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트렌드

생각과 손 사이의 거리

마누스(Manus) 개발사 버터플라이이팩트 샤오홍(肖弘) 대표 (c)Butterfly Effect
패턴을 읽는 사람

샤오홍은 스스로를 “패턴을 찾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1992년생인 그에게 그런 자각이 찾아온 순간은 아마도 Windsurf의 YOLO 모드를 처음 사용하던 그 오후였을 것이다. AI가 GitHub에서 스스로 코드를 내려받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광경을 지켜보며, 그는 마치 미래에서 온 신호를 받은 사람처럼 당황했다고 했다. “번개에 맞은 것 같았다”는 그의 표현이 과장은 아니었을 터이다. 그 순간 그는 알았다. 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패턴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발견한 AI 애플리케이션의 진화 궤적을 따라가 보면 답이 보인다. Jasper의 단순한 텍스트 생성에서 ChatGPT의 대화형 인터페이스로, 그리고 자신이 만든 Monica의 맥락 이해 챗봇을 거쳐 Cursor의 코드 작성 도구까지. 각 세대마다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고, 그 가능성을 먼저 본 사람들이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모델의 역량이 빠르게 발전하는 동안, 그 주변의 응용 서비스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각 세대의 모델 개선이 반드시 원래 개발자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제3자 회사들이 이러한 발전을 사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가치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이를 “새로운 시대의 앤디 빌 법칙”이라고 부른다. PC 시대 인텔의 앤디 그로브가 하드웨어를 만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소프트웨어로 활용했듯이, 지금은 대형 언어모델이 발전할 때마다 이를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 회사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샤오홍의 패턴 읽기는 2023년 버터플라이 이펙트를 설립하며 구체적인 실험으로 이어졌다. 이전에 모니카 AI라는 웹브라우저 확장 프로그램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이번에는 “단순한 챗봇이 아닌, 실제로 인간처럼 사고하고 복잡한 업무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AI”를 만들고자 했다. 베이징 본사에서 텐센트와 홍샨 같은 투자자들의 후원을 받으며, 그는 세계 최초의 범용 AI 에이전트를 구상하고 있었다.

손의 철학

그가 만든 AI의 이름은 마누스(Manus)다. 라틴어로 ‘손’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MIT의 모토 ‘멘스 엣 마누스(Mens et Manus)’에서 가져온 것이다. 정신과 손.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한 작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샤오홍이 모니카AI를 개발하면서 깨달은 것은 기존 접근법의 한계였다. “각각의 API를 하나씩 연결하는 방식은 피처폰을 만드는 것 같았다”고 그는 회상한다. 진정한 AI 에이전트는 코드를 작성하고, API를 호출하고, 작업을 자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관건이었다.

OpenAI는 인공지능을 다섯 단계로 분류한다. 1등급은 Chatbots(대화 로봇), 2등급은 Reasoners(추론 모델), 3등급은 Agents(지능체), 4등급은 Innovators(혁신자), 5등급은 Organizations(조직)다. 대부분의 AI가 1-2등급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마누스는 3등급 제품을 지향했다. 단순히 대화하거나 추론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로 행동하는 AI 말이다.

마누스는 이런 비전을 구현하려 했다. 가상 서버에서 실행되어 브라우저를 사용하고, 코드를 작성하고, 다양한 도구를 자율적으로 활용한다. 이력서를 선별하라고 하면, 압축된 파일들을 스스로 해제하고 중요한 내용을 검토하며, 선별 제안과 후보자 프로필을 제공한다. 여행 계획을 부탁하면 경로를 짜고 여행 책자까지 만들어준다. 사용자가 유튜브 동영상의 특정 순간에 나타나는 동물을 묻는다면, 마누스는 실제로 동영상을 시청하고 키보드 단축키까지 사용해 정확한 답을 찾아낸다.

예상치 못한 시험

2025년 3월, 마누스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팀의 원래 계획은 소박했다. 미국 내 유명 개발자들을 통해 조금씩 입소문을 퍼뜨리며 초대 전용으로 테스터를 늘려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타깃이 아니었던 중국에서 ‘애국 바이럴’로 인해 화제가 되면서, 예상치 못한 폭발적 관심을 받게 되었다.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기열에 섰고, 사람들은 이를 ‘제2의 딥시크’라고 불렀다.

문제는 서버 용량만이 아니었다. 마누스는 Anthropic의 Claude 3.5 Sonnet을 활용하는데, 작업당 2달러의 비용이 든다. 200만 명의 대기자가 몰리면서 비용 부담은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입소문이 타기 시작한 지 5일 만에, 마누스 팀은 알리바바와의 파트너십을 발표해야 했다. 알리바바의 통의천문 모델을 기반으로 중국 전용 버전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초기의 열광 이후 현실적인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용자들은 무한 루프에 빠지는 오류나, 사실적 질문에 대한 잘못된 답변, 그리고 작업 도중 멈춰버리는 현상들을 보고했다. 어떤 사용자는 50분 동안 18단계까지 진행되던 작업이 갑자기 실패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완벽하지 않은 기술이 과도한 기대와 만났을 때 벌어지는 일이었다.

샤오홍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는 딥시크의 성공을 분석하며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딥시크는 항상 자신만의 페이스를 고수해왔다. 인기를 얻기 전부터 오픈소스에 전념했고, 단순히 자신의 방식으로 일했다.”

자신만의 리듬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 압력에 충동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충실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강조한다. 에이전트가 화두일 때 에이전트를 따라가고, 리즈너가 화두가 되면 또 그것을 따라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신만의 신념에 따라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철학은 마누스의 설계에도 반영되어 있다. 현재의 채팅봇들이 모두 동기적으로 작동하는 것과 달리, 마누스는 비동기적 상호작용을 지향한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그들은 잠시 후에 답장할 수도 있다. 그 동안 여러 메시지를 더 보낼 수도 있고, 상대방은 여러 주제에 한 번에 응답할 수도 있다.” 인간의 소통이 그런 것처럼, AI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마누스는 복잡한 작업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처리하고, 각 단계의 진행 상황을 사용자에게 업데이트한다. 샤오홍이 구상하는 “최고의 인턴”의 모습이다. 그의 제품 포지셔닝도 명확하다. “우리는 그것이 소비자급 제품, 대중 시장 제품이라고 믿기 때문에 가격은 그것을 반영해야 한다.” 엔지니어 전용 도구가 아닌, 일반 사용자를 위한 범용 도구를 지향한다.

5월 13일, 마누스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 등록을 발표했다. 더 이상 대기자 명단이 필요 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모든 사용자가 매일 무료로 하나의 작업을 실행할 수 있다. 폭발적 관심과 기술적 한계, 비용 압박이라는 시험을 거쳐 얻은 결론이었다.

동시대의 실험들

샤오홍만이 이런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25년 5월, 10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또 다른 스타트업 플로위스가 ‘Neo’라는 AI 에이전트를 선보였다. 이들은 “무한 에이전트”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무한한 단계, 무한한 맥락, 무한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대 1천만 개의 토큰을 맥락으로 활용하고, 1천 번 이상의 추론 단계를 거칠 수 있으며, 24시간 내내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일정 예약 후 결과 대기” 기능도 제공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완벽하지는 않았다. 클라우드 기반 실행에 따른 네트워크 안정성 문제, 장시간 작업에 따른 비용 증가 등의 과제가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채팅봇에서 창작 엔진으로의 전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25년은 중국 AI의 전환점이 되고 있었다. 1월의 딥시크, 3월의 마누스, 5월의 플로위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연이어 터져 나오는 실험들 앞에서 세계는 조용히 주목하고 있었다. 각각 다른 접근법으로 AI의 경계를 넓혀가는 젊은 창업가들의 시도가 계속되고 있었다.

불완전한 미래를 향해

샤오홍의 이야기에서 인상적인 것은 그의 현실감각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기술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마누스가 때로 무한 루프에 빠지기도 하고, 잘못된 답을 하기도 하며, 작업 도중 멈춰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이런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면서도 계속 나아간다. 자신만의 리듬으로.

매년 1,000만 명의 대학생과 수백만 명의 엔지니어를 배출하는 거대한 인재 풀 속에서, 샤오홍 같은 90년대생 창업가들이 각자의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완벽한 계획’보다 ‘빠른 실행’이, ‘안정적 선택’보다 ‘혁신적 도전’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들은 실패하면서 배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샤오홍이 보여준 것처럼, 패턴을 읽되 자신만의 리듬을 잃지 않는 것. 외부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내적 확신을 따라가는 것.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의 출발점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세상의 문턱에 서 있다. 마누스나 Neo 같은 AI 에이전트가 일상이 되는 세상,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격이 사라지는 세상 말이다. 그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마도 샤오홍처럼 실제로 그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실험과 경험 속에서 찾아질 것이다. 화중과기대학교 출신의 한 젊은 창업가가 그리는 미래가 현실이 되는 과정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그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떤 존재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흐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것.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현장 중심으로 취재하며, 최신 창업 트렌드와 기술 혁신의 흐름을 분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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