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원생 최 모 씨(26세)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하려던 찰나, 갑자기 브라우저에 빨간색 경고창이 떴다. “이 사이트는 사기 위험이 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였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다. 분명 평소 자주 이용하던 쇼핑몰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주소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발견했다. 진짜 쇼핑몰의 도메인에서 알파벳 하나가 바뀌어 있었다. “만약 이 경고가 없었다면 그냥 결제했을 텐데”라고 그는 중얼거렸다. 언제부터인가 컴퓨터가 사람보다 더 예리하게 위험을 감지하는 세상이 되었다. 안전해진 건지, 아니면 위험이 그만큼 정교해진 건지 모를 일이었다.
이상한 일일까? 아니다. 이것이 바로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방식이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선택은 더욱 어려워진다. 넘쳐나는 앱들 사이에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타인의 인증서를 끊임없이 찾는다. 인플루언서의 리뷰, 전문기관의 인증마크,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써본 사람들’의 경험담.
이런 변화를 감지한 플랫폼 업계는 이제 새로운 전략을 내놓고 있다. 사용자들이 안심하고 서로를 믿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하이퍼커넥트의 글로벌 영상 채팅 플랫폼 ‘아자르’가 최근 출시한 ‘아자르 배지’는 흥미로운 시도다. 이 배지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충분한 시간 동안 꾸준히 영상 통화에 참여하면서도 단 한 번의 제재를 받지 않은 사용자에게만 주어지는 일종의 디지털 훈장이다.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과거에는 예의바른 행동이 기본이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특별한 표시가 되어야 한다니.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세계의 현실이다. 매너가 기술적으로 측정되고, 알고리즘이 우리의 예의를 판단한다.
아자르의 이 시스템은 마치 초등학교 때 받던 ‘모범학생’ 스티커와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AI가 선생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제재를 받으면 배지가 즉시 회수되고, 한 달간 로그인하지 않아도 배지를 잃는다. 디지털 세계에서의 신뢰는 그렇게 쌓이고, 그렇게 무너진다.
구글의 접근법은 좀 더 직접적이다. ‘제미나이 나노’라는 AI를 앞세워 온라인 사기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크롬의 새로운 보안 도구는 기존보다 두 배 강력한 보호막을 제공한다고 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스팸 알림을 감지하는 AI 기능이다. 악성 웹사이트가 푸시 알림으로 사용자를 속이려 할 때, AI가 경고 메시지를 띄운다. 사용자는 그 경고를 보고 구독을 해지하거나 차단할 수 있다. 물론 AI가 실수했다고 판단되면 다시 허용할 수도 있다.
이는 마치 집 앞에 경비원을 세워놓은 것과 같다. 다만 이 경비원은 인간이 아니라 알고리즘이고, 24시간 잠들지 않는다. 때로는 무고한 방문객을 의심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인 듯하다.
인스타그램의 시도는 더욱 정교하다. AI가 청소년일 가능성이 있는 가짜 성인 계정을 자동으로 찾아내 10대 계정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성인이라고 거짓말하는 미성년자들을 AI가 걸러낸다는 뜻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아마도 사용 패턴, 관심사, 언어 사용법, 심지어는 접속 시간까지 분석해서 ‘이 사람은 실제로는 청소년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물론 성인이 청소년으로 잘못 분류된다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AI가 우리의 ‘진짜’ 나이를 맞힐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디지털 발자국을 정확하게 추적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틱톡의 ‘세이프티 페어링’ 업데이트는 한 발 더 나아간다. 부모가 자녀의 틱톡 사용 시간을 직접 조절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만 18세 이하 사용자의 기본 스크린 타임은 하루 60분. 더 오래 사용하고 싶다면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가족 관계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숙제 다 했니?”라고 물었다면, 이제는 “앱 사용 시간 다 찼니?”를 확인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심지어 자녀가 부적절한 콘텐츠를 신고하면 부모에게 알림이 간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부모의 눈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뜻일 터다.
결국 이 모든 변화는 한 가지를 말해준다. 디지털 세계가 성숙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초기의 무법지대에서 점차 질서와 규칙을 갖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물론 그 규칙을 만들고 집행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AI다.
우리는 이제 알고리즘의 판단을 받으며 살아간다. 매너 좋은 사용자에게는 배지를, 의심스러운 행동에는 경고를, 거짓말하는 미성년자에게는 적절한 보호를 제공한다. 이 모든 것이 인공지능의 눈을 통해 이루어진다.
과연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미래일까? 답은 간단치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제 그 이야기는 AI가 읽고, 분석하고, 때로는 보호해주는 세상이 되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이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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