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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원래 그런 거야’ vs ‘정말 그럴까?’… 4명이 던진 질문의 힘

11일에 열린 2025 우스컨(Women in Startup Conference)에서 연사들이 패널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양효진 채널코퍼레이션 세일즈팀 리드, 박미정 당근 공통서비스개발팀 리더, 서혜란 토스뱅크 CFO, 고아라 직방 사회적가치전략실장 / 사진=스타트업얼라이언스

어떤 사람은 정해진 길을 걷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길을 만든다. 11일 오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엔스페이스에서 열린 ‘2025 우스컨(Women in Startup Conference)’에서 만난 네 명의 여성은 후자였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여성 관리자는 네 명 중 한 명, 임원은 일곱 명 중 한 명꼴이다. 그 수치의 뒤편에서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온 이들이 들려준 것은 화려한 성취담이 아니었다. 고정관념과 마주하고, 편견을 깨뜨리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온 과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착각에서 깨달음으로

당근의 박미정은 자신을 “14년 개발자, 8년 리더”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일곱 가지 착각의 목록을 꺼내놓았다.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착각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경험이 적어도 리더 역할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첫 번째 착각이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충분한 시행착오가 쌓인 만큼 더 나은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사내 로그 시스템을 개발할 때의 일을 들었다. 한 팀원이 합리적인 해결책을 가져왔다. 요구사항도 만족시키고 리소스도 적당히 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머지않아 보안 정책이 바뀔 텐데, 그 방안으로는 일부만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예측은 어디서 나올까요? 많은 시행착오 경험에서 나와요. 그래야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두 번째 착각은 더 흥미로웠다. “팀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내가 먼저 해야 한다”는 강박. 성과 높은 개발자였던 그는 팀의 중요한 문제를 늘 가장 먼저 해결하려 했다. 그러다 팀원에게서 직격탄을 맞았다. “중요한 일은 다 리더가 하시네요. 저는 하면 안 되는 건가요?”

그제야 깨달았다. 팀에서 일어나는 일은 팀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리더가 모든 문제를 혼자 처리하면 다른 이들의 성장 기회를 빼앗는다는 것을.

“누가 오더라도 훌륭한 엔지니어가 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자.” 네 번째 착각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처음에는 높은 기준을 세웠다. 이 정도 경험, 이런 역량을 가진 사람만 채용하겠다고. 하지만 깨달았다. 지금 필요한 사람은 계속 바뀐다는 것을.

이제 그는 채용 기준을 높이는 것보다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어떤 사람이 와도 빠르게 팀에 적응해서 발전할 수 있는 문화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세일즈에 대한 편견 깨기

채널코퍼레이션의 양효진에게 세일즈는 한때 피하고 싶은 영역이었다. 인맥, 담배 타임. 그런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CX 매니저에서 세일즈로 이직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어떻게 저런 험한 일을 하지” 싶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대표 한 권의 책을 건넸다. ‘챌린저 세일’. 거기서 그는 ‘세일즈 3.0’이라는 개념을 만났다. 관계나 제품 비교가 아닌, 고객에게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세일즈.

“‘이거 되게 좋은 제품이네요’라고 하면 세일즈가 실패한 거예요.” 그의 말이 흥미로웠다. “대신 ‘당신을 만나 시야가 트였다’는 말을 들어야 해요.”

채널톡의 성공 사례 콘텐츠가 그 증거였다. 30분짜리 영상에서 자사 제품 언급은 5분도 안 된다. 나머지는 순전히 고객의 비즈니스 고민과 해결 과정 이야기다. 그런데도 51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B2B에서 이 정도 수치는 쉽지 않은 일이다.

“비슷한 버티컬에 비슷한 규모라면 고민이 대부분 비슷해요.” 그의 설명이 핵심을 짚었다. “그러다 보니 고객이 먼저 채널톡을 찾아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어요.”

하지만 3세대 세일즈라고 해서 감정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었다. 채널톡은 구체적인 시스템으로 ‘SPICED’라는 프레임워크를 도입했다. 그중에서도 ‘임팩트’라는 지표가 핵심이었다.

“고객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지표가 언제까지 달성되어야 하는지 합의하는 거예요. 숫자로 정확하게 정의해야 해요.”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임팩트를 세일즈 전 과정의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이었다. “임팩트가 없으면 딜로 인정하지 않아요. 가져오지 않으면 딜이 아니라는 프로토콜을 만들어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가치 중심 세일즈로 변하면서 여성들이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되고 있어요.” 그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었다. 관계 중심에서 인사이트 중심으로, 설득에서 공감으로 바뀌는 세일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사진=스타트업얼라이언스
대관업무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직방의 고아라 실장은 “밥 먹고 사람 만나는 일”이라는 시선과 마주해야 했다. 대관업무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이었다. 하지만 그가 들려준 도어락 이야기는 그 편견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우리 집 도어락을 살펴보라. AA 건전지가 6개, 8개씩 들어간다. 빨리 닳아서 자주 교체해야 한다. 반면 해외 도어락은 충전식이다. 영상통화, 안면인식, 홍체인식까지 되는 혁신적 기능들이 기본이다.

차이의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나라에는 2차 전지를 도어락에 탑재할 수 있는 안전 기준이 없어서였다.

직방이 스마트홈 시장에 진출하면서 마주한 현실이었다. 예쁜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고 싶은데 건전지 공간 때문에 제약이 생긴다. 해외 수출을 위해서는 내수용과 수출용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비효율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니까 규제를 풀어달라”고 하지 않았다. 더 큰 그림을 그렸다. 산업 혁신과 환경 가치, 국가 경쟁력이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했다. 결국 올해 5월 법이 개정됐다.

“외부에서 질의가 왔을 때 누가, 언제, 왜 이 질문을 했는가를 파악하는 게 핵심이에요.”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조언이었다. 상대방의 진짜 의도를 알아야 내부를 설득할 수 있고,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필요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것.

7년 전 PR팀으로 입사한 그가 지금 대외정책 실장이 된 비결을 물었다.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았어요. ‘이거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라며 계속 제안했죠. 번거로움을 자초한 거죠. 하지만 그런 일들이 성과로 이어지면서 조직이 저를 찾게 됐어요.”

스스로 만든 한계선 지우기

토스뱅크의 서혜란 CFO가 전한 메시지는 명확했다. “한계를 긋는 순간 도전은 멈춘다.”

HSBC 부산 지점 텔러로 시작해 아시아 전체 자금운용 책임자까지 올라간 그에게 기자들이 늘 묻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여성인데 CFO가 되셨어요?”

그는 토스뱅크 이은미 CEO의 답변을 소개했다. “여성이 CEO이고 CFO인 건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서울 딜링룸에 처음 왔을 때를 떠올렸다. 20명 중 여성은 1-2명뿐이었다. 스카이 대학 출신들 사이에서 지방대 출신인 자신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MBA도 없었고, 영어도 그리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내 한계로 만들지 않았어요.” 그의 말이 핵심이었다. “한계를 만드는 순간 그게 진짜 약점이 돼버려요.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건 못할 거야’라는 프레임을 스스로 만드는 순간, 그것이 정말 발목을 잡게 돼요.”

연결, 확장, 도전. 그가 정리한 성공의 키워드였다. 멘토들과의 네트워킹, 꾸준한 자기개발, 그리고 확신이 있을 때 밀고 나가는 추진력. 늦은 나이에도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그 증거였다.

“결국 내가 좌절했을 때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절대적으로 못하는 일이었나? 아니에요. 내가 만든 한계점이었어요. 그 한계는 남이 만든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 내가 만든 거예요.”

편견 너머의 가능성

세 시간의 발표와 패널토론을 들으며 하나의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네 명 모두 기존의 틀을 의심했다는 것. 정해진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것.

박미정은 “리더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하나씩 해체했다. 시행착오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학습의 기회로 만들었다. 팀을 이끄는 것이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임을 깨달았다.

양효진은 “세일즈는 험한 일”이라는 편견을 뒤집었다. 관계나 제품 중심이 아닌 가치와 인사이트 중심의 새로운 세일즈를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강점이 더욱 부각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고아라는 “대관업무는 술이나 마시는 일”이라는 시선을 구체적 성과로 반박했다. 단순한 로비가 아닌 사회적 가치 창출의 과정임을 도어락 사례로 입증했다. 작은 일부터 성실하게 처리하는 것이 더 큰 기회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서혜란은 “여성은 재무 분야에 적합하지 않다”는 무언의 편견과 맞섰다. 가장 큰 장벽은 외부의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한계라는 것을 강조했다. 끊임없는 도전과 학습이 그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드라마틱한 성공보다 꾸준한 인식 전환의 과정이 담겨 있었다. 기존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하며, 그 과정에서 만나는 저항과 편견을 하나씩 극복해온 여정이었다.

여성 임원 비율 13.7%라는 차가운 숫자 뒤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정해진 길 대신 새로운 길을 만들고, 편견 대신 가능성을 선택하며, 그 과정을 혼자 감당하지 않고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사람들이.

세 시간이 끝난 뒤 남은 것은 무엇일까. 기존의 방식이 유일한 답이 아니라는 것. 편견은 깨뜨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만든 한계가 가장 넘기 어려운 벽이지만, 동시에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이라는 것.

어쩌면 이것이 진짜 리더십의 정의일지도 모른다. 정해진 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 혼자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길을 만들어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을 하나씩 깨뜨리며 더 넓은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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