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절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있다. 1884년 미국 방직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던 모습이었다. 141년 전의 일이다. “기계를 멈추자,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자,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 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해 동맹파업을 하자.” 이 세 가지 결의를 실천하기 위해 그들은 거리로 나섰다.
이어 1886년에는 미국노동조합총연맹이 설립되고 5월 1일 하루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한 총파업이 펼쳐졌다. 시카고 헤이마켓에서 벌어진 집회는 경찰의 유혈 진압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프랑스혁명 100주년이 되는 1889년, 파리에서 열린 제2차 인터내셔널에서 세계 각국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5월 1일을 노동절로 정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 얻은 권리는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당연한 것들은 쉽게 잊힌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많은 권리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임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이 보였다. 2025년의 출근길은 141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어떤 이들은 집에서 화면 속 가상 회의실로 출근한다. 어떤 이들은 로봇과 함께 일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여전히 공장과 건설현장에서 몸을 써서 일한다. 노동의 형태는 다양해졌지만, 생계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내어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특히 청년들은, 일터로 향하는 길 자체를 찾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3월 기준 15∼29세 청년 중 실업자는 26만9000명으로, 1년 전보다 5000명(2.0%) 증가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청년 비경제활동인구가 420만9000명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 중 ‘그냥 쉬는’ 청년은 50만4000명으로,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실업자와 비경제활동 인구 중 ‘쉬었음’ 또는 ‘취업준비자’인 청년을 모두 합치면 120만7000명에 이른다. 작년보다 7만명 넘게 증가한 수치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 이상 ‘쉬었음’ 경험이 있는 청년들의 쉬는 기간은 평균 22.7개월에 달했고, 그들 중 77.2%가 이 기간을 불안하게 인식했다. 절반 이상(58.2%)은 쉰 기간이 ‘경제적·심리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다고 답했다. 이들이 쉬었음을 선택한 이유로는 ‘적합한 일자리 부족'(38.1%)과 ‘교육·자기계발'(35.0%)이 가장 많았지만, ‘번아웃'(27.7%)과 ‘심리적·정신적 문제'(25.0%)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노동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다. 원시시대부터 우리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노동했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기계와 함께 일했다. 디지털 혁명은 많은 직종에서 노동의 방식을 변화시켰다. 일부 산업에서는 인공지능과의 협업이 일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는 전통적인 노동 방식이 유지되고 있다. 2025년의 노동 현장은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일부 직종에서는 단순 반복 작업이 자동화되고 있지만, 많은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람의 손과 발이 필요하다. 오늘날 노동자들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변화는 산업과 직종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많은 이들, 특히 청년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계청 자료로 살펴본 노동 현실은 냉혹하다. 일자리를 구한 청년들 중에서도 어려움은 있다. 2024년 3월 기준 청년층 중 조사 주간 취업 시간이 36시간 미만인 사람은 93만6000명이었다. 청년층 취업자가 355만7000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취업자 4명 중 1명은 주 5일 출근하는 전일제 근로자가 아닌 단시간 근로자인 셈이다. 이러한 현상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일부는 워라밸을 위한 자발적 선택일 수 있으나, 일자리 부족과 고용 불안정성 같은 구조적 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얼마 전 한 택배기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도 4대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저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예요”라고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의 사례가 모든 노동 현실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플랫폼 노동과 특수고용직의 증가라는 더 큰 추세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임은 분명하다.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2023년 기준 230만 명을 넘어섰다. 그들 중 상당수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1970년 11월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22세 청년 전태일의 외침은 시대와 상황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울려 퍼지고 있다.
2025년 노동절을 맞아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노동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인간 존엄성의 표현인가? 노동은 생존을 위한 필요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아실현과 사회 참여의 수단이기도 하다. 노동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기여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다.
세계는 지금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를 창출해왔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 속에서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지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5월 1일을 ‘노동절’이 아닌 ‘근로자의 날’로 부른다. 미묘한 차이처럼 보이지만, 두 용어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근로자’라는 말이 경제적 기여와 복지를 강조한다면, ‘노동자’라는, 그리고 ‘노동절’이라는 말은 투쟁과 권리, 그리고 연대의 역사를 담고 있다. 말의 차이가 인식의 차이를 만든다. 법정 공휴일인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최장 엿새에 달하는 연휴가 펼쳐지지만, 이마저도 누리지 못한 채 노동 현장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연민이 아닌 권리다.
19세기 말 노동운동과 오늘날 청년 실업 문제는 시대적, 사회적 맥락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근본적인 화두에서는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1884년 미국 방직노동자들이 외쳤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요구하고 있다. 당시에는 노동시간 단축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의미 있는 노동’과 ‘공정한 대우’에 대한 요구일 수 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노동을 통해 존엄을 지키려는 인간의 본질적 욕구는 변하지 않았다.
노동절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다. 노동의 가치를 되새기는 날이다. 자본주의 토대가 갖춰지기 시작하면서 생산성이라는 미명하에 스러지고 부서졌던, 또 맞서서 투쟁했던 노동자의 분투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권리의 밑거름이 되었다. 오늘 하루,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모든 사람의 노동이, 특히 아직도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의,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141년 전 미국의, 55년 전 청계천의 노동자들처럼, 우리도 더 나은 노동환경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 될 것이다.
2025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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