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아침,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472번 2분 후 도착”이라는 글자가 깜빡였다. 스마트폰 앱에도 같은 정보가 떠 있었다. 2분 후 도착한 버스의 전면 전광판에 “잔여 좌석 7석”이라는 표시가 나타난 것이다. 경기도 광역버스에만 있던 이 시스템이 올해 서울 광역버스에도 설치되었다고 했다.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누군가가, 아니 무언가가 나를 위해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현재다. 도시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변화의 신호들은 이미 여기저기 있었다. 스마트폰 앱이 교통체증을 피해 우회로를 제안할 때, 온라인 쇼핑몰이 내가 찾지도 않았던 상품을 추천할 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내 취향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자동으로 만들어줄 때, 은행 앱이 지출 패턴을 분석해 가계부를 정리해줄 때. 우리는 그저 편리해졌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최근 딜로이트가 발표한 “AI 기반 스마트 도시의 현황과 미래” 보고서를 읽으며 나는 이런 일상의 변화들이 하나의 거대한 전환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 세계 250개 도시를 조사한 이 연구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AI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도시는 전체의 18%에 불과하지만, 3년 내 이 수치는 59%로 치솟을 전망이다. 생성형 AI의 경우는 더욱 극적이다. 87%의 도시가 이미 도입했거나 계획 중이라고 한다.
도시는 이제 우리를 관찰하고, 학습하고, 예측한다. 마치 거대한 뇌처럼 작동하면서 도시 곳곳에 신경망을 펼쳐놓고 있다.
서울의 심야에는 자율주행 버스가 조용히 거리를 누빈다. 운전자 제어 없이 정확한 노선을 따라 움직이는 그 모습을 처음 본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반응을 보인다. “저게 정말 혼자 다니는 거야?” 도시가 잠든 시간에도 깨어있는 버스. 어쩌면 이것이 AI 도시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변화를 목격하면서 나는 자꾸 한 가지 질문에 사로잡힌다. 과연 도시가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울, 뉴욕, 파리, 도쿄. 이들 AI 리더 도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보고서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이들은 단순히 기술을 도입한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학습체로 만들었다.
마드리드는 AI로 범죄를 예측한다. CCTV가 포착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경찰을 출동시킨다. 후쿠오카는 스마트 가로등으로 에너지를 절약한다.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필요한 곳에만, 필요한 만큼의 빛을 제공한다. 시애틀은 스마트 주차 시스템으로 드라이버들의 시간을 절약해준다. 빈 주차공간을 찾아 헤매는 시간을 줄여 CO2 배출량도 함께 낮췄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일상의 변화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도시가 24시간 깨어있으며 시민을 위해 최적화를 계속한다는 철학이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회복탄력성에 대한 수치다. 기후 변화에 대한 회복력이 높다고 응답한 도시 비율이 AI 리더는 71%, 그 외 도시는 42%였다. 공급망 회복력은 각각 69%와 30%로 격차가 더 크다. AI 리더 도시의 78%가 도시 문제에 대한 대응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했다. 이는 다른 도시보다 3배 높은 수치다.
그들은 미래를 기다리지 않고, 미래를 준비한다. 마치 인간이 위험을 예감하고 미리 대비하듯, 도시 전체가 하나의 직감체가 되어가고 있다.
AI 도시는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패턴을 학습하며,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교차로에는 신호 체계를 바꾸고,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는 조명을 늘린다. 시민들의 동선을 분석해 상가의 배치를 조정하고, 날씨와 계절에 따른 소비 패턴을 파악해 시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섬뜩한 상상이 든다. 도시가 나를 너무 잘 아는 것은 아닐까. 내가 언제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패턴으로 살아가는지를 도시가 훤히 꿰뚫고 있다면 말이다.
성공적인 AI 도시가 되기 위한 8가지 조건을 읽으며 나는 하나의 소설을 떠올렸다. 각각의 조건이 마치 인공생명체가 성장하는 단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탑다운 방식의 헌신이 첫 번째다. AI 리더 도시들의 기술 및 데이터에 대한 1인당 지출액은 약 160달러로, 다른 도시보다 33% 이상 많다. 단순히 예산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미래 도시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최신 IT 인프라다. 92%의 리더 도시가 통합 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도시 내외부의 모든 데이터를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에 모아두고, 언제든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았다. 마치 거대한 뇌가 기억을 저장하는 창고를 갖춘 것처럼.
세 번째는 AI 기술과 인재 확보다. 리더 도시의 60%는 AI 전담 책임자를 임명했다. 내부 교육과 외부 채용을 병행하며 도시 전체의 AI 역량을 끌어올린다. 기술은 결국 사람이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민관학 협력이다. 기업, 연구소, 대학, 스타트업이 모두 참여하는 AI 허브를 조성해 도시 전반의 기술 수준을 함께 끌어올린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 해나간다.
다섯 번째는 기술 융합이다. AI와 클라우드, 블록체인, IoT, 디지털 트윈 등을 결합해 교통 시뮬레이션, 환경 예측, 정책 테스트 등을 실현한다.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지능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해진다.
여섯 번째는 보안이다. AI가 발달할수록 사이버 위협도 정교해진다. 리더 도시들은 실시간 대응 체계를 갖추고 개인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신뢰 없이는 진정한 스마트시티가 될 수 없다.
일곱 번째는 책임감 있는 AI 사용이다. 알고리즘의 투명성, 시민 피드백 반영, 윤리 가이드라인 마련 등이 핵심이다. 효율성만이 목표가 아니라 공정성과 투명성도 함께 추구한다.
여덟 번째는 지속적인 혁신이다. 일회성 도입으로 끝나지 않고 생성형 AI, 에이전틱 AI 등 신기술을 발빠르게 채택해 실제 서비스에 접목한다. 도시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계속 진화해야 한다.
이 모든 조건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도시를 키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아이를 기르듯, 인내와 관심과 투자로 도시를 조금씩 더 똑똑하게, 더 따뜻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모든 변화에는 그림자가 따른다. 생성형 AI의 잘못된 정보 생성, 개인정보 유출, 데이터 편향성,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 등이 우려되는 지점들이다.
특히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도시가 나를 너무 잘 안다는 점이다. 내가 어디를 자주 가는지, 언제 집을 나서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AI가 분석하고 있다면, 과연 그것은 편의일까 감시일까.
얼마 전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광고가 너무 정확해서 무서워. 내가 생각도 안 했던 걸 미리 추천해줘.” AI 도시의 미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도시가 내 필요를 미리 예측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내 행동을 통제하려 드는 것 사이의 경계는 어디인가.
최근 나는 한 카페에서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바리스타가 AI 추천 시스템을 보며 고객에게 음료를 권했다. “시스템이 당신의 취향을 아침형이라고 분석했는데, 이 블렌드는 어떠세요?” 고객은 웃으며 “그럼 그걸로 할게요”라고 답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기술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 잘 이해하고 돕는 데 있다는 것을.
한동현 딜로이트 그룹 파트너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닌, 그것을 통해 시민의 삶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개선하느냐”다. 도시의 뇌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그 목적이 시민의 행복이 아니라면 무의미하다.
실제로 AI 리더 도시들이 가장 중점을 두는 분야를 보면 이런 철학이 드러난다. 정부 운영의 효율화(71%), 안전과 보안 향상(63%), 시민 생활의 질 개선(61%), 교통 최적화(57%), 인프라 유지관리(55%), 환경 지속가능성(45%). 모든 것이 결국 시민을 위한 것들이다.
도시는 이제 더 이상 콘크리트와 철근만으로 지어지지 않는다. 도시의 뇌는 AI가 되고, 신경망은 데이터가 되며, 숨결은 시민의 목소리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질문들이 남아있다. 이 도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AI가 내린 결정들이 정말 우리를 위한 것인가. 우리는 도시의 주인인가, 아니면 관리 대상인가.
어쩌면 진정한 스마트시티는 답을 제공하는 도시가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는 도시일지도 모르겠다. 시민들에게 묻고, 스스로에게 묻고, 미래에게 묻는 도시 말이다.
도시가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우리가 생각을 멈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이, 더 자주 생각해야 한다. 이 변화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우리가 정말 원하는 미래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없는지를.
나는 오늘도 버스정류장에서 전광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생각한다. 이 도시가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때로는 조금 섬뜩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 아닐까.
도시의 뇌가 깨어나는 이 시간, 우리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기술이 만들어주는 편리함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없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도시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인가. AI는 수단일 뿐이다. 목적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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