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의 전광판과 방송국 앞에 줄 지어 선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는 시대, TV 광고는 어떻게 남아있는가.
아이지에이웍스 TV 애드 인덱스에 따르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TV 광고의 인식에 균열이 생겼다. 마치 오래된 벽에 갑자기 나타난 금처럼. 본방송과 재방송, 그 우열의 경계가 생각보다 훨씬 희미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2025년 1월부터 3월까지, 전국 950만 대의 셋톱박스 데이터를 분석한 이번 리포트는 광고 노출 횟수(건수)와 실제 시청자 수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포착했다.
표면적인 광고 평균 노출은 본방송이 188,924건으로 재방송(96,687건)의 약 1.9배에 달했다. 이는 우리의 직관과 일치한다. 당연히 본방송이 더 많이 노출되고, 재방송은 그보다 적게 노출된다. 그러나 중복을 제거한 실질적인 광고 시청자 수를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본방송 2,140만 명, 재방송 2,118만 명. 거의 차이가 없다. 이것은 마치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소박한 옷을 입은 사람이 결국 똑같은 거리를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채널 유형에 따라 재방송의 가치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상파의 경우, 본방송이 재방송보다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 KBS2, MBC, SBS 모두 재방송 광고 시청자 수가 본방송의 80~85%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마저도 기존 통념에 비하면 예상 외로 높은 수치다.
종편 채널들은 더욱 흥미로운 패턴을 보인다. JTBC, MBN, 채널A 세 곳에서는 재방송 광고 시청자 수가 오히려 본방송보다 1.1배 많았다. 유일하게 TV조선만이 본방송 우위(약 17%)를 유지했다. 종편 채널의 이러한 경향은 마치 낮과 밤의 구분이 흐려지는 황혼녘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케이블 채널은 재방송의 우위가 가장 두드러진다. tvN의 재방송 광고 시청자 수는 본방송 대비 1.2배, ENA는 무려 2.0배에 달했다. 이는 케이블 채널에서 재방송이 단순한 ‘반복’이 아닌 독자적인 콘텐츠 소비 창구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프로그램 장르별 분석은 더욱 명확한 패턴을 보여준다.
드라마와 예능은 재방송의 강자다. 특히 케이블 채널의 드라마 재방송은 본방송 대비 1.8배(본방 702만 명 vs 재방 1,237만 명)의 광고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예능 역시 케이블과 종편에서 재방송이 본방송을 앞서는 결과를 보였다. 이는 현대인의 시간대별 콘텐츠 소비 패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유연한 시청 행태가 반영된 결과다.
반면, 시사·교양과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본방송 중심의 시청 패턴을 보인다. 지상파 채널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본방송(1,673만 명)이 재방송(1,066만 명)보다 1.6배 많은 광고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이는 시의성과 정보의 신선도가 중요한 장르적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분석은 단순한 시청률을 넘어선 깊이 있는 데이터 분석의 결과물이다. KT의 950만 셋톱박스 데이터와 아이지에이웍스의 SCI(Synthetic Customer Intelligence) 기술이 만나 탄생했다. SCI는 모바일 사용성 데이터, 카드 결제 데이터, 기타 고객 행동 데이터 등 분산된 정보를 AI 기술로 연결하고 분석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데이터 기반 분석은 마치 숲에서 나무만 보던 시선을 확장해 숲 전체의 생태계를 조망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기존의 단순 지표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광고 효과의 다층적 측면을 드러낸다.
이번 발견은 광고주와 방송사 모두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재방송은 더 이상 ‘본방송의 그림자’가 아니라 독자적인 광고 플랫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특히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의 재방송은 때로 본방송보다 더 많은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광고 전략 수립 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채널과 장르에 따른 세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 각각의 특성과 장르별 시청 패턴을 고려한 맞춤형 광고 전략이 효과적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광고 노출 횟수라는 표면적 지표보다 실질적인 시청자 도달률을 중시하는 관점의 전환이 요구된다. 단순히 많이 노출되는 것보다 얼마나 많은 고유 시청자에게 도달하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수치는 TV 광고 시장의 조용한 혁명을 시사한다. 거대한 파도처럼 화려하게 밀려오는 본방송과 달리, 재방송은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시청자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이는 마치 대화 속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보다 때로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더 오래 기억되는 것과 같다. 본방송의 화려함 이면에, 재방송은 그 조용한 존재감으로 광고의 가치를 재정의하고 있다.
이번 데이터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광고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화려한 본방송의 일시적 관심인가, 아니면 재방송을 통해 조용히 깊게 파고드는 지속적 인상인가? 그 답은 이제 숫자가 아닌, 변화하는 시청자의 일상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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