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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인간, 그 위태로운 동거의 시작

올리버 티안(Oliver Tian) Oliver Tian Associates CEO

창원의 5월 끝자락은 애매한 계절이다. 여름도 아니고 봄도 아닌,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경계선을 맴도는 시간. GSAT 2025 첫날 저녁, 컨벤션센터 안은 선선했지만 밖으로 나서면 미지근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올리버 티안이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았을 때, 그의 첫 마디는 예상보다 조용했다. “안녕하세요. 올리버 티안입니다.” 40년간 AI를 연구해온 남자의 인사치고는 소박했다.

하지만 그가 던진 질문은 오히려 날카로웠다. “우리는 AI를 사용할 준비가 되었는가?”

모든 사람이 AI를 말하지만, 모든 사람이 AI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Oliver Tian Associates 설립자이자 글로벌 로봇 협회 자문역을 맡고 있는 올리버 티안은 전 세계 30개 지역을 오가며 로보틱스와 AI 분야를 연구해왔다. 옥스퍼드 대학과의 협력부터 네팔, 우즈베키스탄 정부 자문까지, 그의 행보는 AI가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재편하는 힘임을 보여준다.

“최근 한 스타트업 세션에서 투자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머신러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AI를 모르는 거다’라고요.” 티안의 목소리에 살짝 아쉬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AI는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머신러닝뿐 아니라 생성형 AI까지, 굉장히 다양한 측면들이 있죠.”

실제로 미국에서 진행된 최근 조사에 따르면, CEO들의 74%가 AI를 통해 사업적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면 2년 내 사퇴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만큼 AI 도입에 대한 위기감이 크다는 뜻이다. 하지만 딜로이트 조사 결과는 더욱 아이러니하다. 많은 기업이 AI를 고려하고 실험하지만, 실제로 기업 이익을 위해 AI를 활용하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이언맨과 월-E 사이에서

티안이 제시한 AI의 미래는 두 편의 영화로 압축된다. 아이언맨의 자비스처럼 인간의 동반자가 되는 AI, 그리고 월-E처럼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AI.

“아이언맨을 보면 자비스가 여러 옵션을 제시하고, 토니 스타크가 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합니다. 이것이 미래 AI의 모습이에요.” 반면 월-E에서 인류는 AI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1970년대 학자들이 예측했듯이, 인간이 AI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결국 대체될 위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일까? 티안은 추론의 세 가지 형태를 제시했다.

연역 추론은 많은 데이터에서 패턴을 파악해 결과를 도출하는 것으로, 머신러닝과 딥러닝이 잘하는 영역이다. 귀납 추론은 기존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에 지식을 적용하는 것으로, 오픈AI와 대형 언어모델이 이미 침투한 영역이다.

하지만 세 번째, 외전 추론은 다르다. “이사회에서 재무제표를 보고 최선의 추정을 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과거에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이런 직관과 경험에 의존하는 판단은 아직 인간의 영역입니다.”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AI가 아무리 추론해도 ‘아니다, 이 방향이 맞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커넥티드 워커의 시대가 온다

미래의 업무 환경은 ‘커넥티드 워커(Connected Worker)’로 특징지어질 것이라고 티안은 전망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계, 사람과 AI 시스템이 모두 연결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AI의 이야기도 들어야 하고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야 하며, 중간 관리자로서 결정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도전도 만만치 않다. 기술 변화의 가속화, 인간에게 요구되는 역량의 변화, 원격 업무의 증가, 세계화와 다양성, 그리고 윤리적·사회적 영향까지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그가 강조한 것은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이었다. “산업계로 진출하는 밀레니얼들은 기성세대와 조직에 대해 다른 기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리더들은 반드시 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HR도,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AI 시대에는 HR의 패러다임도 바뀐다. 과거 복지 관리, 노동 관리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인적 자본 관리가 핵심이다. “AI 기반 소프트웨어를 통해 특정 업무에 필요한 요구 조건을 가진 사람을 찾는 채용 공고를 정확하게 만들 수 있고, 채용 절차 자체를 AI가 설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가 온다고 해서 HR 매니저가 일자리를 잃는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 전략을 세우는 데 AI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고, AI가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것입니다.”

교육 방식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티안은 최근 본 기사를 언급했다. 챗GPT가 우리 뇌에 독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과제를 내면 학생들이 생각도 하지 않고 결과를 그대로 제출합니다. 자신의 의견이 맞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챗GPT에 의존하고 있어요.”

그가 제시한 해법은 ‘페리 라이트 아웃컴(Fairly Right Outcome)’ 개념이다. 무엇이 필요한가, 어떤 스킬이 필요한가, 이 정보가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가와 같은 명확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다섯 가지 역량

그렇다면 미래 인재는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까? 티안은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복잡성에서도 성과를 내는 적응력이다.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둘째, 전형적인 사고 이상의 혁신적 사고다. 헨리 포드의 말을 인용하며 그는 말했다. “고객의 말만 들었다면 더 빠른 말밖에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셋째, 협업 지능이다. 혼자가 아닌 타인과 연결하고 공동으로 혁신할 수 있는 능력이다.

넷째, 기업가적 사고다. 이전에 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실행력과 방향성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다섯째, 평생 학습 능력이다. “미리 준비하는 교육에서 필요할 때 즉시 배우는 역동적 학습이 필요합니다.”

체스 마스터의 통찰과 청킹의 힘

티안은 체스 마스터 게리 카스파로프의 말을 즐겨 인용한다. 최초로 컴퓨터에게 체스에서 진 인간이 남긴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덜한 게 아니라 더 나은 사람입니다.”

다니엘 카네만의 『생각, 빠르고 느리게』를 예로 들며 그는 인간과 AI의 차이를 설명했다. “5491이라는 숫자는 외우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1945로 배열을 바꾸면 어떨까요? 컴퓨터에게는 똑같은 숫자지만, 사람에게는 1945가 훨씬 이해하고 기억하기 쉽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떠올릴 수 있는 기억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체스 전문가와 초보자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초보자는 5초 동안 4-5개 정도의 말의 위치밖에 기억하지 못하지만, 숙련된 체스 플레이어는 즉시 패턴을 인식하고 전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를 청킹(Chunking)이라고 합니다. 비슷한 성질의 정보를 그룹화해서 묶음으로 만들어 더 빠르게 쉽게 기억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라지는 일자리, 생겨나는 일자리

AI로 인한 일자리 변화에 대해서도 티안은 낙관적이었다. 세계경제포럼 2025년 보고서를 인용하며 그는 말했다. “7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걱정이 되죠.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9,500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고 합니다.”

웹마스터, 보안 엔지니어, 프롬프트 엔지니어 같은 직업들이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듯이,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얘기다.

환경적 책임도 생각해야 한다

강연 말미에 그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다. AI 사용의 환경적 비용에 대한 것이었다. 3분짜리 영상을 통해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공개했다.

“챗GPT에 25개의 프롬프트를 입력할 때마다 0.5리터의 깨끗한 물과 스마트폰 15분 사용량에 해당하는 전력이 소모됩니다. AI를 사용할 때마다 화석 연료가 사용되고 탄소가 배출됩니다.”

싱가포르는 이미 지속가능한 AI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액체 냉각 솔루션 도입, 친환경 소프트웨어를 통한 서버 효율화 등을 통해 데이터센터의 환경 발자국을 줄이려는 노력들이다.

“AI를 사용할 때마다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꼭 필요한 질문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세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변화는 내부 인식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티안은 양자물리학의 아버지 막스 플랑크의 말을 인용했다.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면 당신이 바라보는 사물 자체가 변합니다. 변화는 외부 환경이 아닌 내부 인식의 전환에서 시작됩니다.”

AI 시대의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하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게리 카스파로프의 말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덜한 게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다.

창원의 5월 마지막 주 저녁, 올리버 티안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우리에게 숙제로 남아있다. 우리는 정말 AI를 사용할 준비가 되었는가?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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