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한 마디도 못 알아듣던 공대생이 미국 최고 명문대 출신 3,000명의 튜터를 보유한 교육 플랫폼의 대표가 되기까지, 그 여정에는 역설적이게도 ‘불완전함’이 만들어낸 기회가 있었다. 머리를 자를 돈도 없어 긴 머리를 하고 카페테리아를 돌아다니며 초콜릿을 붙인 전단지를 나눠주던 그가, 이제는 250여 개 기업이 사용하는 AI 기반 영어 교육 서비스를 운영한다. “아름답게 하지 말자”라는 그의 창업 철학은,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전한다.
공대 출신 엔지니어였던 이성파 링글 공동대표는 그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어 미국 MBA에 지원했다. 토플 최저점으로 겨우 입학한 그가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은 쉽게 상상이 간다.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매일 밤 귀국을 고민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올때 항공권 가격을 검색하는 것이 그의 일과가 되었다. 돌아보면 항공권이 너무 비싸서 돌아가지 못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전환점은 룸메이트와의 대화에서 찾아왔다. “너 영어 나랑 한번 해볼래?” 그 제안으로 시작된 두 시간의 대화에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영어로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 경험을 내가 왜 한국에 있을 때, 미국에 오기 전에 하지 못했을까?” 이 깨달음이 링글의 시작이 되었다.
창업의 첫걸음은 초라했다. 미국 대학 카페테리아에서 기라델리 초콜릿을 붙인 전단지를 돌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날 배포한 30-40장의 전단지 중 하나의 응답이 그들의 첫 튜터가 되었다. 그리고 그 튜터의 친구를 소개받고, 또 그 친구의 친구를 만나면서 네트워크가 확장되었다.
“머리를 자를 돈도 없어서 머리가 계속 길어졌어요. 애들이 봤을 때는 도대체 누구지, 왜 나한테 와서 영어를 가르치라고 하지? 너의 영어는 완벽하지도 않은데…”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진정성으로 받아들여졌다.
링글의 소식은 입소문을 타고 보스턴으로 퍼져나갔고, 하버드 학생들도 튜터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30명이었던 튜터는 현재 3,000명으로 늘어났다. 대부분이 아이비리그나 미국의 상위권 대학 학부생들이다.
코로나 시기는 회사에 새로운 도전을 가져왔다. 팬데믹 초기에는 집에서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자 위기가 찾아왔다. 튜터들이 더 이상 수업을 하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이성파 대표의 대응은 즉각적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가 직접 학교를 순회하며 튜터 모집에 나섰다. 예일대에서는 푸드트럭을 대절해 200명의 학생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며 회사를 소개했다. 보바티 200잔을 들고 캠퍼스를 걸어다니기도 했다. 다트머스 대학에서는 허가도 없이 부스를 차리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현재 링글은 250개에서 300개 정도의 기업들이 사용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2014년부터 구상했던 AI 기술을 활용해 학습자의 영어를 평가하고, 직군별 맞춤형 영어 학습 서비스도 제공한다. 유저들은 수업 후 자신의 대화를 모두 녹음하여 AI 분석을 통해 얼마나 많은 단어를 사용했는지, 발음은 어땠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아름답게 하지 말자.” 이것이 그가 창업 과정에서 깨달은 교훈이다. 투자를 받고 성장하는 과정이 겉으로는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려움이 있다. “원하는 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고, 멋지게 뭔가 투자를 받은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어마어마한 어려움과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힘듦이 다 있거든요.”
이성파 대표의 이야기는 창업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거창한 계획이나 완벽한 준비가 아닌,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용기, 그리고 작은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완벽하게, 깔끔하게, 더 온전하게”를 추구하기보다는, 지금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것. 그것이 그가 발견한 창업의 본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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