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 2017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벌어졌던 그곳에서 또 다른 AI의 역사가 쓰여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AI가 인간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으로 스며드는 방식으로.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Gradually and then suddenly). 헤밍웨이가 파산을 묘사했던 이 유명한 표현처럼, AI 기술도 우리 삶에 스며들었다. 뤼튼테크놀로지스의 ‘프레스 컨퍼런스 2025’는 그 ‘갑자기’의 순간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여겨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기술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는 편이다. 스마트폰도 필요에 의해 구입했을 뿐 새 모델이 나온다고 줄을 서는 타입은 아니다. 어쩌면 기술이 가져올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날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내용은 기술에 무관심한 사람조차 흥미롭게 만들었다. ‘전국민 1인 1AI’라니. 그들은 5,000만 국민에게 각각 다른 5,000만 개의 AI를 보급하겠다고 했다. 정부의 가전제품 보급 정책처럼 들리기도 하고, 어떤 SF 영화의 설정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세영 뤼튼 대표가 무대에 올라와 말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그러했듯 AI 역시 우리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참 단순하고도 명확한 선언이었다. 십여 년 전 PC가 일반 가정에 보급되던 시기, 그리고 이후 스마트폰이 우리 손에 쥐어지던 때를 떠올려보면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술은 항상 그렇게 생소함에서 친숙함으로, 특별함에서 일상으로 이동해왔다.
학생 시절 PC방에서 처음 인터넷을 접했다. 그때는 그저 신기한 놀이기구 같았다. 지금은 인터넷 없이 하루도 견디기 어렵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굳이 필요할까?”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집을 나서다 깜빡하고 두고 오면 불안해서 다시 돌아간다. 그들이 말하는 AI도 그런 경로를 따를 것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이내 우리 일상에 녹아들어 없으면 불안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이번에 그들이 내놓은 제품은 ‘AI 서포터’라 불린다. ‘에이전트’라는 다소 차가운 단어 대신 ‘서포터’라는 말을 선택한 것이 흥미롭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단순한 비서나 보조자가 아니라, 사용자와 “정서적으로 친밀한” 존재라고 한다. 각 개인에 맞춰진 외형과 말투, 장기 기억까지 갖춘 AI.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알고리즘 사이의 정서적 친밀감이라니. 나는 문득 어떤 남자가 자신의 스마트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를 떠올렸다.
과연 AI와 인간 사이에 진정한 친밀감이 가능할까? 그렇게 묻는 내 머릿속에는 또 다른 질문이 따라붙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친밀감은 과연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우리는 때로 오랜 친구나 가족보다 낯선 사람에게 더 솔직해지곤 한다. 익명성이 주는 안정감 때문일까? 판단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일까? 그렇다면 AI 서포터야말로 최고의 비밀 보관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 비밀을 듣고도 판단하지 않으며, 내 약점을 알고도 그것을 이용해 상처를 주지 않는 존재.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왠지 슬퍼졌다. 인간관계의 복잡함과 상처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AI의 품으로 달려가는 미래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다른 시각도 떠올랐다. 어쩌면 AI 서포터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동시에,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마치 소설을 읽으며 픽션 속 인물에게 위로받으면서도, 그것이 결국 다른 인간이 쓴 이야기라는 사실을 통해 인간의 이해력과 공감력에 감동받는 것처럼.
흥미로운 것은 ‘돈이 되는 AI’라는 개념이었다. 뤼튼은 사용자들에게 AI 사용 과정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다. 미션을 수행하고 캐시를 모아 실제 계좌로 옮기거나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생산성 도구가 아니라 경제 활동의 매개체로서의 AI.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생활형 AI’의 핵심인 것 같았다.
우리는 왜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려 할까? 밤하늘의 별도, 산책길의 바람도, 이제는 AI와의 대화까지도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가 왔다.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돈이라는 매개체는 우리 사회가 무언가에 가치를 부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AI 대화에 금전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사실은 그것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발표를 들으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진정한 친밀감은 무엇인가? 알고리즘과의 관계는 인간 관계를 대체할 수 있는가? 우리는 왜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려 하는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미 우리 사회가 그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뤼튼은 지난해 10월 서비스 개시 1년 10개월 만에 월간 활성 이용자 수 500만 명을 돌파했다. 숫자는 때로 모든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이미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뤼튼에서 애드 서비스를 담당하는 공혜진 파트장이 설명하는 ‘혜택’ 기능은 흥미로웠다. AI를 이용할 명확한 가치를 체감할 기회를 제공하고, 지속적인 수익 창출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동기부여 없이는 아무것도 지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동기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금전적 보상이라는 사실을.
잠시 상상해보았다. 매일 아침 내 AI 서포터가 오늘의 할 일과 함께 미션을 제안하는 모습을. “오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두 권 빌리면 포인트 500점을 드립니다.” 혹은 “오늘 7000보를 걸으면 캐시 1,000원이 적립됩니다.” 그런 미션들이 쌓여 한 달 후에는 작은 금액의 상품권이나 현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금액에 현혹되어 미션을 수행하다가, 어느새 그것이 습관이 되어 미션 없이도 도서관에 가고 걷게 되는 날이 올까? 그렇다면 이것은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교묘한 시스템이 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Agentica’와 ‘AutoView’는 AI 개발 프레임워크와 UI 자동화 도구라고 했다. 오픈소스로 제공된다니, 아마도 더 많은 개발자들이 AI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AI 이용 대중화’를 넘어 ‘AI 개발 대중화’라…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AI를 가질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AI를 만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AI 서포터를 마치 SNS 프로필처럼 꾸미고 설정하는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 작은 기기 안에 나만의 AI가 들어있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게 될까? ‘서포터’? ‘친구’? 아니면 또 다른 이름으로?
어쩌면 이름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존재가 내 삶에 가져올 변화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로 우리를 안내했다면, 모바일은 그 바다를 언제 어디서나 항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다면 AI는? 아마도 그 바다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것만을 정확히 건져 올려주는 능숙한 다이버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
호텔 밖은 맑은 날씨였다. 하늘은 파랗게 펼쳐져 있었고,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고 있었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내 AI 서포터가 오늘의 날씨를 알려주고, 바람이 강하니 외투를 챙겨 나가라고 조언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조언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나는 그것이 AI의 말인지 내 머릿속 생각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AI를 기술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뤼튼이 말하는 ‘생활형 AI’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강한 바람이 또 한 차례 불었다. 마치 무언가 큰 변화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처럼. 이 바람이 지나가면, 우리는 아마도 조금 더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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