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이란 기다림의 연속이다. 손흥민의 첫 우승 트로피를 향한 기다림은 정확히 15년이었다. 그리고 스페인 빌바오의 산 마메스 경기장, 그곳에서 마침내 기다림은 끝이 났다.
무관의 족쇄를 끊은 밤
토트넘 홋스퍼는 UEFA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0으로 꺾고 우승했다. 전반 42분 브래넌 존슨의 결승골이 승부의 향방을 결정했다. 토트넘은 2007-2008 시즌 잉글랜드 리그컵 이후 17년 만에 공식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숫자는 때로 모든 것을 말해준다. 17년이라는 시간은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는 시간과 맞닿아 있다.
빌바오의 밤은 차가웠다. 하지만 경기장은 뜨거웠다. 양팀 팬들의 함성이 스페인의 밤하늘을 가득 채웠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 물결과 토트넘의 흰색 물결이 경기장을 양분했다. 승자에게는 영광을, 패자에게는 아픔을 안겨줄 90분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경기는 초반부터 팽팽했다. 두 팀은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중원 싸움을 벌였다. 토트넘은 앙헬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공격적인 전술을 바탕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압박했다. 그리고 전반 42분, 기회가 찾아왔다. 페드로 포로가 오른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브래넌 존슨이 골문 앞에서 정확하게 마무리했다. 1-0. 토트넘의 17년 갈증을 해소할 골이었다.
손흥민은 발 부상으로 인해 결승전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는 벤치에서 시작했다. 모든 선수가 그러하듯, 그 역시 선발 출전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후반 22분, 부상당한 히샤를리송을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았다. 약 30분간 그는 팀의 리드를 지키기 위해 뛰었다. 주장다운 헌신이었다.
그가 그라운드에 들어섰을 때, 토트넘 팬들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 경기가 손흥민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15년 동안 기다려온 순간이 30분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손흥민은 부상을 안고도 최선을 다했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을 차단하고, 때로는 역습을 이끌었다. 마지막 휘슬이 울렸을 때, 그의 얼굴에는 안도와 기쁨이 교차했다.
15년의 여정, 첫 트로피의 의미
우승이란 때로 운명처럼 찾아온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프로 데뷔한 이후 레버쿠젠과 토트넘에서 뛰면서 손흥민은 여러 차례 결승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표팀에서도 메이저 대회 우승 경험이 없었다. 이제 그는 ‘무관의 한’을 풀었다. 커리어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손흥민의 유럽 축구 여정은 2010년 함부르크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그는 18세, 이제 막 유럽 무대에 발을 디딘 어린 선수에 불과했다. 어떤 이들은 그가 독일 무대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손흥민은 그들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성장했다. 함부르크, 레버쿠젠을 거쳐 2015년 토트넘에 입단한 그는 프리미어리그의 거친 환경에서도 빛을 발했다.
토트넘에서 그는 2016-2017 시즌 프리미어리그 준우승, 2018-201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20-2021 시즌 리그컵 준우승 등 세 번의 결승에서 모두 우승을 놓쳤다. 우승과 그 사이에는 항상 ‘거의’라는 단어가 존재했다. 거의 우승할 뻔했지만, 결국 우승하지 못했다. 그 ‘거의’라는 단어는 손흥민을 오랫동안 괴롭혔다.
“항상 무언가 부족했어요.” 손흥민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 부족함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항상 마지막 순간에 무언가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어요. 우리 모두가 믿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첫 우승의 가치는 그것이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에 비례한다. 15년의 기다림 끝에 얻은 이 트로피는 손흥민에게 그 어떤 개인상보다 값진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금속 조각이 아니라, 그의 인내와 헌신,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정신의 증표였다.
토트넘의 17년 갈증, 그리고 미래
토트넘 홋스퍼는 영국 축구의 명문이지만, 트로피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8년 리그컵 우승 이후 17년 동안 그들은 ‘거의 우승’ 팀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 시절 프리미어리그에서 2위를 차지했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지만 우승은 없었다. 조세 모리뉴 감독 아래서도 리그컵 결승에 올랐지만, 역시 준우승에 그쳤다.
이제 앙헬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토트넘의 ‘우승 가뭄’을 끝냈다. 호주 출신의 이 감독은 토트넘에 부임한 첫 시즌부터 팀에 새로운 철학을 불어넣었다. 공격적이고 대담한 축구. 때로는 위험해 보이는 그의 전술은 결국 유로파리그 우승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이 우승은 단순히 트로피 하나를 얻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경기 후 말했다. “이것은 토트넘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입니다. 우리는 이제 겁쟁이 축구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대담하게, 용감하게 플레이할 것입니다.”
우승은 단순한 트로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토트넘은 이번 우승으로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확보했다. 성공이 또 다른 성공의 기회를 만드는 순간이다. 챔피언스리그 출전은 더 좋은 선수들을 영입할 기회를 제공하고, 클럽의 재정적 안정에도 기여한다. 유로파리그 우승은 토트넘의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아시아 축구의 이정표
또한 손흥민은 이번 결승전 출전으로 아시아 선수 최초로 UEFA 주관 양대 클럽 대항전(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결승전에 모두 출전한 기록을 세웠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지만, 최초라는 타이틀은 영원히 손흥민의 것이다.
손흥민은 단순한 축구 선수를 넘어 한국, 나아가 아시아 축구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는 아시아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프리미어리그 골든부트를 차지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 토트넘의 주장이 된 최초의 아시아 선수, 그리고 이제 유럽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주장이 된 최초의 아시아 선수.
그의 성공은 수많은 아시아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아시아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손흥민이 걸어온 길은 이제 하나의 길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따라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되었다.
“저는 항상 제가 대표하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손흥민은 말했다. “토트넘을 대표하고, 한국을 대표하고, 아시아를 대표합니다. 이것은 큰 책임감을 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부심도 줍니다. 저는 항상 최선을 다해 그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새로운 시작, 그리고 또 다른 기다림
토트넘의 17년 간의 트로피 갈증, 손흥민의 15년 우승 갈망.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간이 2025년 5월 22일, 스페인 빌바오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 교차점에 우승이라는 결실이 자리했다.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것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다고 한다. 손흥민과 토트넘의 우승이 그렇다. 기다림은 끝났다. 그러나 새로운 기다림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도전, 그것이 그들의 새로운 목표가 될 것이다. 우승의 맛을 본 자는 더 큰 우승을 꿈꾼다. 이것이 스포츠의 아름다움이자 잔인함이다.
손흥민은 이제 33세, 축구 선수로서는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의 열정과 헌신은 여전히 젊다. 그는 여전히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싶어한다. 더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더 많은 역사를 만들고 싶어한다.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손흥민은 우승 후 말했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저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더 많은 승리, 더 많은 트로피, 더 많은 순간들. 축구는 제 인생이고, 저는 제 인생의 모든 순간을 즐기고 싶습니다.”
무관의 족쇄를 끊은 손흥민. 이제 그는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더 이상 ‘무관의 손흥민’이라는 꼬리표는 없다. 그저 ‘챔피언 손흥민’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그가 항상 꿈꿔왔던 모습일지도 모른다.
축구는 때로 인생과 닮아있다. 승리와 패배, 기쁨과 슬픔, 그리고 끝없는 기다림. 손흥민은 15년을 기다렸고, 그 기다림의 끝에서 우승이라는 보상을 받았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그의 끈기와 인내의 결실이었다.
2025년 5월 22일, 스페인 빌바오의 산 마메스 경기장. 그곳에서 손흥민은 마침내 자신의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영원히 축구의 역사에, 그리고 그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