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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4천억의 고독” 중국 최대 쇼핑 축제의 명암

지난 10월부터 11월까지, 중국에서는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졌다. 연간 최대 쇼핑 이벤트인 솽스이(雙十一) 축제가 35일이라는 사상 최장 기간으로 확장된 것이다. 1이 가장 많이 들어간 11월 11일에 시작된 이 행사는 소규모 ‘솔로데이’ 이벤트에서 이제 중국 최대의 소비 축제로 자리 잡았다. 마치 서구의 블랙 프라이데이처럼.

수치로 보면 올해 솽스이는 대성공이다. 주요 온라인 플랫폼의 총매출액이 1조 4418억 위안(약 256조 원)을 기록했고, 이는 작년 대비 26.6%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숫자의 이면에는 복잡한 현실이 숨어있다. 35일이라는 긴 세일 기간, 그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소비 진작 정책이 이 ‘성공’을 뒷받침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상은 다르게 보인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중국 소비 시장의 지각 변동이다. 한때 절대 강자였던 알리바바의 티몰·타오바오 플랫폼이 전체 매출의 50.1%를 차지하며 여전히 1위를 지켰지만, 작년 61%에서 크게 하락했다. 틱톡과 핀둬둬 같은 신흥 플랫폼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시장은 더욱 경쟁적으로 변모했다.

이번 솽스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중국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다. 가전제품 시장을 들여다보면 이런 변화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제 중국 소비자들은 단순한 기능성을 넘어 스마트홈, 에너지 효율, 그리고 심지어 미적 가치까지 고려한다. 임베디드(빌트인) 가전제품의 인기는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냉장고가 더 이상 ‘냉장고’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주방 인테리어의 일부이며, 스마트홈 시스템의 한 요소다.

화장품 시장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중국 로컬 브랜드 프로야(PROYA)가 유수의 글로벌 브랜드들을 제치고 주요 플랫폼에서 1위를 차지했다. ‘Morning C, Night A’라는 영리한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는 단순한 브랜드의 성공을 넘어, 중국 소비자들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더 이상 외국 브랜드가 곧 프리미엄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반려동물 시장의 성장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59억 위안 규모의 이 시장에서, 중국 로컬 브랜드들은 이미 강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Myfoodie(麦富迪)는 4년 연속 티몰 플랫폼 1위를 지켰다. 이는 중국의 중산층 성장과 맞물린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보여준다. 반려동물은 더 이상 ‘기르는’ 대상이 아니라 ‘가족’이 되었고, 그들을 위한 프리미엄 소비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숫자들 뒤에는 그림자도 있다. 35일이라는 긴 행사 기간은 소비자들의 피로감을 높였고, 복잡한 할인 정책은 혼란을 가중시켰다. “사실상 소비 부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플랫폼들의 과열된 경쟁은 마케팅 비용을 높였고, 이는 결국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소비 패턴의 진화다. 중국 소비자들은 이제 단순한 가격 할인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들은 품질, 브랜드 가치, 환경 친화성을 중시한다. 이는 중국 시장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솽스이의 변화는 어쩌면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하나의 창문일지도 모른다. 소비의 축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그 성격은 크게 달라졌다. 알리바바가 2009년 이 행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복잡한 양상을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35일간의 축제는 끝났지만, 그 여파는 계속될 것이다. 플랫폼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소비자들의 요구는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중국 경제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는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소비의 축제는 끝났지만, 변화의 물결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현장 중심으로 취재하며, 최신 창업 트렌드와 기술 혁신의 흐름을 분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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