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2기 미국의 실험, 한국 플랫폼의 딜레마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던 날, 워싱턴 D.C.의 하늘은 흐렸다고 한다. 그날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는 100만 달러의 수표를 들고 있었을 것이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도, 애플의 팀 쿡도,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같은 금액의 수표를 준비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날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따로 있었다. 일론 머스크였다. 트럼프 2기 정부의 ‘핵심 실세’로 부상한 그는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이 되어 미국 공공부문의 혁신을 이끌게 됐다. “리스크는 인생의 연료다”라고 말하는 그의 존재는, 미국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머스크는 이미 스페이스X를 통해 NASA의 독점을 깨뜨린 전력이 있다. 그는 “불가능하다”는 NASA의 반대를 무릅쓰고 로켓 발사체 재활용에 성공했다. 이제 그는 미국 연방정부 예산의 3분의 1에 가까운 2조 달러를 감축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428개의 연방기관을 99개로 줄이겠다는 그의 발언은, 미국이 이제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과감한 변화를 시도할지 짐작게 한다.
이런 광경은 4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특히 저커버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태 이후 그는 트럼프의 페이스북 계정을 폐쇄했다. 당시 저커버그는 원칙을 지키는 듯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원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그도 깨달은 모양이다.
트럼프의 복귀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게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들은 서둘러 트럼프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메타는 그동안 고수해왔던 팩트체크 정책을 폐기했고, 다양성 정책도 내팽개쳤다. 아마존은 한발 더 나아가 멜라니아 트럼프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그들의 이런 행보는 마치 중세 시대의 봉신들이 새로운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이런 굴종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이미 1기 때부터 정책을 무기로 기업들을 길들여왔다. 그의 즉흥적인 결정들은 때로는 기업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했다. 틱톡을 둘러싼 그의 태도 변화가 대표적이다. 2020년에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틱톡 퇴출을 외치더니, 최근에는 메타를 견제하기 위해 틱톡이 필요하다며 입장을 바꿨다. 이는 미국 기업이라 해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경고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플랫폼 기업들은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한국 정부는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온라인서비스이용자보호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이는 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본떠 만든 것으로,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불법·유해정보 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법안이다. 위반 시 전년 매출의 최대 6%를 과징금으로 물릴 수 있다.
문제는 이 법안이 구글, 메타와 같은 미국 기업들도 규제 대상에 포함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대표부 수장으로 지명된 제이미슨 그리어는 이미 한국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경고음을 울린 바 있다. 그는 작년 초 “한국의 플랫폼법은 미국 기업을 차별하는 규제”라며 “한미 무역 관계의 안정성에 새로운 위협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 미국 의회에서는 한국의 디지털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공화당의 캐롤 밀러 하원의원은 한국의 디지털 규제가 미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경우,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트럼프가 관세를 외교적 무기로 즐겨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결코 빈 위협이 아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상황이 결국 한국 기업들에게 더 큰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보복을 우려한 나머지 구글이나 메타 같은 미국 기업들에 대한 규제는 느슨해지고,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국내 기업들만 규제의 그늘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규제를 만들었는데 미국 빅테크에 대한 감시가 소홀하면 자칫 국내 기업만 휘어잡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머스크식의 극단적 효율성 추구가 미국의 새로운 기준이 된다면, 우리 기업들은 더욱 힘든 경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우리도 머스크가 말하는 ‘3R’―다시 생각하고(Rethink),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며(Reimagine),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재창조하는(Reinvent)―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현재의 규제 정책도 이런 관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 2기 정부에서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성장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이미 바이든 정부의 AI 규제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자국 기업들이 AI 개발 경쟁에서 자유롭게 뛰어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EU의 빅테크 규제도 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가 빅테크 조사 범위를 줄이거나 변경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경고음은 켜졌다. 미국은 규제를 완화하며 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반면, 한국은 규제를 강화하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양국 기업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나는 나노 매니저”라고 했다. 10억분의 1의 디테일까지 신경 쓴다는 뜻이다. 우리의 플랫폼 정책도 이런 섬세함이 필요할 것 같다. 규제와 육성 사이의 미묘한 균형점을 찾고, 디지털 무역 전쟁의 파고를 헤쳐 나가면서도,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묘수가 필요하다.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전진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리스크를 연료로’ 삼는 일인지도 모른다. 트럼프와 머스크가 이끄는 새로운 미국의 시대, 우리는 과연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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