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지도가 바뀌고 있다” 징둥닷컴 한국 진출로 본 중국 이커머스의 조용한 확장

여기, 한 장의 지도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디지털 시장의 지도다. 1년 전의 지도와 지금의 지도를 나란히 놓고 보면 경계선이 조금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변화는 미세하지만 확실하다. 경계가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징둥닷컴이 한국 시장에 진입한다. 인천과 경기 이천에 물류센터를 설치했다. 이천 센터는 반려동물 제품을 위한 공간이고, 인천 센터는 미국 소비재 브랜드의 물류와 국내 뷰티 기업의 수출을 위한 공간이다. 징둥은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인기 상품은 자동으로 빠르게 집어갈 수 있는 위치로 재배치되고, 실시간 수요 예측에 따라 적재 구조가 유동적으로 변한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 이커머스 기업이 물류센터를 직접 운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이전에 한국에 진출한 알리익스프레스는 아직 물류센터 구축을 계획 중이고, 테무는 김포 물류센터를 임차한 후 운영은 롯데글로벌로지스에 맡겼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도 징둥이 한국 시장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지표일 것이다. 그들은 서울과 일부 경기도 지역에서 12시간 내 배송 서비스를 검토 중이다. 물건을 사고 하루도 안 되어 받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마치 우리가 쿠팡에서 물건을 주문하고 다음 날 받아보는 것처럼.

숫자를 살펴보자. 쿠팡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2024년 1월 3005만 명에서 2025년 1월 3239만 명으로 1년 새 234만 명이 증가했다. 특히 2024년 12월부터는 3200만 명을 넘어섰다. 같은 시기 알리익스프레스의 MAU는 708만 명, 테무는 629만 명을 기록했다. 숫자로만 보면 쿠팡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두 중국 플랫폼 모두 2024년 8월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연말 쇼핑 시즌인 11월과 12월에 이용자가 크게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알리익스프레스의 2023년 한국 결제액은 약 3조 6897억 원으로 추산된다. 2022년의 1조 4108억 원에 비해 2.6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테무의 결제액은 2023년 311억 원에서 2024년 6002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급성장은 무엇에 기인할까? 소비자들이 ‘가성비’에 민감해진 것이 한 요인일 것이다. 이들 플랫폼은 초저가 제품을 내세워 한국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테무의 지난달 신용·체크카드 결제 추정액은 627억 원으로 1년 새 44.5% 증가했다. 결제 건수는 228만여 건으로 46%, 결제자 수는 69만여 명으로 31.5% 늘었다. 쉬인의 경우 더 극적이다. 지난달 결제 추정액은 2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8% 증가했다. 결제 건수는 1만2000여 건에서 5만여 건으로 320.6%, 결제자 수는 약 8600명에서 3만 8000여 명으로 351.3% 늘었다.

왜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주목하게 되었을까? 미국과 중국 간의 관세 갈등이 하나의 요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145%의 초고율 관세를 추가 부과하고 중국·홍콩발 소액 소포에 대한 면세 혜택을 없앤다고 발표했다. 미국 시장이 어려워지자 중국 기업들이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은 중국 내 과잉 생산과 성장 정체다. 징둥닷컴은 2020년 이전까지 연간 매출 증가율이 10~20%에 달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 경기가 침체하자 성장률이 10% 아래로 떨어졌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징둥닷컴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작년 기준 매출은 1조 1588억 위안(약 228조 원)으로, 알리바바그룹(1조 192억 위안)과 핀둬둬홀딩스(3938억 위안)를 넘어선다. 이는 국내 이커머스 1위인 쿠팡의 작년 매출(약 41조 원)의 5배가 넘는 규모다. 징둥은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중 47위에 오른 거대 기업으로, ‘중국의 아마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소상공인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소상공인은 “C커머스를 규제하라”는 국민 청원을 올렸다. 청원인은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이 “단순한 배송 경쟁을 넘어 자국시장 안에 침투해 국내 판매자들과 ‘출발선이 다른 경쟁’을 강제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징둥의 국내 진출 방식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한국 시장을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징둥은 해외시장 진출 때 통상 물류센터부터 마련한 뒤 진입하는 방식을 써왔다”고 말했다. 또한 징둥은 최근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주요 업체와 소비자 집 앞으로 배달하는 ‘라스트마일’ 물류 계약을 맺었다.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의 한국 진출은 이제 막 시작된 것 같다. 그들은 자동화된 물류 시스템, 빠른 배송,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한국 시장에 침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시장의 지도는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변화에 대응할 것인지는 앞으로의 과제다.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현장 중심으로 취재하며, 최신 창업 트렌드와 기술 혁신의 흐름을 분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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