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스타트업에게 ‘실패’는 오랫동안 금기어였다. 투자자들은 완벽한 성공 가능성을 요구했고, 창업자들은 작은 실수조차 감추려 애썼다. 실리콘밸리의 ‘Fail Fast, Learn Fast’ 문화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24일, 스픽이지랩스코리아(대표 코너 니콜라이 즈윅)가 이러한 문화에 도전하는 《틀려라, 트일 것이다》를 출간했다.
스픽은 AI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가 일주일에 1000문장 이상의 영어를 말할 수 있도록 설계된 학습 플랫폼이다. 전통적인 영어 교육이 정확성과 완벽함을 강조했다면, 스픽은 과감히 그 틀을 깼다. 틀려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틀려야 한다는 역발상으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서비스 론칭 이전부터 오픈AI를 비롯한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였고, 2024년에는 기업 가치 1조 4000억을 기록했다. 불과 5년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변화였다.
이 책의 핵심은 ‘로우 에고 프로페셔널리즘(Low-ego professionalism)’이라는 조직 문화다. 이는 단순한 겸손이나 자기비하와는 다른 개념이다. 높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실수를 성장의 기회로 삼는 태도를 의미한다. 스픽은 이 문화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적응력을 키워왔다.
“우리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스픽의 프로덕트 매니저 이한결의 말이다. “완벽한 계획보다는 빠른 실행과 학습을 선호하죠. 그래서 우리는 모든 프로젝트를 작은 단위로 나누고, 각 단계마다 실험하고 검증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실수는 필연적입니다. 하지만 그 실수들이 모여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책은 이러한 철학이 실제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유명 연예인과의 브랜드 캠페인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그것을 극복한 방법, 지하철 옥외광고 CM송을 제작하면서 발생한 예상치 못한 문제들과 그 해결 과정이 상세하게 담겨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실패의 문서화’ 시스템이다. 스픽은 실패 사례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공유한다. 이는 단순한 실수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데이터베이스가 된다. 예를 들어, 마케팅 캠페인이 실패했을 때, 단순히 ‘실패했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실패했는지, 어떤 가설이 틀렸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까지 상세하게 기록한다. 책에는 이러한 문서화 시스템의 템플릿도 포함되어 있다.
신입 직원 교육에서도 이러한 문화가 드러난다. 스픽은 신입 직원들에게 ‘안전한 실패’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처음부터 큰 프로젝트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실험부터 시작합니다.” 인사 담당자 박서영의 설명이다. “실패해도 괜찮은 환경에서 점진적으로 도전의 크기를 키워가는 거죠.”
김지안 스픽 그로스 마케팅 UA 리드는 “이 책의 제목인 ‘틀려라, 트일 것이다’는 우리의 캠페인 슬로건이자 조직의 가치”라고 설명한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실패를 쉽게 용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다 보면, 결국 혁신도 불가능합니다.”
《틀려라, 트일 것이다》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로우 에고 프로페셔널리즘의 개념과 필요성을, 2부에서는 이를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하는 방법을, 3부에서는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전략을 다룬다. 각 장의 말미에는 ‘Action Item’이 수록되어 있어, 실천 방법을 제시한다.
책에서는 실패를 다루는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한다. ‘실패 회고’ 미팅의 진행 방식, 실패 보고서 작성법, 실패로부터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방법 등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또한 각 장마다 실제 사례 연구가 포함되어 있어, 독자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응용할 수 있도록 했다.
코너 니콜라이 즈윅 대표는 “이 책은 경영 지침서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우리를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해결책으로 이끌어주죠.”
스픽의 이야기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실패를 용인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학습의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틀려라, 트일 것이다》는 그들의 경험과 통찰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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