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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여성 직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지영 전문위원이 11일 열린 ‘2025 우스컨’에서 ‘스타트업 성평등 현황’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사진=스타트업얼라이언스

“그 많던 여성 직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11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엔스페이스에서 열린 2025 우스컨(Women in Startup Conference)에서 이지영 전문위원이 던진 이 질문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같은 날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국내 스타트업 내 여성 리더십 현황을 진단하는 『스타트업 리더십과 성별 다양성: 혁신의 균형을 찾아서』 리포트를 발간했다.

“이 업계에 주니어로 들어왔을 때 분명히 여성 동료들이 많이 있었는데 팀장, 본부장, 임원 갈수록 여성들이 현저히 줄어들고 거의 안 보이게 된다”는 이지영 전문위원의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연구였다. 그리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여성 관리자 25.3%, 임원 13.7%. 200개 스타트업과 500명의 재직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다. 혁신을 외치는 젊은 기업들조차 인사 구조만큼은 전통적이었다.

기업이 클수록 더 기묘한 현상이 나타난다. 소규모에서 13.8%이던 여성 임원 비율이 중간 규모에서 16.4%로 잠깐 올라갔다가, 대형으로 가면 10.5%로 뚝 떨어진다. “큰 기업에서는 여성의 경영진 진입이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는 이지영 전문위원의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성장이라는 사다리를 오를수록 여성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스템이다.

업종별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교육 41.9%, 식품·농수산 34.6%의 여성 관리자 비율을 보이는 반면, 하드웨어·제조는 12.0%, 딥테크는 14.3%에 그친다. “기술집약 산업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관리직 진출이 제한적”이라고 이지영 전문위원은 지적했다. 혁신을 논하는 기업들이 정작 가장 전통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아이러니다.

연봉 격차는 더 적나라하다. 여성의 연봉 중위값은 남성의 77.4% 수준. 4,400만 원 대 5,700만 원. 1-3년차 500만 원 차이가 11-15년차에는 1,500만 원으로 벌어진다. “경력이 누적될수록 승진 그리고 보상 모든 과정에서 불균형이 발생한다”고 이지영 전문위원은 분석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기획·경영과 금융·재무 분야다. 이 분야들은 여성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백오피스 직무로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남성 6,800만 원 vs 여성 4,500만 원(기획·경영), 남성 8,000만 원 vs 여성 4,000만 원(금융·재무)의 격차를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벌어지는 간극. 그 틈 사이로 누군가의 선택지들이 조용히 사라진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인식과 현실의 괴리다. 구성원들은 “우리 조직은 성별과 무관하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답했다(3.71점). “성별에 따른 차별이나 배제가 없다”고도 느낀다(3.64점). 하지만 “관리자 중 여성 구성원이 적절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는가? 3.15점으로 뚝 떨어진다.

공식적인 성별 다양성 정책을 갖춘 기업은 23%에 불과하다. 37.5%는 관련 제도 자체가 없다. 그럼에도 구성원들은 “우리 회사는 성별 차별이 없다”고 답한다. “실질적인 제도 마련과 실행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성평등 개선이 어렵다”고 이지영 전문위원은 진단했다. 차별이 너무 일상적이어서 차별로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데이터는 반전을 제시한다. 여성 관리자 비율이 높은 기업들이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낸다는 것. 상위 25% 기업의 영업이익 퍼센타일 평균은 56.6, 하위 25%는 46.6이다. 영업이익 상위 25%를 차지하는 기업의 비율은 여성 관리자 비율 상위 그룹에서 34%, 하위 그룹에서는 9.8%. 무려 3배 이상의 차이다.

“성별 다양성이 경영 성과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이지영 전문위원은 결론지었다. 맥킨지, 블랙록, 베인앤컴퍼니 등 글로벌 컨설팅사들이 수년간 주장해온 바가 한국 스타트업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조직문화와의 상관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관계지향적이고 혁신지향적인 문화를 가진 기업일수록 여성 리더 비율이 높다(상관계수 0.2). “관계지향 문화와 혁신지향 문화는 시대적으로 그리고 조직 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될 조직문화”라고 이지영 전문위원은 설명했다. “성별 다양성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될 기업들의 방향과도 굉장히 부합한다”는 것이다.

한국 스타트업들의 조직문화를 분석한 결과, 과업지향문화(38%), 혁신지향문화(36.5%), 관계지향문화(33%) 순으로 나타났다. 위계지향문화는 16.5%에 불과하다. 경직된 위계에서는 기존 질서가 재생산되지만, 유연한 구조에서는 능력이 배경보다 앞선다.

딜로이트(2025) 연구에 따르면, MZ세대는 상명하달식 의사결정보다 참여 기반의 소통과 심리적 안정감, 다양성 존중을 중시한다. 관계지향문화와 혁신지향문화는 단지 여성 리더십을 증진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속가능경영, 미래 인재 유치, 환경 변화 대응력 제고 측면에서 오늘날 스타트업이 지향해야 할 ‘시대적 조직문화’다.

“성별 다양성이 예전에 얘기했던 형평성을 실현하기 위한 과제가 아니라 조직의 혁신, 지속가능성, 인재 유치, 경영 성과를 좌우하는 전략적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이지영 전문위원은 강조했다. 이것이 핵심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은 OECD 유리천장 지수에서 29개국 중 28위다. 13년 연속 최하위권을 맴돌다가 2024년에야 겨우 한 계단 올라섰다. 세계경제포럼 글로벌 성 격차 지수에서도 146개국 중 94위에 머물렀다. 느린 변화지만 변화는 변화다. 문제는 시간이다.

“스타트업은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초기부터 아예 이게 내재화되고 다양화하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이지영 전문위원은 제언했다. 위계지향문화(16.5%)에서 관계지향문화(33%)와 혁신지향문화(36.5%)로의 전환을 가속화해야 한다. 현재 23%에 불과한 공식적 다양성 정책 보유 기업을 늘려야 한다. 초기부터 다양성과 포용성을 조직 DNA에 새겨넣어야 한다.

변화의 조짐은 곳곳에 있다. 23%의 기업이 이미 공식적인 다양성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작은 시작이지만 의미는 크다.

IT 기업들이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걱정하는 시대다. 그런데 정작 그 알고리즘을 만드는 조직 자체가 편향되어 있다면? 편향 없는 미래를 설계하려는 편향된 현재. 이 역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절반의 재능을 활용하지 못하는 미래인가, 아니면 모든 가능성이 꽃피는 미래인가.

다양성이 곧 경쟁력인 시대, 스타트업은 ‘혁신의 균형’을 갖춘 조직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기술혁신과 조직혁신, 성과추구와 다양성 확보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 그것이 지속가능한 성장의 열쇠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숫자로 나타날 것이다. 냉정하고 정확하게.

“그 많던 여성 직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우리가 만들어갈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답은 이미 데이터 속에 있다.

2025 우스컨 현장 / 사진=스타트업얼라이언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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