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스타트업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 2025 (c)플래텀

5월 22일과 23일, 창원에서 무언가가 일어났다.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 2025라는 이름 아래 200여 명의 사람들이 창원컨벤션센터에 모여들었다.

마치 서로 다른 강물들이 하나의 바다로 흘러들어가듯, 서울에서, 부산에서, 대구에서, 그리고 더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왔다. 각자 다른 이유로, 다른 기대를 품고 이 이틀간의 여행을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서로 다른 마음이 ‘스타트업’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연결되어 있었다.

투자자들이 있었고,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기업 임원들과 대학 관계자들, 그리고 창업을 지원하는 다양한 기관에서 온 사람들까지.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이 컨퍼런스는 작은 군도 같았다. 겉으로는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바닷속 깊은 곳에서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그런 군도.

그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끼리는 자주 만난다. 밋업도 많고, 네트워킹 행사도 많다. 하지만 그들을 뒤에서 지원하는 사람들, 바로 자신들 같은 사람들끼리 만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이틀이 더욱 소중했다.

첫날, 지구 반대편 이야기들

오후 1시, 박준성 레전드캐피탈 Co-CIO가 무대에 올랐다. 그가 들려준 건 중국 AI 산업의 이야기였다. ‘기술 강국으로의 질주’라는 부제가 붙었지만, 사실 그의 이야기는 질주보다는 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한.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우리의 현재를 말했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업데이트. 숫자와 그래프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박이안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파트너는 미국을 가져왔다. 인공지능 시대의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 이창환 RISE Worldwide Capital 매니징 파트너는 일본의 이야기를 했다. 같은 아시아이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일본 스타트업들의 현실을.

200여 명의 참석자들은 귀를 기울였다. 때로는 고개를 끄덕였고, 때로는 메모를 했다. 질문이 오가고, 토론이 이어졌다.

오후의 구체적인 풍경들

안희철 법무법인 디엘지 대표변호사가 이야기한 ‘Beyond Borders’는 단순한 법적 이슈가 아니었다. 스타트업 플립이라는 복잡한 퍼즐 앞에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국경을 넘나드는 비즈니스의 현실과 그 안에 숨어 있는 함정들.

김양하 네이버 D2SF 수석의 발표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거꾸로, 오래 뛰면서 배우는 것들’. 10년 동안 CVC를 운영하며 배운 것들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깨달은 인생의 교훈 같은 것이었다.

김봉덕 중소벤처기업부 벤처국장은 정부의 역할을 말했다. 김석관 STEPI 선임연구위원이 던진 질문은 무거웠다. ‘스타트업의 실패, 어떻게 축적할 것인가?’ 실패를 어떻게 자산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패널토크에서는 더 깊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김보미 디캠프 실장이 진행한 두 번째 세션에서 사람들은 평소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저녁 네트워킹 시간에는 공식적인 무대에서 벗어나 진짜 대화가 시작되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 200여 명 모두의 얼굴에는 어떤 연대감 같은 것이 스며 있었다.

둘째 날, 바이오와 투자의 세계

23일 오전 9시 30분. 김영록 GREE LP Fund 파트너가 VC 2.0을 말했다. 펀드 오브 펀즈가 보는 VC의 미래. 어떤 면에서는 투자의 투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메타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벤처 캐피털의 진화.

이병건 지아이이노베이션 고문이 바이오 스타트업 생태계를 분석했다. ‘다른 법칙, 다른 도전’이라는 부제가 모든 걸 말해주었다. 바이오는 정말 다른 세계였다.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는 창업자의 시선으로 그 세계를 보여주었다. 구영권 스마일게이트 인베스트먼트 바이오/헬스케어 부문 대표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바이오의 특수성을 설명했다.

임정욱 중소벤처기업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이 진행한 패널토크에서는 바이오 생태계의 복잡한 지형이 드러났다. 점심시간에도 대화는 계속되었다.

오후, 변곡점에서의 성찰

강재민 경상남도청 사무관이 지역과 공공 펀드의 역할을 말했다. 중앙과 지방, 민간과 공공 사이의 미묘한 균형에 대한 이야기였다. 윤보원 하나증권 Club1한남 센터장은 자산가들의 선택을 분석했다. WM 관점에서 본 스타트업 투자. 돈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에 관심을 두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통찰이었다.

윤소정 KB인베스트먼트 이사는 세컨더리 투자를 설명했다. 투자의 투자를 다시 투자하는, 복잡하지만 현실적인 금융의 메커니즘. 도은욱 브이원씨(클로브) 대표는 벤처대출 시장 개척기를 들려주었다. 데이터가 어떻게 금융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전무가 마지막 패널토크를 맡았다. 하루 종일 쌓인 이야기들이 하나의 큰 그림으로 모이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이틀 동안 계속 맴돌던 생각이 있다. 사람들은 인재, 자본, 정책이라는 세 가지를 이야기했지만, 정작 중요한 건 이 세 가지가 어떻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가였다.

창업자들은 투자자를 만나기 위해 애쓰고, 투자자들은 정부 정책의 변화를 예의주시한다. 정부는 창업자들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하지만 결국 자신들의 논리로 정책을 만든다. 2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각자는 여전히 자신의 언어로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투자자는 말했다. “좋은 창업자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우리가 정말 좋은 창업자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 질문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자본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정작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을까. 정책이 실험적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실험이라는 것은 실패를 전제로 하는데 우리는 실패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인재나 자본이나 정책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벤처투자자가 창업자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창업자가 투자자의 부담을 이해하고, 정부가 둘 다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 말이다.

그날 저녁 네트워킹 시간에 한 창업자가 중얼거렸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건데.” 맞다. 같은 배를 타고 있다. 그런데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노를 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보다는, 지금이라도 같은 방향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혁신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말이다.

새로운 파트너십의 시작

이런 성찰의 분위기 속에서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중요한 발표를 했다. 신규 회원사 22개사가 합류한다는 것이었다. 기존 네이버 한 곳의 후원에서 총 23개사로 확대되는 변화. 어찌 보면 작은 숫자의 변화였지만, 그 의미는 컸다. 생태계 전반으로 협력의 네트워크가 확산되는 것이었다.

새로운 회원사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지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디캠프, 알토스벤처스, 고위드, 두나무앤파트너스, 매쉬업벤처스, 뮤렉스파트너스, 베이스벤처스, 법무법인 미션, 블루포인트, 시그나이트, 스파크랩, 스트롱벤처스, 아마존웹서비스, 지란지교소프트, 카카오, 티비티파트너스, 프라이머, 퓨처플레이,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에스비브이에이, IMM인베스트먼트, Judy Chang Law Firm.

이들의 공통점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이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현실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구성이었다.

이기대 센터장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 파트너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사업 구축에 집중할 예정이다.” 확장보다는 깊이를 선택한 것이었다.

11년, 생태계와 함께 자란 시간

2014년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시작될 때,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는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고, 창업은 여전히 ‘마지막 선택’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벤처 투자 규모도 지금의 십분의 일 수준이었고, 정부 지원도 이제 막 걸음마를 떼던 상황이었다.

그 11년 동안 무엇이 바뀌었을까. 숫자로 보면 극적인 변화다. 투자 규모는 수십 배 늘었고, 유니콘 기업들이 하나둘 등장했다. 창업 지원 기관들이 전국에 생겨났고, 정부 정책도 훨씬 정교해졌다.

하지만 이번 창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깨달은 것은, 성장의 속도만큼 복잡해진 현실이었다. 초기에는 단순히 ‘더 많은 창업, 더 많은 투자’가 목표였다면, 이제는 ‘어떤 창업, 어떤 투자’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한 투자자가 말했다. “11년 전에는 스타트업을 찾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좋은 스타트업을 찾기 어려워졌어요.” 생태계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하는 지점에 서 있다는 뜻이었다.

200명이 창원에서 나눈 대화들이 각자의 일터에서 작은 변화들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성숙한 생태계의 모습일 것이다. 11년간 함께 자라온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이제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창원컨벤션센터는 조용해졌지만, 여기서 시작된 대화들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생태계가 자라는 방식이니까.

(c)스타트업얼라이언스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현장 중심으로 취재하며, 최신 창업 트렌드와 기술 혁신의 흐름을 분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댓글

Leave a Comment


관련 기사

스타트업 이벤트

스타트업얼라이언스 회원사 23개로 확대…네이버 단독 후원 체제 전환

이벤트 트렌드

“지도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 데이터 반출과 국가 경쟁력

트렌드 인사이트

‘대한민국 경제의 전환점’ 차기 정부가 주목해야 할 스타트업 정책

트렌드

인공지능의 물줄기, 우리는 어떤 제방을 세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