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오래전부터 불멸을 꿈꿔왔다. 신화 속 영웅들은 불멸을 향한 여정을 떠났고, 연금술사들은 불로장생의 비약을 찾아 헤맸다. 21세기에 들어서 불멸의 꿈은 기업의 형태로 나타났다.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스타트업, 이른바 ‘유니콘’이라 불리는 기업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불멸을 꿈꾸던 이 유니콘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신화 속 이카루스처럼 태양을 향해 너무 높이 날아올랐다가 추락한 것이다. 한때 220억 달러의 가치를 자랑하던 인도의 교육 테크 기업 BYJU’S는 이제 10억 달러 미만의 가치로 떨어졌다. 불과 몇 년 전까지 110억 달러(약 14조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공유경제의 미래’로 칭송받던 위워크는 2023년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한국의 2호 유니콘으로 불리던 옐로모바일은 누적 2,600억 원의 투자를 받고도 2024년 4월, 결국 폐업의 종착역에 도달했다.
이들은 왜 몰락했을까? 그 이유를 찾아보면 인간의 오래된 과오가 반복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신화가 된 기술, 현실이 된 몰락
종종 서점에 가서 경영서 코너를 둘러본다. 그곳에는 항상 성공한 기업가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실패한 기업가들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성공에 목말라 있지만, 실패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쓰러진 유니콘들의 이야기는 미래의 기업가들에게 귀중한 교훈이 될 수 있다. 최근 1~2년 사이에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신화의 추락’을 목격했다.
위워크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가 ‘미래를 바꿀 기업’이라며 열광했던 스타트업이다. 아담 뉴만이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창업자와 함께 공유오피스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비전으로 110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하지만 화려한 비전 뒤에는 만성적인 적자와 경영 실패가 숨어있었다. 결국 2023년, 위워크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전성기 때 470억 달러에 달했던 기업가치가 무너진 것이다. 마치 익시온의 수레바퀴처럼, 끝없는 성장이라는 환상이 결국 추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올리브AI는 헬스케어 분야의 유망주였다. 인공지능으로 병원 행정을 혁신하겠다는 비전으로 8억 5천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2023년 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트럭운송 플랫폼 콘보이는 9억 달러의 투자를 받고도 2023년 문을 닫았으며, 온라인 이벤트 플랫폼 호핀은 76억 달러의 기업가치와 16억 달러의 투자를 받고도 2023년 주요 사업을 1,500만 달러라는, 투자액의 1%도 안 되는 헐값에 매각했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옐로모바일은 ‘모바일 서비스의 혁명’을 약속하며 2,6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과 경영 악화로 2024년 4월 폐업 절차를 마무리했다. 농산물 유통 플랫폼 트릿지는 기업가치가 3조 4천억 원까지 올랐으나, 경영 악화로 투자사들이 지분을 상각 처리하면서 사실상 유니콘 지위를 상실했다.
인도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BYJU’S는 재정 관리 부실, 법적 분쟁, 기업 지배구조 문제로 가치가 급락했다. 자동차 서비스 스타트업 고메카닉은 재무 보고의 중대한 오류를 인정하며 직원의 70%를 해고해야 했다. 핀테크 기업 바랏페이는 자금 유용과 관련된 내부 갈등으로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불멸의 환상이 만든 비극
유니콘들의 몰락은 복합적이지만, 몇 가지 핵심 요인들이 눈에 띈다.
2023년부터 이어진 투자 혹한기와 자금 경색은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저금리 시대에 풍부했던 자금은 금리 인상과 함께 줄어들었고, 투자자들은 더욱 신중해졌다. 기업 가치는 하락했고, 이전과 같은 후속 투자를 유치하기 어려워졌다. 급속한 성장과 투자자의 열정에 의존하는 유니콘들은 이러한 변화에 특히 취약했다.
또한 유니콘들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지속 가능하지 않았던 경우도 많았다. 위워크는 장기 부채를 떠안으면서 단기 임대 사업을 확장했고, 호핀은 팬데믹 특수 상황에만 의존했다. 버드는 전기 스쿠터라는 새로운 이동 수단을 소개했지만, 도심 규제와 높은 유지보수 비용 앞에서 결국 뉴욕증시 상장폐지라는 결과를 맞았다.
인도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과 암호화폐법과 같은 새로운 규제들이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더했다. 또한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이 선도한 혁신을 모방하기 시작하면서 유니콘들은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들 유니콘의 ‘과대평가’ 문제다. 주택 건설 스타트업 비브는 6억 4,7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최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투자자들의 열정과 비현실적인 성장 기대에 의해 주도된 과대평가는 유니콘의 가장 큰 적이 되었다. 이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유니콘들은 그들이 떠오른 것만큼이나 극적으로 추락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화려한 성공 스토리에 매혹되는가? 그리고 왜 그 이면의 위험을 간과하는가? 아마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신화를 믿고 싶어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유니콘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신화 속 존재처럼, 그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환상을 준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10억 달러’라는 숫자는 단순한 평가가치가 아니라, 일종의 현대적 신화의 상징이 되었다.
쓰러진 거인들에게서 배우는 교훈
카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바위를 영원히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모습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이야기했다. 유니콘들의 몰락도 어쩌면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불멸을 향한 무모한 도전이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조건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실패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지배구조의 중요성이다. 여러 유니콘이 열악한 지배구조, 감독 부족, 내부 갈등으로 인해 무너졌다. 이러한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배구조가 필수적이다.
둘째, 성장보다 지속가능성이다. 성장에 대한 경쟁 속에서 많은 유니콘들은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데 소홀했다.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빠르지만 위험한 확장보다는 지속 가능하고 꾸준한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재정 규율이다. 건전한 재정 관리는 모든 비즈니스에 필수적이며, 특히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관리하는 기업에게는 더욱 그렇다. 스타트업은 과도한 확장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 지출과 현금 흐름 관리에 규율 있는 접근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
유니콘의 미래, 그리고 우리의 미래
인간의 불멸에 대한 꿈이 결코 사라지지 않듯이, 유니콘의 꿈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은 재조정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일부 유니콘이 사라지는 동안, 다른 유니콘들은 선배들의 교훈을 무장한 채 재탄생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유니콘들의 이야기가 결국 인간 본성에 관한 오래된 이야기의 현대적 변주라는 점이다. 오만과 탐욕, 그리고 불멸에 대한 갈망은 인간이 끊임없이 반복해온 패턴이다. 기업의 형태로 그것이 나타났을 뿐이다.
오늘날 쓰러진 유니콘들은 내일의 기업가들에게 귀중한 교훈을 제공한다. 그들 중 누가 재기할 것이고, 누가 창업 역사의 교훈적 이야기로 남을지는 시간만이 알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불멸을 꿈꾸던 이 현대의 신화적 생물들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실패에는 국가와 문화의 경계가 없다. 그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약점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실패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의 실패이고, 이들의 교훈은 우리 모두의 교훈이다.
아마도 진정한 성공은 불멸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한함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카뮈가 말했듯이, “시지프스를 행복한 사람으로 상상해야 한다.” 유니콘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가치는 영원히 10억 달러 이상을 유지하는 데 있지 않고, 세상에 진정한 가치를 제공하는 데 있다. 그것이 유니콘의 신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진정한 메시지일 것이다.
몇년 사이 우리는 수많은 유니콘이 추락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피닉스처럼 재탄생하는 기업들도 보았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유니콘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면, 그 다음은 어떤 시대가 올까? 아마도 더 현실적이고, 더 견고하고, 더 지속 가능한 기업들의 시대가 아닐까? 그것이 유니콘의 몰락이 우리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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