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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AI 에이전트로 달린다, 한국의 선택은?

가트너, 한국 IDC, 딜로이트 등 주요 시장조사기관들이 2025년 가장 주목할 IT 트렌드로 ‘AI 에이전트’를 선정하면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고 작동하는 이 지능형 소프트웨어가 디지털 혁신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생산성 향상, 서비스 활성화, 신산업 창출 가능성을 앞세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AI 에이전트는 정확히 무엇일까? 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서울 강남의 한 스타트업 사무실을 찾았다. 직원 37명이 근무하는 이 회사는 ‘AI 에이전트’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기존의 생성형 AI가 ‘이봐, 내게 질문해봐’라고 한다면, AI 에이전트는 ‘이봐, 내가 너 대신 해줄게’라고 말합니다.”

30대 중반의 CEO 김현우(가명)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AI 에이전트는 ‘목표 달성’과 ‘자율성’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AI 시스템이다. 특정 작업이나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고 작동하는 AI 소프트웨어라는 것이다.

“치킨 배달을 시켜달라고 하면, ChatGPT는 배달 방법에 관한 답변을 생성하지만 실제로 주문은 못 합니다. 반면 AI 에이전트는 인근 치킨집을 검색한 후, 당신의 취향을 고려해 직접 주문하고 결제까지 해요.”

지난 주말,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창 모임에서도 AI 에이전트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법시험을 거쳐 대형 로펌 파트너까지 오른 정우진(가명, 45세)은 술잔을 기울이며 고백했다.

“사회생활 20년 넘게 하면서 단 한 번도 업무에서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그런데 최근 우리 로펌에 AI 에이전트가 도입된 후부터는 달라. 과거에는 내가 법률 검토에 며칠을 쏟았던 일을 이 녀석은 몇 분 만에 끝내버려.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

정 변호사의 경우만이 아니다. AI 에이전트는 자율적으로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데이터를 수집·분석·사용해 사전 설정된 목표 달성을 위한 최적의 작업을 스스로 결정·수행할 수 있어 법률, 금융, 의료 등 전문직 분야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AI 시장은 2024년 2,146억 달러(약 310조원)에서 2030년 1조 3,391억 달러(약 1,932조원)로 연평균 35.7% 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AI 에이전트 시장은 2024년 51억 달러에서 2030년 471억 달러로 연평균 44.8%의 놀라운 성장이 예상된다.

이런 잠재력 때문일까. 전 세계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AI 에이전트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은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같은 오피스 제품군에 AI를 결합해 업무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 구글의 ‘AI 에이전트 줄스’는 개발자의 지시에 따라 직접 코드를 작성하고 버그를 수정한다. 앤트로픽의 ‘컴퓨터 유즈’는 AI가 키보드 입력, 버튼 클릭, 마우스 커서 이동 등 컴퓨터 조작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게 했다. 오픈AI도 ‘오퍼레이터’와 ‘딥리서치’를 내놓았다.

물론 중국도 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는 오픈AI 개발비(1억 달러)의 1/20 수준(50만 달러)으로 유사한 성능의 추론 특화 모델 ‘R1’을 개발했다. 미국 수학 경시대회 벤치마크 테스트에서 79.8% 성능을 입증해 오픈AI ‘o1’의 79.2%를 앞섰다. 지푸 AI는 음성 명령 기반의 ‘AI 에이전트 오토GLM’을 출시했다.

유럽도 가만히 있지 않다. 영국 스타트업 컨버전스 AI의 ‘프록시’는 웹 탐색과 작업 자동화에서 오픈AI의 ‘오퍼레이터’를 앞선 성능을 보였다. 프랑스의 ‘H’는 클라우드 기반 웹 에이전트 ‘러너 H’로 프랑스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처럼 AI 에이전트를 둘러싼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마치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의 철도 건설 경쟁, 20세기 자동차 산업의 경쟁과 비슷하다. 승자가 시장을 독식할 것이라는 공포가 이런 경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AI 경쟁력은 Tortoise ‘글로벌 AI 지수’에서 83개국 중 6위를 차지하며 상위권에 속해 있다. 하지만 1위 미국(100점)과의 격차가 매우 큰 상황(27점)이다. 최근 10년간 국내 AI 민간투자 규모는 미국의 2.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국내 대기업들은 AI 에이전트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LG전자는 ‘LLM 엑사원(EXAONE) 3.5’를 기반으로 기업용 AI 에이전트 ‘챗엑사원’을 개발해 내부 업무에 활용 중이다. SK텔레콤은 사용자 요청에 대해 스스로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수행하는 AI 에이전트 ‘에스터(Aster)’를 공개했다. 삼성SDS는 ‘Fabrix’와 ‘Brity Copilot’을 통해 기업 업무의 효율성과 자동화를 지원하고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톡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AI 에이전트를 개발 중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AI 에이전트 시장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더 과감한 투자와 혁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중해야 할 영역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공공·금융 산업의 AI 전환(AI transformation)이다. 규제 및 데이터 주권 이슈에 민감한 국내 공공·금융 시장은 MS, 세일즈포스 같은 글로벌 기업보다 국내 규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고객 데이터 접근이 유리한 국내 기업에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KT와 한글과컴퓨터가 이 분야를 공략하고 있다. KT는 MS와 협업을 통해 공공·금융·교육 분야 한국형 AI 종합서비스를 준비 중이며, 한글과컴퓨터는 LG AI 연구원과 협업을 통한 AI 에이전트 고도화로 공공을 비롯한 국내 오피스 솔루션 시장 공략을 예고했다.

둘째, 초개인화 서비스 영역이다. 고도화된 AI 에이전트는 멀티모달 기능, 도구 사용 능력, 기억 및 의사결정 능력을 바탕으로 스마트폰에서 수많은 앱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며 초개인화된 모바일 비서 역할을 할 전망이다.

뤼튼 테크놀로지스가 이 분야의 선두주자다. 이 스타트업은 사용자와의 대화를 기억하고 이해하며, 대화가 축적될수록 사용자에게 맞춰 진화되는 AI 서비스 ‘나만의 AI’를 제공하고 있다.

셋째, ‘AI 에이전트 마켓’이라는 신시장 창출 기회다. API의 발전으로 데이터 활용이 원활해지고 플랫폼 산업이 확장된 것처럼, AI 에이전트의 활용성이 높아질수록 직접 개발하지 않고 AI 에이전트를 쉽게 사용하고자 하는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쿠콘이 이 비즈니스 모델의 선구자가 될 수 있다. 쿠콘은 금융기관, 테크 기업,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데이터 서비스와 결제 서비스 등 300여 개의 API를 제공하며 성장해 왔다. 이런 경험을 AI 에이전트 마켓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여의도의 한 금융회사에서 만난 이현수(가명, 38세) 과장은 최근 그의 팀에 도입된 AI 에이전트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처음엔 일자리를 빼앗길까 봐 두려웠어요. 그런데 써보니 단순 업무는 에이전트에게 맡기고, 저는 더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생산성이 2배는 올랐죠.”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두려움도 감추지 않았다.

“문제는 에이전트가 매일 똑똑해진다는 거예요. 6개월 전만 해도 제가 검토해야 했던 작업들을 이제는 혼자서 다 해내요. 1년 후엔 어떻게 될지… 솔직히 불안합니다.”

이런 불안감은 이 과장만의 것이 아니다. 맥킨지는 AI가 모든 산업 분야에서 업무의 50%를 자동화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특히 AI 에이전트는 단순한 작업 자동화를 넘어 의사결정까지 지원하는 지능형 시스템으로서 업무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전망이 있다. AI 에이전트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기보다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1980년대 컴퓨터의 등장으로 사무직 근로자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간 것처럼, AI 에이전트도 결국 새로운 직업과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킬 것이라는 관측이다.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창업자 빌 조이는 “미래는 이미 도래했다. 단지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AI 에이전트도 마찬가지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AI 에이전트로 일상 업무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 기업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2025년은 AI 에이전트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원년이 될 것이다. 이 흐름에서 한국 기업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대한 종속화를 완화하고, 공공·금융 분야, 초개인화 서비스, AI 에이전트 마켓과 같은 틈새 시장에 집중해야 한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을 때, 촛불 제조업자들은 위기를 맞았다.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마차 제조업자들이 몰락했다. 역사는 기술 혁신이 항상 패자와 승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AI 에이전트라는 새로운 물결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미래는 이미 여기 와 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만 남았을 뿐이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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