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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의 시대’ 스타트업 영화와 드라마로 읽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

“꿈은 새장 속에서도 날아오른다.” 실리콘밸리의 어느 창업가가 한 말이다. 실로 아이러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꿈이라는 것이 어떤 제약도 모르는 자유로운 상상이어야 할 텐데, 그것이 새장 속에 갇혀 있다니. 하지만 바로 그런 모순이 우리 시대 스타트업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무겁게 다가온 적이 있었을까. 한때는 청년들의 무모한 도전 정도로 치부되던 것이, 이제는 시대를 읽는 하나의 창이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스타트업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가 제작되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영화 소셜네트워크(2010)

미국의 작품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실화에 기반을 둔다.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그의 천재성과 배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집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에두아르도 사베린과의 우정이 깨어지는 장면은, 성공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감독인 데이비드 핀처는 이 장면을 마치 셰익스피어의 비극처럼 연출했다. 실제로 이 영화는 현대판 ‘리어왕’이라고도 불린다.

<스티브 잡스>는 한 혁신가의 삶을 세 개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압축해 보여주었다. 그의 삶이 끊임없는 ‘프레젠테이션’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천재적인 연출이었다. 영화는 잡스라는 인물을 신화화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어두운 면까지도 솔직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친자를 부인했던 그의 모습은, 천재성과 인간성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플레이리스트>는 음악 산업의 혁신을 가져온 스포티파이의 이야기다. 불법 다운로드가 만연하던 시기에, 다니엘 이크는 합법적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927억 달러의 기업 가치는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이는 진정한 혁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HBO의 <실리콘 밸리>는 좀 더 냉소적이다. 이 드라마는 스타트업 문화를 날카롭게 풍자하며 웃음 뒤에 숨은 비판의 칼날을 숨기지 않았다. 주인공 리처드 헨드릭스는 천재적인 프로그래머지만, 비즈니스 감각은 형편없다. 드라마는 기술과 비즈니스 사이의 간극을 코미디로 승화시킨다.

영화 위크래쉬드(2022)

<위크래쉬드>는 한때 47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자랑하던 위워크의 몰락을 다룬다. 공유 오피스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회사는, 창업자 애덤 뉴먼의 과도한 야망 앞에서 무너져내렸다. 2021년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지만, 불과 2년 만에 상장폐지되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다. 이는 현대판 이카루스의 신화다. 너무 높이 날아오르려다 결국 추락한 것이다.

<슈퍼 펌프드>는 우버의 성장과 몰락, 그리고 부활을 그린다. 트래비스 캘러닉의 공격적인 경영 방식은 회사를 급성장시켰지만, 동시에 수많은 논란을 낳았다. 결국 그는 CEO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우버는 살아남았고, 지금은 시가총액 1,299억 달러의 기업이 되었다. 이는 창업자의 야망과 기업의 생존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드롭아웃>은 더 비극적이다. 19세의 엘리자베스 홈스가 창업한 테라노스는 한때 ‘실리콘밸리의 프린세스’라 불렸다. 극소량의 혈액으로 질병을 진단한다는 혁신적인 기술을 내세웠지만, 그것은 허상이었다. 2018년, 회사는 사기 혐의로 문을 닫았다. 이는 기술 스타트업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유혹을 보여준다. 실체 없는 혁신의 환상이 얼마나 많은 것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드라마 유니콘을 타고(2022)

일본은 또 다르다. <유니콘을 타고>는 23세 CEO의 도전기를 그리며 청년 창업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일본 특유의 절제된 연출 속에서도, 젊은이의 뜨거운 열정이 식지 않고 전달된다. 주인공이 교육용 앱을 개발하는 과정은, 기술이 어떻게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100만엔의 여자들>은 여성 창업자들이 마주한 현실의 벽을 정면으로 다룬다.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단단한 콘크리트 천장을 마주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드라마는 특히 일본 사회의 보수성과 성차별적 관행을 예리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그 비판은 결코 피상적이지 않다. 등장인물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차별의 실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스타트업 걸스(스타트 업!)>는 현대 일본 사회에서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히카리와 노조미라는 두 주인공의 대조적인 삶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히카리는 자유분방한 대학생으로, 창업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인물이다. 반면 노조미는 일본 대기업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직원으로, 안정을 추구하며 사회적 규범을 따르는 삶을 살아왔다.

두 인물의 만남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다. 노조미는 히카리의 자유로운 생활 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러나 업무적 필요에 의해 히카리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예기치 않게 협력 관계를 맺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갈등과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어려움을 통해 두 주인공이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히카리와 노조미는 점차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들의 삶과 경력, 그리고 우정을 발전시킬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드라마 스타트업 투게더(2022)

중국의 작품들은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와일드 블룸>은 1990년대 개혁개방 시기를 배경으로, 남성 중심의 철강 산업에서 살아남은 여성 기업가의 이야기를 그린다. 8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될 만큼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은, 중국의 경제 성장이 얼마나 드라마틱했는지를 보여준다.

중국 모바일 메신저 시장의 격변기를 그린 드라마 ‘창업시대’는 실제 사례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다. 드마마 방영 당시 실제 사례인 ‘토크박스(Talkbox)’의 흥망성쇠가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황쉬엔(黄轩)과 안젤라베이비가 주연을 맡아 한 스타트업 창업가의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개발 과정을 그렸다.

토크박스는 2011년 1월, 홍콩계 스타트업 ‘그린토마토’가 선보인 중국 최초의 음성 메신저 서비스였다. 당시 중국은 메신저 서비스의 발흥기를 맞이하고 있었으며, 텐센트의 위챗과 샤오미의 미랴오(米聊)도 비슷한 시기에 출시되었다. 출시 직후 토크박스는 혁신적인 음성 메시지 기능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샤오미가 미랴오에 유사한 기능을 추가하며 경쟁에 뛰어들었고, 텐센트는 그린토마토에 투자를 제안하면서 중국 시장 철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린토마토는 텐센트의 제안을 거절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회사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이 되었다. 투자 협상이 결렬된 후, 텐센트는 위챗에 자체 기술로 음성 메시지 기능을 추가했고, 이는 위챗이 중국 메신저 시장을 석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장 경쟁에서 밀린 토크박스는 중국 사업을 접고 동남아 시장으로 진출을 시도했지만, 네이버의 라인과 같은 강력한 경쟁자들에 밀려 결국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다.

<스타트업 투게더>는 현대 중국의 모습을 담았다. AI 여행 앱을 만드는 스타트업 팀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의 새로운 세대가 꿈꾸는 미래를 그려낸다. 특히 프로그래머, 투자자, 중년의 임원이라는 세 인물의 시선을 통해, 세대와 계층을 넘어선 창업의 보편성을 이야기한다.

최근작인 <조니, 계속 걸어!>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영화는 중국의 기업 문화를 풍자하며, 무의미한 관료주의와 비효율적인 조직 문화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공감을 얻은 이 작품은, 중국의 스타트업 문화가 이제 성공 신화를 넘어 자기반성의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드라마 스타트업(2020)

한국 작품은 청춘의 성장 서사에 방점을 찍는다. tvN의 <스타트업>은 샌드박스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꿈을 좇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사업의 성공이 아닌, 한 사람의 내면적 성장이다. 서달미라는 인물의 성장은, 우리 시대 청춘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녀가 겪는 좌절과 실패,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은 마치 우리의 이야기 같다.

이 모든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 바로 ‘실패’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들은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다룬다. 어쩌면 그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스타트업의 세계에서 성공은 예외에 가깝다. 대부분의 도전은 실패로 끝난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실패를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실패가 어떻게 한 사람을 성장시키는지, 그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처음의 인용구로 돌아가 보자. 꿈은 새장 속에서도 날아오른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새장 속에 갇혀 있다. 자본의 한계, 기술의 한계, 경험의 한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꾸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새장 밖 자유로운 하늘을 향한 끝없는 비상의 기록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우리 시대의 초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초상화 속에서 우리는, 한계에 갇히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의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꿈.

스타트업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들은, 그런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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