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어딜봐. 니가 해야지!

(c) MBC

MBC ‘신인감독 김연경’이 종영했다. 세계적인 배구선수 김연경이 신인 감독으로 실업리그, 대학리그 선수들을 모아 프로팀과 맞붙는 프로그램이었다.

김연경이 코트에서 던진 말들이 자꾸 귀에 남았다. 배구 코트와 스타트업, 전혀 다른 세계 같지만 닮은 구석이 있었다. 특히 김연경이 창업자와 겹쳐 보였다. 자기 분야에서는 성과를 낸 사람. 하지만 조직을 이끄는 건 처음인 사람. 그래서 생기는 격차와 긴장. 그리고 그럼에도 함께 전진하는 이야기.

“어딜봐. 니가 해야지”

코트 위, 공이 어중간한 경계선 위로 떨어진다. 누구의 구역인지 명확하지 않은 그 지점을. 선수들은 공을 본다. 떨어지는 걸 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내 구역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0.1초를 지체시킨다.

김연경의 목소리가 코트를 가른다. “어딜봐. 니가 해야지.”

“어딜봐”라는 말이 핵심이다. “너 지금 보고 있잖아”라는 뜻이다. 문제를 인식했다면 그게 내 일이 된다는 논리.

스타트업 창업자들도 비슷한 말을 한다. “문제가 보이는데 왜 안 하지?” 하지만 팀원 입장에서는 다른 계산이 작동한다. “누군가 하겠지”, “이건 내 일이 아니야”, “괜히 했다가 덤터기 쓰는 거 아냐?”

이유있는 망설임이다. 특히 책임 추궁에 익숙한 조직 출신이라면 더욱. 거기서는 업무 범위를 벗어난 행동이 오히려 리스크였으니까.

그렇다면 “어딜봐. 니가 해야지”가 작동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필승 원더독스의 선수들에게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제8구단 창단.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프로 8구단이 생길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방송 노출로 프로팀 재입단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실제로 방송 초반 F등급을 받았던 이나연은 프로그램 후 흥국생명 입단에 성공했다.

“니가 해야지”라는 말이 먹힌 건, 그렇게 했을 때 얻는 게 명확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문제를 보고 움직이게 만들려면, 그렇게 했을 때 무엇을 얻는지가 보여야 하는 것 같다. 의미 있는 스톡옵션, 명확한 인센티브, 성장 기회. 아니면 적어도 “지금은 어렵지만, 회사가 성장하면 이렇게 될 것”이라는 투명한 약속.

보상 없이 주인의식만 요구하는 건 작동하지 않는다. 창업자에게는 회사 자체가 보상이지만, 팀원에게는 다른 이야기다.

“미안하다고 하지마. 미안하다고 하다가 경기 져”

선수가 실수를 한다. 반사적으로 동료들에게 “미안해”라고 말한다. 고개를 숙인다.

김연경이 말한다. “미안하다고 하지마. 미안하다고 하다가 경기 져.”

실수를 했다면 사과는 당연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미안한 감정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빠르게 인정하고, 빠르게 잊고, 빠르게 다음으로 가야 이긴다.

배구는 실수가 바로 점수로 이어지는 게임이다. 한 공을 놓쳤다고 자책하는 순간, 다음 공도 놓친다. 실수의 늪에 빠지면 연속 실점으로 이어진다. 감정이 과거에 묶이면 현재를 놓친다.

스타트업도 비슷하다. 실수가 일어났을 때, 당연히 책임감을 느끼고 사과도 해야 한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게 먼저다. 실수를 인정하되, 그 감정에 잠식되지 않는 것.

“미안하다고 하다가 경기 져”가 작동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필승 원더독스는 4패하면 팀이 해체되는 규칙이었다. 생존이 걸려 있었다. 한 세트를 져도, 다음 세트를 이겨야 살아남는다. 절박함이 “빨리 잊고 다음”을 강제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실수를 빨리 잊게 만들려면 심리적 안전감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실수해도 잘릴까 봐 두렵지 않다”는 믿음. 그래야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실수를 인정하되 자책하지 않고, 빠르게 다음 플레이로 넘어갈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는 해결 우선이지만, 위기가 지나면 돌아볼 시간을 주는 것. “왜 이런 일이 생겼나”, “다음엔 어떻게 막을까”를 함께 고민하는 것. 그런 구조가 있을 때 “미안하다고 하지마”가 냉혹함이 아니라 전진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래야 이긴다.

“제대로 안 할 거면 하지 말라”

김연경이 경기 중 선수들에게 던진 말이다. “제대로 안 할 거면 하지 말라.”

중간이 없다는 얘기다. 하든지, 말든지. 어정쩡한 건 팀 전체를 무너뜨린다.

스타트업 창업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대충’이 가장 위험하다고. 대충은 전염되고, 팀 전체의 기준을 낮춘다고.

배구 코트에서 한 명이 힘을 빼면 공이 떨어진다. 작은 팀일수록 한 사람의 무게가 크다.

하지만 “제대로 안 할 거면 하지 말라”는 가혹하게 들린다. 그리고 팀원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저는 김연경이 아닌데요. 제대로 하고 싶어도 안 되는걸요.”

이 말이 작동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필승 원더독스의 선수들은 자신이 원해서 모였다. 프로에서 방출됐거나, 프로 진출이 좌절됐거나, 은퇴 후 복귀를 꿈꾸는 선수들. 이 프로그램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제대로 안 할 거면 하지 말라”는 말이 채찍이 아니라 각성으로 들렸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올인을 요구하려면, 팀원이 올인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시장보다 낮은 급여를 주면서 “스타트업은 가족”이라고 말하는 건 작동하지 않는다. 올인을 요구하려면, 올인의 대가가 보여야 한다. 의미 있는 지분, 시장 이상의 보상, 명확한 성장 경로.

아니면 적어도 선택의 자유는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올인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그러면 여기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강요가 아니라 선택.

“이게 안 돼?”

함께했던 선수가 한 말이 있다. 김연경이 자주 하는 말이 “이게 안 돼?”였다고. 김연경은 할 수 있지만 자신은 노력해도 잘 안 된다고.

세계적인 선수에게는 당연한 플레이가, 실업리그 선수들에게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것. 격차가 생긴다.

창업자도 비슷하다.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는 쉽게 보이는 것들이, 팀원에게는 높은 벽일 수 있다. 그리고 창업자는 종종 이 격차를 모른다.

압도적인 성과를 낸 사람은 말에 권위가 생긴다. 김연경이 “어딜봐. 니가 해야지”라고 말하면 먹히는 이유다. 20년간 쌓아온 성과가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제목인 ‘신인감독 김연경’은 중의적이다. 말 그대로 0년차 초보 감독이면서, 동시에 배구계의 신(神)인 감독. 신인이면서 신인. 이 두 정체성이 만드는 긴장.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압도적 성과는 권위를 주지만, 동시에 거리도 만든다. “이게 안 돼?”라는 말은 독려일 수도 있지만, 팀원에게는 좌절로 들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격차를 인정하면서도 함께 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필승 원더독스의 훈련 장면에서 흥미로운 걸 봤다. 김연경이 직접 코트에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하는 거야”가 아니라, 직접 보여줬다. 그리고 선수들의 수준에 맞춰 전략을 조정했다. 프로팀보다 타점이 낮은 선수들이니, 블로킹 타이밍을 늦추라고 지시했다.

“이게 안 돼?”가 아니라 “이건 안 되니까, 이렇게 하자”로 바뀌는 순간들.

창업자도 격차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왜 이게 안 돼?”가 아니라 “이게 안 되는구나.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로 질문을 바꾸는 것. 팀원의 수준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 수준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

71.4%의 의미

‘신인감독 김연경’에서 필승 원더독스는 최종 7전 5승 2패, 승률 71.4%를 기록했다. 국내 고교 우승팀, 일본 명문 고교팀, 국내 대학팀과 실업팀, 그리고 프로팀들과 맞붙은 결과였다.

실업리그와 대학리그에서 뛰던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서 방출된 표승주가 함께 만든 성적이었다. 달라진 건 실력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문제를 보면 움직이고, 실수했을 때 다음을 생각하고, 제대로 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했다. 김연경은 기술을 가르친 것만큼이나 마인드셋을 바꿨다.

하지만 이게 가능했던 건,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수들에게는 제8구단 창단, 프로 재입단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생존을 위해서는 4패 이내로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김연경이라는 압도적 권위가 있었지만, 동시에 격차를 인정하고 선수들의 수준에 맞춰 전략을 조정하는 유연함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들이 자신이 원해서 그곳에 있었다.

스타트업도 비슷한 것 같다. 창업자가 “니가 해야지”, “미안하다고 하지마”, “제대로 안 할 거면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작동하려면 조건이 있는 것 같다.

팀원이 그렇게 할 이유. 의미 있는 보상, 명확한 성장 기회, 투명한 약속. 심리적 안전감. 창업자와 팀원의 격차를 인정하고 그 수준에서 최선을 만드는 유연함.

그리고 무엇보다, 팀원이 스스로 선택해서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

배구 코트에서 던진 몇 마디가, 생각보다 멀리 날아왔다. 하지만 그 말들이 땅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받쳐주는 조건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함께 날아왔다.

플래텀 에디터 / 스타트업 소식을 가감 없이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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