 제안했다. 불황 속에서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혁신은 더 이상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작은 조직이라도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 겉으로는 혼란스럽고 불안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도 국경을 넘어 기술을 나누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려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희망 아닐까.
컴업 2024는 끝이 났지만, 이곳에서 시작된 수많은 이야기들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갈 미래가 궁금해지는 겨울날이었다. 코엑스를 나서며 바라본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은 더 밝게 빛난다고 했던가. 이 시대의 혁신가들이 바로 그 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