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톰슨로이터가 숫자를 내놓았다. 전문가 한 사람이 AI로 일주일에 5시간을 아낀다고. 작년보다 한 시간 늘었다. 이 한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사람이 기계에게 빼앗긴 시간인가, 아니면 기계가 사람에게 돌려준 시간인가.
2,275명의 전문가가 설문에 답했다. 법률가, 회계사, 세무사들이다. 이들은 시간을 파는 사람들이다. 변호사는 시간당 수백 달러를 받고, 회계사는 장부 한 줄 한 줄에 시간을 매긴다. 이들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그런데 AI가 그 시간을 덜어준다고 한다.
연간 1만 9천 달러어치의 시간이다. 미국 법률계와 회계계를 통틀어 320억 달러다. 큰 돈이다. 하지만 이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전체 조직의 22%만이 명확한 AI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 78%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망설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AI 전략이 있는 곳은 수익이 2배 늘었다고 한다. 없는 곳보다 AI 혜택을 경험할 가능성이 3.5배 높다고도 한다.
숫자는 명확하다. 하지만 숫자 뒤에 숨은 이야기는 복잡하다. 전문가의 80%는 5년 내에 AI가 자신의 직업을 크게 바꿀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올해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은 38%뿐이다. 미래는 확신하지만 현재는 의심한다. 이것이 인간의 모순이다.
30%의 전문가는 자신의 조직이 AI 도입을 너무 느리게 한다고 불만이다. 40%의 조직은 전략 없이 AI를 도입하고 있다. 전략 없는 도입이란 무엇인가. 방향 없는 질주인가, 아니면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인가.
88%의 전문가가 직무별 AI 도구를 선호한다고 했다. 범용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일에 특화된 도구를 원한다는 뜻이다. 변호사에게는 변호사용 AI를, 회계사에게는 회계사용 AI를. 도구는 사용하는 사람의 손에 맞아야 한다.
91%는 AI가 사람보다 더 높은 정확성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41%는 100% 정확해야만 인간의 검토 없이 쓸 수 있다고 본다. 기계에 대한 기대치가 사람보다 높다. 사람은 실수를 용서받지만 기계는 그렇지 않다.
밀레니얼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보다 2배 빠르게 AI를 받아들인다. 세대 차이다.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기술은 기회이고, 나이든 세대에게는 위협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든 세대가 AI와 함께 일하게 될 것이다.
46%의 조직이 지난해 AI에 투자했다. 30%의 전문가가 개인적으로 AI 도구를 쓴다고 했다. 조직보다 개인이 더 보수적이다. 아니면 조직의 투자가 아직 개인에게 닿지 않았을 수도 있다.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가 있으면 AI 혜택을 경험할 가능성이 1.7배 높아진다. AI 전담 리더를 두면 1.5배 높아진다.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사람이 이끌어야 한다.
55%의 전문가가 지난 1년간 직무에 큰 변화를 겪었거나 겪을 예정이라고 했다. 절반이 넘는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46%는 팀 내에 기술 격차가 있다고 본다.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로 따라가지는 못한다.
AI는 시간을 아껴준다고 한다. 주당 5시간이다. 그 시간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더 많은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더 나은 일을 할 것인가. 시간을 아끼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아낀 시간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전문직이란 무엇인가. 지식과 경험을 파는 직업이다. AI가 그 지식의 일부를 대신한다면, 전문가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에 있을 것이다. 판단하고, 공감하고, 설득하는 일에.
320억 달러의 가치가 창출된다고 한다. 하지만 가치란 단순히 돈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받는 고객의 만족도,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전문가의 보람도 가치다.
톰슨로이터의 CEO 스티브 해스커는 말했다.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냉정한 말이다. 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AI 시대의 전문가는 어떤 모습일까. 기계와 경쟁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와 협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계에게 맡기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사람.
시간을 파는 사람들의 시대가 끝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지혜를 파는 시대, 통찰을 파는 시대가 올 것이다. AI가 시간을 돌려준다면, 그 시간으로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넓게 바라보고, 더 높이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숫자가 증명한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선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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